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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미필적 고의’가 웃픈 이유

권석천
논설위원
“유효투표 4406표, 기호 1번 나승철 후보 1443표….”

 그제(28일) 오후 2시35분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연회장.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나승철 변호사의 회장 당선을 선언했습니다. 나이 서른여섯의 최연소 회장이 9132명의 변호사 단체를 이끌게 됐습니다. 그가 앉은 라운드 테이블에선 젊은 변호사들이 연신 스마트폰을 두드립니다. 카톡(카카오톡)으로 선거 결과를 알리기 시작한 겁니다. 곧이어 이들은 상임이사로 지명돼 단상 위로 올라갔습니다.

 기호 5번 김관기(50) 변호사는 이번 선거의 의미를 “분노하라”로 요약하더군요. “젊은 변호사들의 분노를 보여준 겁니다. 그들 중 30%는 개인회생 신청만 하면 받아들여질 정도로 다들 사정이 어려워요.” 동석한 변호사들도 한마디씩 거듭니다.

 “오죽하면 ‘영일만 변호사’란 말까지 나오겠습니까. 지난달 0건, 이달 1건 수임했다고 해서 영일만이라고… 월급을 절반만 주는 ‘반(半)고용 변호사’도 등장했습니다.”

“제발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고들 해요. 의뢰인이 찾아왔다가도 젊은 변호사란 걸 알면 그냥 나가버린다는 거죠.”

 경기 침체에 매년 2000여 명씩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면서 청년 변호사들이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들의 대변자를 자임해 온 나 변호사의 회장 취임은 법조계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나 변호사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몇 마디 물어봤습니다.

 - 청년 변호사의 분노가 선거를 좌우했나.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변화에 대한 갈망이다. 변호사 시장이 지나치게 양극화돼 있다. 대형 로펌도 힘들겠지만 소형 로펌이나 개업 변호사들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대형 로펌에서 긴장할 것 같은데.

 “고용 변호사들은 예전처럼 고통을 감내할 정도의 연봉도 받지 못하면서 새벽까지,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한다. 변호사 사회에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변호사가 이럴 정도면 자격증도, 이렇다 할 스펙이나 배경도 없는 청년들은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요. 화이트칼라들이 들어가는 일반 기업엔 선거도 없는데 말입니다. 기억을 지난주 목요일(24일)로 돌려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요?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분 중에 상사나 교수님과 싸워본 분 있습니까. 3대 7이든, 2대 8이든 힘의 균형점이 맞아야 갈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날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청년유니온 양호경 정책팀장은 “세대 갈등은 계층 문제라는 지적에 동의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제로 사이버 공간 말고는 청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취업전쟁과 성과 경쟁에 쫓겨 각자도생에 급급하지요.

 아, KBS 개그콘서트의 핫 코너 ‘미필적 고의’를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젊은 얼굴들이 떠오르네요. 부잣집에 택배비, 대리기사비, 피자 값을 받으러 갔는데 엉뚱한 시비와 갈등에 휘말려 계속해서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 그 모습에서 2030세대는 정당한 요구도 망설여야 하는 자신들의 ‘웃픈’(웃기면서 슬픈) 현실을 확인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계층적 불안감이 개그맨(박성광)이 연기하는 비정규직의 설움에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지도 모릅니다.

 헌법재판소장 청문회, 총리 후보자 논란, 대통령 측근 특별사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나오는 이슈들도 젊은 세대와 소통하겠다던 대선 때 다짐과는 너무 멀게만 느껴집니다. 더 심각한 건 그 결과 일자리 문제 같은 중요 현안들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겠지요.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젊은 친구들의 강요된 침묵은 언제까지 유효할까요. 그들의 헛헛한 웃음 뒤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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