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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다보스, 북한 핵문제에 관심 없나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해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 자리가 단순히 경제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촌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쟁점을 모두 검토하고 전망하는 자리라는 점이다. 23일부터 열린 올해 포럼에서도 클라우스 슈바프 다보스포럼 회장은 개막 연설을 통해 “경제위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며 도처에 다양한 형태의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경제 리스크 못지않게 지정학적 리스크가 2013년 세계경제에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필두로 포럼에 참석한 지정학 리스크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중동을 위험도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았다. 그 중심에는 이란 핵문제가 있다. 이란의 핵무기 보유가 핵 도미노 현상을 야기해 중동은 물론 세계 전체의 전략적 안정을 크게 해칠 수 있다는 염려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장 차이가 컸다. 정밀타격 등 군사행동을 통해 이란의 핵시설을 무력화해야 한다고 소리 높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국제제재의 강화를 통해 테헤란의 이슬람 정부를 와해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군사행동이 전쟁의 확산을 불러올 수 있고, 제재를 통한 체제 전복은 이란을 실패국가로 만들 우려가 있으므로 모두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발리 나스르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주장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결국은 ‘협상을 통한 외교적 타결’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의 또 다른 쟁점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리아 문제였다. 아사드 정권의 폭정에 대항하던 민주화운동이 이제는 수니파와 시아 알라위파 사이의 골육상쟁 종파 갈등으로 변질된 데다, 나아가 역내외 후견국들 간의 지역분쟁으로 확전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특히 그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이른바 ‘아랍의 봄’ 이후 이들 국가의 민주화 경로에 대한 의구심도 함께 증폭되고 있다. 이집트·튀니지·리비아·예멘 등에서 무슬림형제단 같은 이슬람세력이 선거를 통해 집권세력으로 등장하자 ‘민주주의 역류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말리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준동하고 있는 이슬람 무장세력과 이에 편승한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집단의 세력 확산도 새로운 정치적 리스크로 거론됐다.



 반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따른 불안정 우려에 대해 많은 참가자는 그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보고 있었다. 아직은 미국의 국력이 중국에 비해 훨씬 우월하고, 더구나 두 나라의 이해관계는 대립적이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이므로 섣부른 충돌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이와 관련,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 구상에 대해 비판적 논평을 가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나이 교수는 ‘축(pivot)’이나 ‘재균형(rebalancing)’ 같은 표현 자체가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속 깊은 관여(deeper engagement)’ 정도의 용어 선택이 훨씬 적절해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영토분쟁 또한 군사적 충돌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가 주종을 이뤘다. 공격적 민족주의가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중·일 양국의 지도부가 충분한 자제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무력 사용의 개연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참석자들 사이에 미국의 무기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대전략이 없거나 도덕적 이상주의를 포기해서가 아니라 만성적 재정적자로 인해 해외에서 과거와 같은 군사개입을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시리아나 말리 사태 등에서 이미 미국이 보여 준 소극적 자세가 이를 방증해 주고 있다. 세계경찰을 자임해 오던 미국의 국제적 역할이 앞으로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예고하는 중요한 단서가 아닐 수 없다.



 끝으로 기억해 둬야 할 것은 북한 핵문제에 대해 토론 참가자들이 대체적으로 무관심했다는 점이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 2087호 채택에 항의해 3차 핵실험을 비롯한 추가 도발의 가능성을 공공연히 시사하고 있는데도 다보스포럼은 이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이들이 이 문제에 무심하다는 사실은 자못 심각한 신호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단기적으로 한국의 신용등급 평가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세계는 우리를 잊은 채 저만치 달려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보스에서)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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