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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근대식 병원 최초의 유아교육시설 최초 뒤엔 늘 기독교가 …

기독교 선교사들은 1920년대 중반 유아를 위한 우유급식 사업도 벌였다. 우유를 생산하던 충남 공주의 우유부엌 모습. [사진 NCCK]
한국 근대사에는 기독교의 영향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기독교가 아니었다면 ‘서구문화와의 조우’가 더뎌졌을 만큼 기독교는 교육과 의료, 문화와 스포츠, 사회사업에 이르기까지 근대화 초창기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NCCK 『한국 기독교사 100대 사건』

 한국 사회에 찍힌 교회의 발자취를 100대 사건으로 정리한 두툼한 책이 다음 달 중 나온다. 진보 개신교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펴낸다. 가칭 『한국 기독교사 100대 사건』이다.



 책에는 1885년 기독교 상륙부터 1980년대 말 보수 기독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창설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팎의 굵직한 사건들을 소개한다. 기존 ‘기독교 100대 사건 류’와 다른 점은 교회 내부 역사에만 치우치지 않고,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눈을 돌렸다는 점이다. 장로회신학대 임희국 교수 등 한국교회사 전공 학자 11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100대 사건의 목록을 살펴보면 기독교는 유난히 한국 최초와 관련이 깊다.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 최초의 유아 교육 시설인 이화유치원과 중앙유치원 등이 모두 선교사들의 손으로 세워졌다.



 최초의 여성 전문 의료기관인 ‘보구여관(保救女館)’도 기독교가 세웠다. 감리교 목사 스크랜튼이 1887년 서울 정동 이화학당 안에 마련했다. 엄격한 남녀유별의 사회 질서 속에서 의료혜택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명성황후가 하사한 병원 이름은 ‘여성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기관’이라는 뜻. ‘여성을 위한 의료사업은 여성의 힘으로’라는 표어까지 내걸고 의료강습반을 개설해 여성 의료교육도 실시했다.



 기독교의 역할은 단순한 문명 전파에 그치지 않았다. 정변(政變)에 개입해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려는 데까지 나아갔다. 1895년 ‘춘생문(春生門) 사건’이 대표적이다. 고종을 경복궁 밖으로 탈출시켜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려 했다.



 장신대 이치만 교수는 “고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언더우드 등 미국 선교사들은 고종이 처한 억압적인 상황이 선교에 불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자신들의 선교를 도운 고종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측면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거사는 사전에 발각돼 수포로 돌아가고 일본 정부의 거센 항의를 받은 미국 정부는 선교사들에게 조선의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훈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 교수는 “기독교는 1919년 3·1 운동 이전까지는 서양 문명이 들어오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했으나 이후에는 그 역할을 일본 총독부라는 전문적이고 공적인 영역에 넘겨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해방 이후에는 순수하게 종교적 영역으로만 남게 된다”고 했다.



 책은 500∼600쪽 분량이 될 전망이다. 사건당 200자 원고지 15~30쪽 정도를 할애하고 관련 사진도 곁들인다. 2000부를 찍어 기독교 단체, 관련 기관 등에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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