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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男, 1년간 하키 배웠더니…깜짝








 

#1. “농사일도 바빠 죽겠는데 운동은 무슨.” 형은 김재영(51)씨의 운동을 못마땅해 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 써야 할 농번기에 농구공이나 들고 다니는 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 오십에 플로어하키라는, 듣도 보도 못한 운동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것도 답답했다. 하지만 김씨에게 운동은 그야말로 ‘삶의 전부’였다. 공을 향해 뛸 때, 퍽을 들고 달릴 때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경기장에서는 모든 게 평등했다. 자신의 나이도, 지적장애 3급이란 숫자도, 주변의 시선도 잊을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농사일이나 도우라는 형의 ‘운동 금지령’이 떨어지자 경기장에서 초롱초롱하던 눈은 이내 힘을 잃었고 어깨는 축 처져만 갔다.

 #2. “왜 먹지를 못하니? 배가 안 고파?” 코치와 함께 배드민턴 연습을 끝낸 이진배(22·지적장애 3급)씨는 좀처럼 밥을 떠넘기지 못했다. 운동 직후라 배가 고플 만도 한데 자꾸만 식당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결국 밥을 반 공기도 못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은 그는 “한 번도 외식한 적이 없어서…”라며 고개를 떨궜다. 유독 부끄러움이 많고 낯선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년이었던 이씨는 운동신경만큼은 남달랐지만 말수가 적었고, 감정 표현도 서툴렀다.

 #3. 강원도 춘천시 동면 감정리. 춘천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내려서 산길을 30여 분 걸어 들어가면 김영규(17·지적장애 2급)군의 집이 나온다. 지체장애 6급인 아빠와 영규가 어릴 때 집을 나간 엄마 대신 할머니가 영규와 영규의 형을 키운다. 주된 수입원은 소다. 할머니는 소가 새끼를 낳으면 팔아서 네 식구가 1년간 살아갈 돈을 마련한다. 삼부자의 손은 나무 껍질처럼 시커멓게 갈라져 있다. 기름값이 비싸 매번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나무를 하기 때문이다. 나무 보일러로 소 여물을 끓이고 난방을 해 집안에는 늘 연기가 자욱하다. 그 속에서 영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산골짜기의 모자란 아이’였다.

29일 개막 내달 5일까지 7개 종목

이들 세 명을 비롯해 운동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을 법한 열다섯 명의 남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지적장애인들의 스포츠 축제인 ‘2013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출전을 위해서다. 이들은 지난해 1월 창단한 강원도 장애인종합복지관 소속 플로어하키 팀의 ‘당당한’ 멤버들이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복지관 체육교사 손원우(34)씨 등 코치 네 명이 춘천특수학교와 일반 중·고교의 도움반(지적장애인 대상 학급) 학생들, 복지관에서 한 달에 십여만원을 받고 소일하는 성인 지적장애인들을 한 명 한 명 모았다. 손 코치에겐 ‘최강의 팀을 구성하리라’는 소망이 있었다. 강원도의 상징인 반달곰 ‘반비’를 따서 팀 이름도 똑같이 지었다.

 손 코치는 플로어하키가 일반인에겐 낯설지만 지적장애인들이 쉽게 단체생활을 배우고 공간 지각능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운동이라고 판단했다. 동계스페셜올림픽에서 유일한 단체종목인 플로어하키는 아이스하키를 변형한 운동이다. 스케이트 대신 운동화를 신고 나무나 우레탄 바닥에서 경기한다. 115cm 길이의 스틱으로 지름 20cm의 퍽을 골대로 밀어넣는다. 플로어하키의 퍽은 아이스하키보다 훨씬 크고, 가운데 도넛처럼 구멍이 있어 스틱을 끼워 드리블과 패스·슈팅을 할 수 있다.

 시작은 했지만 현실의 벽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일단 운동장이 없었다. 학교가 부족하고 산간 지방이 많은 탓에 강원도는 늘 체육관 부족에 시달린다. 더욱이 비장애인들이나 각종 동호회가 배드민턴장이나 체육관을 선점해 이들은 딱히 갈 데가 없었다. 손 코치는 “강원도와 제주도만 장애인 전용 체육관인 ‘재활 스포츠센터’가 없다”며 “장소 섭외가 안 돼 놀이터나 모래 운동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뛰어다니거나 배드민턴 코트를 절반만 빌려 운동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춘천시 담당자 졸라 운동화 겨우 얻어

운동장에 모이는 데도 두어 시간이 걸렸다. 춘천시 신동면 팔미리에 사는 박민수(17)군은 장애인종합복지관까지 오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린다. 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종점에서 종점을 오가기 때문이다. 지적장애인들이다 보니 오다가 길을 잃거나 다른 데로 새는 선수도 적잖았다. 결국 손 코치를 비롯한 코치진은 훈련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이들을 훈련장까지 직접 데리고 왔다가 데려다 주기로 한 것이다.

 장비는 주니어 아이스하키팀이 낡아서 버린 것들을 주워다 수리해서 썼다. 100만원 이상 필요한 골키퍼 장비와 1인당 50만~60만원에 달하는 선수들 장비를 구입할 재간이 없어서다. 팔과 무릎 보호대도 없어서 스펀지에 검은색 절연테이프로 팔다리를 감고 연습했다. 절연테이프를 붙인 팔다리엔 피부병이 생기기도 했다.

 복장도 가관이었다. 손 코치는 “낡아빠진 청바지에 찢어진 운동화를 신고 오는 학생, 한여름에 겨울 체육복을 입는 학생 등 복장이 중구난방이었다”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춘천시청을 찾아갔다”고 털어놨다. 손 코치는 담당자를 일주일 내내 찾아가 농성 아닌 농성을 했다. “경기장 바닥이 미끄러우니 선수들이 다치는 것만은 막아 달라. 춘천시 선수단으로 돼 있으니 춘천시에서 운동화만큼은 지원해 달라”고 애원했다. 지금 선수들이 애지중지하며 신고 있는 단체 운동화는 그렇게 해서 생겼다.

 어렵게 모였지만 제대로 된 훈련을 하기까지는 무던히도 시간이 걸렸다. 손 코치는 “처음 선수들을 모아놨을 때를 생각하면 헛웃음이 난다”고 했다. 모래밭을 뒹굴고, 제멋대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경기를 시켜보려고 스틱을 쥐어주면 자살골을 넣기 일쑤였다. 지적 능력이 떨어져 피아의 구분이 흐릿하기 때문이다. 부상도 잦았다. 플로어하키는 허리까지 오는 스틱을 구멍난 퍽에 끼워 움직이는 경기인데, 기술이 없는 지적장애인 선수들이 퍽을 빼앗겠다며 서로의 발목을 냅다 두들겨댔다. 단단한 단풍나무 스틱으로 약한 발목을 얻어맞은 선수는 그 길로 병원에 실려갔다. 코치들은 그 뒤로 무릎과 정강이를 감싸던 보호대를 발목까지 내려 쓰도록 했다. 악조건이 끊이질 않았지만 손 코치는 이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더디지만 차츰 상황이 나아지는 게 보였다.

 “상대편이 퍽을 가지고 드리블해 오면 스틱 체킹을 해야지!”(손 코치) “……?”(선수들)

 손 코치는 “훈련 도중 나도 모르게 어려운 스포츠 용어를 쓸 때가 있는데, 그때 선수들 반응을 보면 ‘아차’ 싶다”며 웃었다. 4년여 동안 지적장애인 체육활동을 지도하면서 ‘새로운 기술이나 경기 규칙은 반드시 몸으로 설명한다’는 노하우도 생겼다. 드리블도, 상대편의 퍽을 빼앗아 슈팅하는 방법도, 패스하는 방법도 몸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빨랐다. “머리로 배우는 건 계속 잊어버려도 몸으로 익힌 건 웬만해선 잊어버리지 않더라고요.” 무한 반복학습도 코치들에겐 일상이다. 손 코치는 최연장자인 수비수 김재영 선수, 운동이 서툰 이재욱 선수 등이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골키퍼 구역을 밟을 때마다 반칙이라는 점을 거듭거듭 설명했다.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해도 지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게 코치의 임무였다.

 꾸준한 훈련 덕에 선수들의 기량은 조금씩 향상됐다. 지난해 6월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네 팀 중 당당히 1등을 차지해 국가대표에 뽑혔다. 실력을 인정받자 강원도청은 지난달 반비 팀에 파격적으로 일본 전지훈련 기회를 제공했다. 일본 구마모토복지대가 플로어하키 리그에 반비 팀을 초청한 데 대한 화답이었다. 여기서도 선수들은 10여 개 일본 팀을 꺾고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했다.

 운동을 시작한 뒤 생긴 가장 놀라운 변화는 선수들의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말 한마디 없던 이진배 선수는 운동을 하면서 표현력도 늘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2010년엔 대구하계스페셜올림픽 성화 봉송 첫 주자로 뛰었다. 2011년 송곡대 레저스포츠학과에 입학한 이씨는 이제 반비 팀의 주장을 맡아 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을 직접 이끌고 있다. 형의 반대로 1년의 공백 끝에 코트를 다시 찾은 김재영씨도 “훈련하다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김만수(16)군도 요즘 플로어하키 덕분에 부쩍 웃음이 늘었다. 팀의 막내로 형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김군은 지적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교를 찾아 홍천에서 멀리 춘천까지 온 유학생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다 보니 처음엔 외로움을 많이 탔지만 형들이 가족처럼 보살펴주면서 심적 안정을 되찾았다. 연습경기에서 땀을 흠뻑 흘린 김군은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팀이 꼭 우승할 것”이라며 “메달을 따면 부모님께 자랑하고 함께 제주도 여행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팽팽히 당겨진 고무줄처럼

 대회를 앞두고 손 코치가 마지막 점검에 나섰다. 골키퍼를 포함해 총 6명이 뛰는 이 경기는 실력과 관계없이 모든 선수가 동일하게 출전해야 한다. 경기가 끝났을 때 출전 시간이 크게 다른 선수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몰수패(0-10)를 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코치는 9분씩 3피리어드(27분)의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3분마다 3명 이상씩 선수를 교체한다. “모든 선수가 잘하는 건 아니지만 기회는 공평하게 줘야 하지 않겠어요.”

 창단한 지 1년. 오합지졸 열다섯 명의 선수는 어느새 ‘전사’가 돼 있었다. 한껏 당겨진 고무줄처럼 긴장한 채 스페셜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존재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지적장애인에서 ‘한국의 국가대표’로 거듭난 이들의 눈에 이젠 더 이상의 두려움은 없다. 이들은 30일 오전 9시 강원도 강릉시 관동대 체육관에서 ‘또 하나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 힘차게 스틱을 부여잡을 예정이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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