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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공간’사옥이 위태롭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창덕궁과 현대그룹 사옥 사이에는 지나치기 쉬운 건물이 하나 있다. 검은 벽돌과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과묵한 건물은 왠지 그 자리를 지키기 버거워 보인다. 바로 옆에는 14층 현대빌딩, 길 건너편에는 가든타워와 매끈한 삼성래미안 갤러리가 버티고 있다. 반면 이 건물은 율곡로에서 저만치 물러나 벽을 보고 돌아앉아 있다. 꼭대기에 붙어 있는 ‘空間 SPACE’라는 흰 글자만이 자신의 정체를 알릴 뿐이다. 건축가 고(故) 김수근이 설계한 공간건축 사옥이다. 지난해 여름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내부가 시청자들에게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경영난에 빠진 ㈜공간건축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사옥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위태롭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서울 속 작은 점에 불과한 이 민간 사옥에 주목하는 까닭은 산업화 시대 건축계가 직면했던 과제와 고민을 농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근(1931~86)은 김중업(1922~88)과 더불어 한국 현대건축 1세대 거장으로 불린다. 그들은 당대 지식인들과 비슷한 시대적 숙제를 안고 있었다. 첫째는 일본이 남긴 식민 잔재로부터 벗어나는 것, 둘째는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 전통에 용해하는 것이었다.



 이 숙제가 결코 녹록지 않았다는 것은 김수근이 겪은 ‘왜색논란’에서 드러났다. 1960년 후반 그의 초기작 부여박물관은 외관이 일본의 신사를 닮았다는 건축계 안팎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시각적 형태에서 경험적 공간으로 사유의 방향을 틀었다. 70년대 모습을 드러낸 공간사옥은 바로 이런 고민과 노력의 결정체였다. 건물 내부에서 느끼는 표현하기 어려운 공간감은 그가 전통건축에서 찾아낸 한국성의 원형이다.



 공간사옥은 문화계를 아우르는 사랑방 역할도 했다. 김덕수의 사물놀이, 공옥진의 병신춤이 지하 소극장에서 빛을 보았다. 종합 문화예술잡지 ‘공간’도 여기에서 태어났다. 한 개인의 작품을 넘어 이 건물은 전통, 식민, 근대, 산업화의 딜레마를 넘어서고자 했던 시대의 대표작이자 문화의 산실이다.



 김수근에게는 군사 정권의 문화 조력자란 비판이 따라붙기도 한다. 이런 비판이 본질을 벗어난 과한 주장인지 혹은 당시 문화 엘리트가 지닌 어쩔 수 없었던 한계였는지, 그것을 평가하는 일은 그를 비판적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다음 세대의 몫이다. 하지만 공간사옥의 건축 역사적 가치는 이 때문에 결코 깎이지 않는다.



 연면적이 360m²(109평) 남짓한 구 사옥은 주택가에 있는 평범한 다가구·다세대주택보다 작은 규모다. 개발 압력과 유혹 앞에서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부수고 크게 짓거나 임대수익이 높은 용도로 바꾸는 것을 상식으로 여기는 시대다. 지난 수십 년간 이처럼 근현대 문화 자산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탄식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모더니즘의 거장 건축가들의 대표작이 현재 어떤 모습인지 보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시카고 사무실, 알바 알토의 헬싱키 사무실은 그대로 보존되어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다. 개인주택이었던 르 코르뷔지에의 대표작 파리의 빌라사보이, 안토니 가우디의 바르셀로나 카사밀라 역시 공공 문화재단이 소유하면서 박물관이나 전시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미스 반데어로에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엑스포 독일관은 건축적 가치 때문에 56년 뒤에 그 자리에 도면대로 복원한 뒤 개방됐다.



 이제 한국은 한 시대의 걸작을 훼손하지 않고 공공자산으로 만들 경제·사회적 역량을 충분히 가졌다. 2007년 제정된 건축기본법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국민이 공동으로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구현하고 건축문화를 진흥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도 만들어졌다. 이런 때 산업화 시대의 파고를 견뎌온 한국 현대건축의 자존심이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의 유탄에 맞아 쓰러질 수는 없다. 공공성을 띤 주체가 나서서 시민에게 개방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 전화위복의 기회다.



 한국 현대건축의 산실, 공간사옥은 우리 시대의 자산이다. 당장의 산술적 계산 때문에 이를 어이없게 다루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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