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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도입 후 낙마 장상·장대환·김태호

왼쪽부터 장 상, 장대환, 김태호.

국회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2000년 6월 이후 지금까지 낙마한 총리 후보자는 김용준 후보자를 포함해 모두 4명이다.

 청문회법 도입 이전에는 청문회라는 관문이 없었다. 국회의 검증절차도 상대적으로 느슨해 대통령 당선인의 총리 지명이 대체로 정식 임명으로 이어졌다.

 인사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첫 번째 총리 후보자는 김대중 대통령이 지명했던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었다. 2002년 7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장 전 총장을 총리 서리로 임명했다. 헌정사상 첫 여성총리 후보였던 장 후보자에 대해 김 대통령은 “이제 여성 대통령만 나오면 된다”며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장 후보자는 세 차례의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 장남의 이중국적 문제에 학력 허위기재 의혹까지 더해지며 결국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그러자 김 대통령은 2002년 9월 언론사 최고경영자(CEO)로서의 경영능력을 평가해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사장을 총리 서리로 세웠으나, 그 역시 10여 건의 부동산 투기의혹과 자녀의 위장전입 의혹, 부인의 임대소득 탈루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국회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2010년 8월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인사청문회 끝에 자진 사퇴했다. ‘40대 총리론’을 업고 등장한 그는 이 대통령이 ‘강부자(강남·땅부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맥)’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내놓은 카드였다. 그러나 인사청문회에서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에 대한 거짓 해명, 선거자금 10억원 대출의 은행법 위반 의혹, 부인 명의 아파트 임대소득 탈루, 부인의 관용차 사용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본회의 표결 전에 자진 사퇴했다. 총리 후보로 지명된 지 21일 만이었다.

 1947년 정부 수립 이후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 정식 총리가 되지 못하고 ‘총리서리’를 지낸 인사는 신성모(50년)·허정(52년)·이윤영(52년)·백한성(54년)·박충훈(80년·임시서리)·이한기(87년)씨 등 여섯 명이다. 제헌국회에서 초대 총리로 내정된 이윤영씨가 임명동의안 찬성률이 30.6%에 그쳐 첫 부결 선례를 남겼다. 이들 중 일부는 검증과정에서 개인 신상이 문제가 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상대 진영과의 공방 등 정치적 이유로 서리에 머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새 정부의 초대 총리 후보 지명자가 국회의 인사 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자진 사퇴한 건 김용준 후보자가 처음이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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