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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본인 테러 트라우마 朴, 결국 경호실을

청와대 경호처가 경호실로 격상된다. 윤창중 인수위원회 대변인은 25일 정부조직개편안을 추가로 발표하면서 “대통령실을 비서실로 개편함에 따라 경호실을 비서실로부터 분리하고 실장을 장관급으로 두고자 한다”고 밝혔다. 기존의 경호처를 경호실로 승격하면서 차관급의 경호처장을 장관급의 경호실장으로 격상한 것이다.



당선인 경험상 경호에 민감한 편
증원 없이 MB정부 이전 지위로
기관 승격해 힘 실어준 상징조치

유민봉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는 그 이유에 대해 “그동안 경호처의 업무 과중에 대한 요구사항을 당선인이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정원에서 큰 인원 증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원은 늘리지 않은 채 지위만 격상했다는 의미다. 윤 대변인은 “인원을 안 늘리면 업무 과중이 해결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업무가 과중되더라도 그걸 즐겁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결국 실무적인 이유보다 상징적인 이유가 더 컸다는 의미다.



인수위 관계자는 “역할 자체보다 기관이 가지는 상징성이 있다”며 “차관이 장일 때와 장관이 장일 때 구성원들이 가지는 사기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박 당선인의 불행한 가족사도 경호실을 격상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박 당선인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모두 피격되는 아픔을 겪었고, 본인도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 신촌 유세에서 ‘커터 칼’ 테러를 당해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경호 문제에 대한 민감도가 다른 역대 대통령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경호를 중요시 여겼던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의 영향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963년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경호실의 위상과 기능을 강화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시기만 해도 대통령 경호는 경무대(청와대의 옛 이름) 경찰서가 담당했다. 60년에 와서야 청와대에 경찰관 파견대가 설치됐다. 그러다 61년 5·16 이후 중앙정보부에 경호대가 발족됐다. 62년 3월 윤보선 대통령이 사임하자 박 전 대통령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겸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으면서 경호대를 경호실로 개칭했다. 박 전 대통령은 63년 취임(12월 17일)과 동시에 대통령 경호실을 독립 조직으로 창설했다. 이와 함께 경호실의 임무도 늘렸다. ▶대통령과 그 가족의 경호 ▶대통령 당선 확정자와 그 가족의 경호 ▶경호실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국내외 요인 ▶대통령 관저 경비 등이었다.



 청와대 경호실은 청와대와 대통령을 겨냥한 테러가 늘면서 점점 위상이 강화됐다. 68년 1월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그해 3월 대통령경호실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청와대 방어 계획과 보안활동 강화가 목적이었다. 74년 피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자 박 전 대통령은 그해 9월 대통령 경호·경비안전대책위원회를 설치했다. 김영삼 정부 때 탈권위주의적 바람과 함께 청와대가 국민들에게 개방되는 추세로 변했지만 경호실은 여전히 그 위상을 유지했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2월, 독립기관에서 대통령실 소속 경호처로 통합됐다. 박 당선인은 이를 다시 경호실로 승격한 것이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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