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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끼리 서로 모방 ‘패치워크’로 풍요롭게 된다

-『공자와 세계』 5권을 내리읽었다. 소행성의 지구 충돌 같은 지적 경험이었다.

“김 작가의 독후감이 문학적이다 못해 천문학적이다. 헤겔과 마르크스를 시작으로 30여 년간 연구한 성과물이다. 플라톤이나 베이컨, 칸트 등 서양철학의 거대한 빙산들을 원전(原典)으로 차례차례 꿰뚫었다. 이후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의 여러 철학자들을 독파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孔子 연구하는 정치철학자 황태연 교수



-패치워크 문명(patchwork civilization)이라는 용어도 아주 새롭다.

“패치워크는 원래 헝겊 조각들을 모아 짜깁기해 만든 옷이나 보자기·우산·이불 등의 섬유제품을 말한다. 오늘날엔 문화 분야로 전의돼 기존의 여러 글이나 영화 따위를 편집해 완성품을 만드는 일이나 작품을 가리키는 데 쓰이기도 한다. 이혼과 재혼의 증가로 심지어 ‘패치워크 가족’이라는 말도 생겼다. 흔히 문명을 융합모델과 갈등모델로 나누곤 한다. 나는 그런 개념이 맞지 않다고 본다. 문명들은 융합하지도 갈등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문명들은 오직 서로 모방을 통해 패치워크될 뿐이다.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의 장점을 취해 자연스럽게 짜깁기된다. 그러면서 더욱 다채로워지고 풍요로워진다.”



-공자로 재단한 세계철학사로 읽힌다. 놀라운 건 『논어』『중용』 『주역』 같은 동양고전의 완벽한 재해석과 통찰이다.

“10년 이상 동양 고전과 씨름했다. 성리학자인 주자(朱子)를 읽으려고 직접 ‘주희 한문 소사전’을 만들어 활용했다. 『주역』은 인류가 아직까지도 완전한 재해석을 못하고 있다. 계속 연구, 보완 작업해 나갈 참이다.”



-서양철학을 전공했는데 왜 공자주의(Confucianism)에 빠졌는가.

“일찍이 박사학위 논문에서 몇 가지 의문점을 지적했었다. 서양철학의 합리론은 이성을 중시하나 인간 감성을 무시한다. 대표적인 철학자가 칸트다. 감성을 인정해주는 척하다가 무시해 버린다. 한마디로 역겨운 트릭 철학이다. 로크나 흄, 애덤 스미스 같은 영국 경험론자들은 감성을 인정하지만 곧잘 합리주의의 수렁으로 빠진다. 서양철학 자력으로는 도저히 돌파할 수 없는 모순이 있다. 잘 생각해보라. 인간은 어떤 대상의 옳고 그름을 실천이성을 발휘해서 아는 게 아니다. 오감과 쾌, 불쾌의 감정을 가지고 직관적으로 안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공감하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학이사(學而思:배우고 깊이 생각한다)’는 인간 감성을 이용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중앙일보 같은 언론사도 독자 공감대에 따라 매일매일 재판받고 있다. 민심의 바다에서. 개인이 시비를 가리는 것이지만 공감대가 형성되면 곧 민심이 된다. 공자의 공감정치, 경험에 입각한 덕성주의 철학에 답이 있었다. 한계에 놓인 서양철학은 공자가 대안이자 미래라는 걸 그때 이미 확신했다.”



-공자를 경험론자로 읽어내고, 그의 ‘술이부작(述而不作:서술해서 전할 뿐 지어내지 않는다)’에서 착안해 서양 합리론자들을 ‘우주나 신(神)같이 잘 모르는 것까지도 함부로 지어낸다(不知而作)’고 조롱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 데카르트는 표절자로, 칸트는 공허하고 맹목적이며 위험한 철학자로 단정한다. 게다가 조선왕조의 정치철학이었던 주자학은 사특한 공리공론으로 폄하한다. 저자야 통쾌하겠지만 전공자들의 공격이 만만치 않겠다.

“아직은 조용할 뿐 큰 반론이 없다. 폭풍 전야의 고요한 바다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서양철학 전공자들은 동양철학을 잘 모르고, 동양철학 전공자들은 서양철학을 잘 몰라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동서양에서 떠받들어온 철학자들의 사상적 실체를 파헤치고 인류 문명사에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가를 집중적으로 드러냈다. 편의상 철학사적 의의나 장점은 생략했다. 그 때문에 무리한 평가라고 여길 독자들이 있겠지만 나는 명확한 근거들을 제시했다.”



-합리주의자 칸트처럼 살지 말고 경험주의자 공자처럼 살아야 인류가 행복하단 말인가.

“맞다. 현대물리학 이전 시대라고 치자. 북극에 안 가본 서양의 합리주의자나 조선의 성리학자는 태양이 1년에 한 번만 뜨고 지는 걸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북극점에서 넘어지면 어느 쪽으로 넘어지는가. 어디로 넘어지건 남쪽으로 넘어지는 거다. 그런데 동서남북이 있는 조선 땅의 성리학자는 그걸 경험하지 못해 그 빤한 사실을 알 수가 없다. 공자는 ‘경험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생각하기만 하고 경험에서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고 했다. 머리 많이 굴리며 살지 말고, 발품 많이 팔며 살아야 바른 세상이 된다는 얘기다.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고,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고 말한 칸트는 경험의 내용과 감성적 직관을 중시하는 것 같지만 그의 경험과 감성은 선험적 주관주의와 감각적 관점주의에 빠진 나머지 맹목이자 공허가 돼버린다.”



-16∼17세기 유럽 계몽주의의 싹이 공자철학의 영향이라고 논파했다. 그리고 그 근거로 많은 원전을 들어 조목조목 제시했는데.

“서양 계몽주의는 1688년 영국 명예혁명에서 1789년 프랑스대혁명까지 약 100년간의 새로운 변혁 사조를 가리킨다. 공자철학이 계몽주의의 기원과 융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건 의심할 수 없는 정설이다. 공자는 ‘계몽주의의 수호성인(the patron saint)’이었고 동서양 철학은 멋지게 패치워크됐다. 볼테르, 흄과 애덤 스미스 같은 철학자들이 주도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는 당시 유럽보다 경제적으로 앞섰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그 전거가 분명할 뿐더러 서양 통계학자들의 데이터(1권 405~407쪽)가 뒷받침한다. 공자철학을 패치워크했던 계몽주의는 마침내 아메리카합중국과 빅토리아 치세의 영국을 잉태한다. 근대자유주의 정치·경제사상의 창안에 공자가 있었다.”



-멋지다. 공자철학의 정수가 어떻게 그렇게 전해졌나.

“우리가 잘 아는 마테오 리치(1552~1610)의 경우처럼 선교사들은 중국에 기독교를 효과적으로 전파하려고 중국문화를 배워야만 했다. 적응주의라는 거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하늘을 아는 공자와 접했다. 공자를 번역하다 그만 공자의 매력에 빠져버렸고 거꾸로 유럽에 전파했다. 엄청난 대형 사고가 터져버린 것이다(웃음). 공자사상은 스콜라철학을 박살내 버린다.”



-전파 동기가 흥미롭다. 그 무렵 조선에서는 이른바 사단칠정 논쟁이 벌어진다.

“성리학은 동아시아의 스콜라철학이다. 물론 유럽에 전해진 공자철학은 성리학이 아니라 선진 공자철학이다. 세상이 개벽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에 갇힌 조선 사대부들은 공리공론에 빠진다. 공자가 그린 대동사회(大同社會)는 뒷전이었다. 『예기』에 나오는 ‘대동’은 임금과 관리가 현자와 능력자 중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대인(大仁)과 대의(大義)의 원리에 따라 화목과 영구평화가 달성되며, 완전고용과 보편복지가 실현된 신분차별 없는 사회다.”



-대동사회는 공자가 희망한 유토피아일 뿐이다. 그것이 실현됐다는 당우(唐虞:요순)시대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이상적인 모델이 있는 것과 없는 건 큰 차이가 있다. 배부른 ‘온포(溫飽)시대’가 된 중국은 2020년까지 ‘전면적 소강(小康)사회’ 건설을 완료하고, 2021년부터는 모두가 잘사는 ‘대동사회’를 건설한다는 장기발전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선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이 문제다.”



-정암 조광조의 개혁드라이브에도 대동사회가 등장하긴 한다.

“그러다 희생되지 않는가? 선조 때 정여립도 마찬가지다. 대동사회를 꿈꾸다 자그마치 1000명의 독서인들이 무고하게 죽는다. 그게 받아들여졌다면 서양보다 더 빨리 민주사회가 됐을 거고 근대화도 가능했다. 그랬다면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지도 못했을 거다.”



-공자철학과 서구의 패치워크 산물은 칸트를 기점으로 결국 제국주의로 뒤틀렸다. 동아시아의 변방국 일본도 배워 이웃 나라에 써 먹었다. 인류 문명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영국 경험론자들이 공감정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곧잘 합리론에 빠졌다는 얘기는 앞에서도 했다. 합리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독백(monologue) 모델’을 ‘대화(dialogue) 모델’의 소통 패러다임으로 전환했던 하버마스의 시도도 실패한다. 두 치 혀로 하는 소통행위로는 말 없이 교감하는 공감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경험주의적 패러다임 전환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어느새 철학적 세계일주를 마칠 때가 되었다. 대동사회의 완전고용과 보편복지가 부러운 때다.

“정부가 복지비용을 말하면 국민은 세금폭탄이라고 불평한다. 준조세 빼고 기껏 10% 남짓 내는 세금을 폭탄이라고 하면 안 된다. 스웨덴은 무려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낸다. 어렵지만 우리도 세금을 성장통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더 내야 한다. 성장을 자동차의 앞바퀴로, 복지를 뒷바퀴로 삼되 동력은 뒷바퀴 축에 둬야 한다. 길게 보면 복지가 원활해야 성장도 잘된다.”



-거침없는 달변가인 것 같다. 정치토론 좋아하는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공자와 세계』 콘서트를 열면 불꽃 튀겠다.

“기회가 되면 어떤 전문가의 반론이건 즐겁게 받아들이겠다. 일말의 소명감도 느낀다.”




황태연 동국대 정외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독일 괴테대학에서 마르크스를 재해석한 ‘지배와 노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실증주역』과 다수의 역저가 있다.

김종록 작가.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 『소설 풍수』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 『바이칼』 『근대를 산책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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