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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사회적 잔소리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최근 공연계에서는 LG아트센터의 장내 안내방송이 화제다. 통상적인 안내방송에 ‘깨알 같은’ 재미를 더했다. 그저 휴대전화를 꺼달라는 말 대신 “모두가 달콤하고 환상적인 꿈을 꾸는 시간, 휴대전화의 벨소리나 액정 불빛 때문에 악몽으로 기억되지 않도록 지금 바로 꺼주시기 바랍니다”(환상 마임극 ‘속삭이는 벽’)라며 재치를 부렸다.



 예술의전당도 가세했다. 공연을 하는 예술가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휴대전화를 꺼달라고 안내방송을 한다.



 영화 극장도 마찬가지다. 영화 시작 전 10여 분간 이어지는 기나긴 광고 행진의 끝은 안내방송이다. 역시 휴대전화를 단속한 다음, 앞좌석을 발로 차지 말라는 등 세심한 매너 방송이 이어진다.



 안내방송의 천국은 지하철이다. 정차역, 환승 등 기본 정보에 더해 지하철 매너에 대한 꼼꼼한 가이드가 주어진다.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자, 휴대전화를 할 때 큰 소리로 하지 말자, 신문을 볼 때 옆사람을 방해하지 말자. 여기에 성추행, 소매치기 대처 요령에, 수상한 사람은 신고하자, 내릴 때 선반 위의 짐을 꼭 챙겨 가자 등이 붙여진다(내릴 때 짐을 챙겨 안전하게 돌아가라는 ‘고마운’ 당부는 한국의 지하철, 기차, 대형버스, 심지어 비행기에서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고정 안내 멘트다).



 역사 곳곳에도 안내 표시가 넘쳐난다. 승객이 줄 서는 지점, 우측통행 방향 등을 일러준다. 에스컬레이터 안전 방송도 흘러나온다. 각종 안내, 주의, 경고성 메시지가 지하철 공간을 꽉 채운 느낌이다. 일종의 ‘정보공해’나 소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이상하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지나치게 많은 안내방송, 주의 문구라는 말이 있다. 일종의 ‘사회적 잔소리’다. 음식물을 남기지 마시오, 침을 뱉지 마시오, 떠들지 마시오, 휴지는 휴지통에 넣으시오, 낙서 금지….



 물론 번번이 공연장에서 울려대는 무개념 휴대전화 벨소리는 정말 짜증스럽다. 때론 인터넷을 도배하는 지하철 매너 상실 꼴불견 백태도 가관이기는 하다.



 그러나 휴대전화 안내방송이야 그렇다 치고, 멀쩡한 성인남녀가 극장에서 “앞자리를 발로 차지 말라”거나 “차에서 내릴 때 짐을 꼭 챙겨 가라”는 안내까지 받는 건 난센스 아닐까. 스스로도 충분히 알아서 할 자율의 영역까지 누군가 구호화하면서 가르치고 선도하려는 느낌이다. 여전히 시민을 계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권위주의의 흔적, 캠페인 국가의 유산이다.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그의 책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에서 “바닥에 침을 뱉지 마세요, 음식을 버리지 마세요 등의 문구가 적힌 식당은 유럽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상식을 강요받을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썼다.



 이제 에티켓과 매너 정도는 스스로 알아서 하게 놔두기. 시민은 바보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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