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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여대생, 깨끗한 중고 속옷 찾을 정도로…

주말엔 수백 명 몰리는 중고매장 불황으로 휴·폐업이 급증하고 중고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지자 중고매장으로 물건과 사람이 몰리고 있다. 28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6600㎡(약 2000평)의 대형 중고매장 리마켓에 중고가구들이 가득 진열돼 있다. 리마켓의 김태수 본부장은 “주말엔 손님이 200명씩 몰린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대학생 안주연(25)씨는 최근 인터넷에서 ‘중고 속옷’을 구입했다. 자취생인 안씨가 생활비를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다. 안씨는 “친구들 입소문을 듣고 사봤다”며 “착용 흔적이 없는 깨끗한 중고 브래지어를 새 것의 절반도 안 되는 값에 샀다”고 말했다.

중고 귀걸이 매출 720% 급증
불황 없다는 아동복도 침체
백화점 출점 17년 만에 전무
“소비·투자 연쇄 하락 악순환”



 #이달 27일 오후 4시 서울 응암동의 한 브랜드 속옷가게. 유모(46) 사장은 “일요일인데도 하루 종일 남자 손님만 세 명 왔다”며 “이 동네에서 20년 동안 장사했지만 이렇게 안 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전표를 들여다보며 “매출이 최소 40%는 줄었다. 월 매출 5000만원씩 내는 최우수 매장으로 꼽혔는데 지난해 10월부터 이렇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속옷까지 중고를 구입할 정도로 최근 국내 소비가 위축을 넘어 ‘실종’되는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실물경제팀장은 “개인은 소비를 멈추고, 내수 기업은 매출 부진으로 신제품 개발 동력을 잃는 악순환이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외대 최광(경제학) 교수는 “일본은 자산 거품이 터진 1990년대 후반 정부가 상품권까지 나눠주며 소비 진작에 나섰지만 실패하며 만성 디플레에 빠졌다”며 “국내에서도 대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투자 부진과 소비 실종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G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전년 대비 중고 속옷 판매는 24% 늘어났다. 속옷은 구매했다가 반품을 못한 제품이 중고 시장에 흘러 나온다. 여행용 가방(747%), 귀걸이(720%), 중고 휴대전화(583%), 교육용 완구(169%) 등 다양한 중고 제품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직장인 이정미(31)씨는 “남이 썼던 중고품은 찜찜해서 안 썼는데 원래 사려던 스마트폰의 반값인 것을 보고 구입했다”고 했다. 네이버 중고상품 판매 카페인 ‘중고 나라’의 회원수는 1020만 명을 훌쩍 넘는다. 중고전문 대형 매장을 4곳 운영하는 리마켓의 김태수 본부장은 “주말엔 손님이 200명씩 몰린다 ”고 말했다. 대학생 김정곤(24)씨는 “토익책 등 수험서도 안 사고 도서관에서 빌려보는데 먼저 빌려간 사람들이 볼펜과 형광펜을 사용해 채점까지 해 놓아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한 대형마트의 떨이 행사에는 중소 패션업체에서 만든 다운·패딩점퍼 50만 점이 쏟아져 나왔다. 추위 덕에 판매가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예년보다 10~20%가량 더 생산했는데, 소비 둔화로 오히려 재고가 쌓이자 떨이 처분을 한 것이다.



심지어 경기를 안 타는 품목인 과자류도 직격탄을 맞았다. 제과업계 1위인 롯데제과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1~3분기 누적 기준으로 전년보다 23%나 줄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아무리 경기가 어려워도 과자는 사먹기 마련인데 소비자들이 아이들 과자 값까지 아끼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백화점의 아동복 매출 성장률 역시 2010년 20.6%에서 지난해 1.9%로 크게 꺾였다. 이 백화점 아동복 담당자는 “아동복 매출은 그간 경기 침체에서 예외였는데 내 아이에게만은 투자를 아끼지 않던 엄마들도 요즘에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사원 정모(42)씨는 “네 살 쌍둥이에게 백화점에서 고급 아동복만 사 입혔는데 지난해부터는 어린이집 비용도 감당 안 돼 옷을 사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 1월 소비자심리지수(CSI)는 지난해 12월(99)에 비해 3포인트 오른 102를 기록했다. 하지만 소비 심리가 개선됐다고 판단하기는 무리다. 정귀연 한국은행 조사통계팀 과장은 “조사대상 가구가 바뀌었고, 기준선(100)을 1999~2008년 평균에서 2003~2012년 평균으로 바꾼 결과”라며 "단순히 내수가 진작됐다고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소비 부진은 대형 유통업체의 신규 출점도 발목을 잡았다. 외환위기, 미국발 금융위기 때도 멈추지 않았던 백화점 신규 출점은 올해는 한 곳도 없다. 이는 96년 이후 17년 만이다. 백화점 업계의 한 임원은 “부동산 값 하락 등으로 그간 백화점의 매출을 책임져온 상위 10% 고소득층에서도 상당수 고객이 떨어져 나간 걸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 퇴행은 중고 상품 구입 외에도 꼭 사야 할 물건까지 저렴한 상품으로 바꾸고, 돈 주고 사던 서비스를 셀프로 바꾸는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부 김미정(32)씨는 다음 달 1일 둘째딸 100일 기념사진을 셀프 스튜디오에서 찍는다. 2009년 큰딸 땐 대형 사진 스튜디오에서 100만원을 들였지만 셀프로 하면 돌사진에 액자까지 다해도 30여만원이다. 주부 이모(30)씨는 순면 감촉 생리대를 썼지만 최근 30%가량 가격이 저렴한 다른 제품으로 바꿨다. 이씨는 “사지 않을 수 없는 제품이라 바꾼 것”이라며 “날씨가 춥지만 레깅스는 안 사고 스타킹을 두 개 겹쳐 신는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는 심리인데 미래 전망이 밝지 않아 소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내수시장이 얼어붙고, 내수 기업들이 투자 동력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을 벗어나려면 부동산을 비롯한 각종 규제 완화와 내수 촉진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지영·구희령·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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