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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불량제로’ 인재, 어디 없소?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청문회에 출전한 최초의 선수가 초주검 상태로 실려 나갔다. 이동흡 후보자가 체면을 회복하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사생활에 묻혔던 온갖 잡설과 행적이 쓰레기 집하장처럼 뒤집히고, 헌재 재판관이 누리던 사회적 존경이 하루아침에 철회되었으니까 말이다. 흥미진진하다. 같은 과(科)에 속하는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링에 오를 차례다. 어떻게 될까? 장애의 역경을 딛고 최연소 판사, 소신 재판관, 헌재소장, 그리고 인수위 위원장을 거쳐 총리후보에 등극한 법조계의 상징인물은 뒤가 깨끗할까? 깨끗한 걸로 판결 나면 그냥 시시한 일전이 될 터이고, 뜻밖의 허물이 넝쿨처럼 발견되면 관중과 언론은 비난의 꽃을 만개시킬 것이다. 정말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진정 우리는 흥미진진해야 하는가?



 청문회는 야당의 설욕전이자 낙담한 절반의 표심이 위안을 얻고 싶은 난타전이다. 적어도 서너 명은 야당 의원들의 십자포화를 맞고 장렬하게 전사해줘야 뒷맛이 개운할지 모른다. 낙심한 절반의 유권자들에게는 위문공연이다. 그런데, 깨알같이 적힌 당선인의 수첩 기록에서 신중을 거듭해 내놓은 비밀병기가 야당 청문위원들을 마치 트랜스포머처럼 멋지게 격파해 버린다면 그것도 문제다. 가슴속에 잔뜩 도사린 울분을 풀어낼 절호의 기회가 유실되기 때문이다. 야당은 속 시원히 화풀이를 해줘야 하고, 당선인과 여당은 한 치의 허점도 보여서는 안 되는 이 절박한 양쪽 사정이 부닥쳐 청문회 링 주변에는 긴박한 전운이 감돈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재고할 것이 있다. 프라이버시 문제다. 이동흡 후보는 특수업무경비 유용건으로 ‘횡령재판관’이 됐고, 연구서 출간으로 ‘표절판사’가 됐고, 딸 취직과 아들 군경력에서는 ‘뒤를 봐주는 아비’가 됐다. 누구보다 충실한 가장(家長)임은 분명해 보였으나, 가계경제가 어찌 흐르는지 분간 못하는 무능한 아비로 낙인찍혔다. 꼭 그런 인물은 아닐 터, 가족들도 그렇지 않았을 터이다. 억울하다. 그런데 공사비(公私費) 혼합을 관례라고 변명하는 후보자에게 헌법정신을 따져 묻는 것이 무의미해 보였던지 야당 의원들은 아예 법리논쟁을 포기했다. 청문회 90%가 개인비리 규명에 허망하게 쏟아지는 동안 답변을 흐렸던 이동흡 후보는 자신의 진지했던 인생이 누더기로 변해가는 끔찍한 위기감과 조우했을 것이다. 헌재소장이 되는 것보다 자신의 인생을 구출하는 것이 더 절박해 보였다. ‘우리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는 청문위원들과 점점 늪에 빠지는 후보자가 ‘빛나던 공인’을 ‘누추한 개인’으로 전락시키는 아찔한 국문(鞠問)에서 공범역할을 분담할 수밖에 없었던 그 청문회는 한마디로 추했다. 전혀 흥미진진하지 않았다.



 건축법 위반이라고 베란다 새시를 안 하고 살아온 김용준 총리지명자에겐 병역 면제된 두 아들이 있다. 미성년 아들에게 땅과 주택을 사줬다. 법원과 헌재 재직 시절, 그냥 했던 관행이 ‘비리’로 규정되어 75세의 원로법조인이 범법자로 몰릴 듯하다. 보청기를 착용한 지명자가 “뭐라고요? 다시 말씀해 주세요”를 반복하는 동안 사회적 원로에 대한 국민적 존경은 또 한 차례 서서히 철회될 것이다. 사회지도층, 그것도 신정부의 야심 찬 출범을 수행할 파워엘리트의 사생활이 깨끗해야 함은 공인(公人)의 최소 요건이긴 하지만 프라이버시에 융단폭격을 가하는 장면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은 국민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일종의 관음증이 자란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가 되었다. 지도층의 내부가 썩어 문드러져 고목처럼 쓰러지는 광경을 끝내 보려는 관음증, 설욕전이자 필수 통과의례인 청문회가 개인치부를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폭로하는 과정에서 범국민적 관음증을 부추겼다. 초주검 상태로 실려 내려간 인사들은 극심한 우울증과 자괴감에 시달릴 것이다. 무차별적 공격을 가하는 인터넷 폭로전과 유사하다.



 차제에 청문회 형식을 바꿀 것을 제안한다. 미국처럼 청문회를 1차와 2차로 나눠서 사생활 관련 규명은 ‘비공개 회의’로 진행하고, 1차 회의를 통과한 후보자를 대상으로 2차 ‘공개회의’를 개최하는 것이 어떨까. 국민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지명된 후보자들이 막중한 국가대사를 수행할 능력과 자질이 있는가의 여부다. 뒤가 깨끗한 사람이 의외로 현장감각이 달릴 수가 있고, 오점투성이 마당발이 탁월한 정책수행과 갈등조정 능력을 구사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 시대에 청백리는 소중하다. 그러나 ‘관음증 청문회’ ‘저승사자 청문회’가 지속되는 한 인재를 널리 구하기는 틀렸다. 체면 구기고 순진한 자식들 낭패시키면서까지 나설 사람이 어디 그리 많으랴. 당선인은 애가 탄다. 순도 100% ‘불량제로’ 인재, 어디 없소?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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