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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라, 인터뷰 기자가 '자극' 찾자 날린 한 방

경남 거제고 학생회 부회장, 2006년 경희대 신방과 입학, 2010년 KBS 공채 25기 개그맨 합격, 2011년 KBS 연예대상 우수상 수상, 2012년 KBS 연예대상 최우수상 수상.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이력이다. 재수·삼수를 거듭하는 대학입시의 고충도, 서류 30개 지원에 30개 탈락인 ‘눈물의 취업난’도 없었다. 20년간의 무명생활을 거쳐 드디어 빛을 본 노장도 아니요, 이렇다 할 생사의 기로를 맞딱뜨린 적도 없다. 4년차 개그우먼 신보라(26)의 삶은 이렇게 꾸준히 상한가를 치고 있다.

 고백하건대 이런 인터뷰이는 십중팔구 재미가 없다. 질문 하나만 던져도 진실 반 과장 반의 기구한 스토리를 술술 풀어내는 ‘내공’도 기대하기 힘들뿐더러 드라마틱한 경험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신보라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까불까불하면서도 남에게 험한 말 못하고,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면서도 요동하지 않는 자의 냄새가 난다. 무엇이 이 어린 처자를 애늙은이로 만들었을까. 궁금증을 지닌 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신인

‘휴가 땐 뭘 하고 싶냐’고 묻자 신보라는 “대학 시절 공부만 했지 배낭여행이나 국토순례는 한 번도 못했다”며 “여행을 가고 싶다”고 답했다. [사진 YMC 엔터테인먼트]

 - 벌써 4년차 개그우먼이다.

 “이 생활이 많이 익숙해졌다. 처음엔 너무 위축돼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많이 까분다.(웃음)”

 - 개그맨 시험을 단박에 합격했는데.

 “공채 시험에서 미국의 팝 가수 비욘세 모창을 했는데 잘해서라기보다는 뻔뻔해서 뽑아주신 것 같다. 당시 나는 개그맨 시험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이 바닥도 좁아서 지망생들끼리는 서로 다 아는데 난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였다. 기수마다 ‘쟤 누구지? 왜 여기 와 있지?’라는 합격자가 한 명씩 있다더라. 내가 그랬고, 박지선 선배님(공채 22기)도 그런 경우였다.”

 - 갑자기 개그맨 시험을 본 계기는.

 “난 굉장히 순종적인 스타일이다. 부모님이 나로 인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고, 말썽 피운 적도 별로 없었다. 학생 때는 공부 잘하는 게 효도라고 생각해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러다 4년간의 대학생활이 끝날 무렵 취업이 현실로 다가오니 막막하더라. 처음으로 진지하게 ‘내가 뭘 좋아하지? 뭘 잘하지?’ 고민했고 결국 이 길을 택했다.”

- 장수생(수차례 떨어진 지망생)들이 질투했겠다.

 “나는 공채 합격 당시 스물셋이었고, 동기 중 최연장자는 서른 살이었다. 수년간 도전을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를 절박하게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개그맨이란 직업이 귀하게 느껴졌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나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정말 절실한 자리라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했다.”

 - 공부만 하던 학생인데 방송에 잘 적응했나.

 “너무 어려웠다. 여긴 프로 세계더라. 내가 했던 개그와 차원이 달랐고, 다들 개성이 뚜렷해 인간관계를 맺는 것도 힘들었다. 첫 사회생활이라 실수할까 봐 늘 얼어 있었는데 PD가 ‘보라야, 좋은 개그우먼은 누가 봐도 쉽게 장난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는 시종 성숙한 모습이었다. 가끔씩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말은 늘 신중했다. 개그콘서트(개콘) ‘생활의 발견’에서 뜬끔없이 “우리 헤어져”라고 말하는 엉뚱한 여자와도, ‘용감한 녀석들’에서 “한숨 대신 함성으로”라고 외치는 직언가와도 달랐다.

밥 먹다가 수다 떨면서도 아이디어 고민

개콘의 ‘용감한 녀석들’은 음반을 발매하고 애니메이션 더빙을 하는 등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오른쪽은 용감한 녀석들 멤버 박성광씨. [중앙포토]
 - 개그맨들의 생활 패턴은 어떤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1시에 KBS로 출근한다. 수요일 개그콘서트 녹화를 위해 월요일은 리허설- 퇴짜- 재구상, 화요일은 재리허설이 이어진다. 수요일 녹화 후에 목·금은 다음주 아이디어와 대본을 준비한다. 재미가 없으면 주말도 예외 없이 출근이다.”

 이들은 밥 먹으면서도, 수다를 떨면서도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고민한다. 운 좋게 리허설을 빨리 통과하면 다음주 아이디어를 미리 준비하거나 일찍 퇴근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출근은 있는데 퇴근은 없는’ 생활을 반복한다. 이렇게 고생 끝에 무대에 오르는 개그맨은 50여 명. 100명의 개그맨 중 고정 코너가 있는 절반은 전파를 타고, 나머지는 코너가 통과될 때까지 계속해서 고심한다. 2~3주 시도해 보다 사라지는 코너도 적잖다.

 - 코너는 어떻게 만드나.

 “마음 맞는 개그맨들끼리 모여 직접 짠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작진과 다른 개그맨들 앞에서 ‘검사’를 맡는데, 여기서 통과되면 녹화를 할 수 있다.”

 - 고정 코너가 있으면 고정 수입이 보장되나.

 “고정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녹화해도 재미없으면 바로 편집된다. 녹화만 하고 방송에 나가지 않을 경우 출연료의 60%만 지급된다.”

 - 매주 생존과 직결된 ‘개그 전쟁’이 펼쳐지는 것 같다.

 “그래도 개콘은 실패를 용인하고 계속 기회를 준다. 재미없다고 낙인찍히지도 않고 좋은 코너를 만들어 오면 언제든 무대에 설 수 있기 때문에 다들 포기하지 않는다. 이게 개콘의 힘인 것 같다.”

 - 아이디어를 내는 노하우는.

 “코너마다 다르다. 생활의 발견은 삼겹살집에서 태어난 코너다. 식사 중 갑자기 헤어지자고 정색하면서 웃음 포인트를 만들었으니까. 코너가 정착되고는 직접 식당 순회를 하며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다 듣고 적었다. 종업원은 무심한 표정으로 ‘들깨가루 더 드릴까요’라고 말하네, 손님들은 ‘감자탕 중짜 주세요. 앞접시 좀 갖다 주시고요’라고 하는구나. 하나하나 현장에서 컨셉트를 그려왔다. 지금은 게스트와 함께 연기하기 때문에 게스트 사전 조사도 열심히 한다.”

 - 용감한 녀석들은.

 "대중들이 가려워하는 데를 찾아 긁어주는 코너다. 사람들이 어떤 답답함을 갖고 있는지 짚어내는 게 관건이기 때문에 기사를 많이 읽는다. 한 주의 이슈를 빠뜨리지 않고 챙겨보는 편이다.”

 용감한 녀석들의 발언은 묵직하다. 단순한 가십보다는 사회 문제를 깊숙이 찌른다. MBC 파업 당시 “무한도전이 보고 싶다”거나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불거지자 “대통령이 되려면 친척 관리부터”라고 외치는 식이다.

 - 성역 같은 건 없나.

 “상류층의 권위에 대한 언급, 정치나 연예에 대한 풍자를 컨셉트로 한 코너라 처음엔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대부분은 이해해 주신다. 오히려 얻은 게 많다. ‘용녀’라는 이름으로 앨범도 내보고, 영화 더빙도 하고, 광고도 찍고, 대학 축제 다니며 에너지도 얻었다.”

 - 처음부터 코너마다 대박이 났다.

 “난 아이디어가 좋은 편은 아니다. 그보다는 주어진 역할을 잘 살리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난 노래라는 장기가 있었고, 그에 맞는 좋은 코너를 만났다.”

 신보라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노래 실력’이다. 신인 시절 KBS 해피투데이 ‘남자의 자격’ 합창단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고, 개콘 첫 코너인 ‘슈퍼스타 KBS’에서도 실력을 뽐냈다. 용감한 녀석들에서도 시원한 보컬로 세상을 ‘디스’하고, SBS 드라마 ‘유령’ OST도 직접 불렀다. 뮤지컬 감독 박칼린씨는 "뮤지컬 ‘렌트’의 모린 역에 신보라가 딱”이라며 재능을 칭찬하기도 했다.

 - 가수 할 생각은 없었나.

 “노래 잘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개그 하면서 맘껏 노래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 연기하고 싶은 생각은.

 "개그도 연기라서 개콘의 개그맨들 대부분 연기에 관심이 있을 거다. 기회가 있으면 도전해 보고 싶다.”

 - 2년 연속 큰 상을 받았는데.

 “3년간 개콘을 하면서 누구에게나 때가 온다는 걸 느꼈다. ‘개콘의 샛별’도 한순간이고, ‘개콘의 주역’도 계속해서 바뀐다. 개콘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지칠 때쯤 다른 캐릭터가 나타나고, 그 코너가 시들할 때쯤 또 다른 코너가 등장한다. 이 과정이 10여 년간 이어져 왔기 때문에 교만할 것도 없고, 지금 안 된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다.”

‘애늙은이’ 신보라

 - 첫 월급으로 뭘 했나.

 “계좌이체를 했다(웃음). 첫 출연료가 40만원 조금 못 됐다. 그대로 어머니께 보냈더니 입을 다물지 못하시더라. 가슴 벅차하셨던 모습이 생생하다.”

 - 부모님을 끔찍이 생각하는 듯한데, 특별히 고생을 많이 하셨나.

 “누구에게나 삶의 짐은 있지 않나. 우리집이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어려웠던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은 한 번도 일을 쉬지 않으셨다. 그래서 절로 부모님을 생각하게 됐나 보다.”

 - 살면서 가장 크게 일탈한 적은.

 “개그맨 시험 본 일(웃음)?”

 - 시련이 있었다면.

 “작은 일이라도 본인에겐 큰 사건일 수 있고, 큰 일도 작게 생각하면 시련이 아닌 게 된다. 엄마가 조선소에서 일하시는데 지난해 쇳덩이가 쏟아져 발목이 완전히 부서지는 사고를 당했다. 수술 후 오랜 기간 입원했고 1년 넘게 재활치료 중이시다. 그래도 ‘그 덕분에 엄마가 일 좀 안 하고 쉬게 됐네’라고 생각한다. 부모님 모두 실직하시고 저도 휴학하고 있었을 때도 힘든 시기였다. 사랑에 실패했던 것도. 작지만 고등학교 때 정말 확신을 갖고 준비했던 학생회장 선거에서 떨어졌을 때도 펑펑 울었다. 하지만 결국엔 더 좋은 자극이고 경험이 되더라.”

 - 나이보다 성숙하단 얘기 많이 듣지 않나.

 “올해 만으로 스물여섯이 됐다. 스무살 무렵엔 애늙은이란 소리도 제법 들었지만 이제 제 나이를 찾아가는 게 아닐까. 그래도 친구들 만나면 영락없는 수다쟁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돌을 던지면 요동치기보다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꿀꺽 삼키는 바다 같은 모습이다’라고 하자 그는 “내가 그렇기도 하고, 또 그래야 하는 것 같다”고 담담히 답했다. “대중의 사랑은 영원한 게 아니잖아요. 연예인은 사소한 것들도 다 기사화되면서 오해받기 쉬우니까. 박수쳐 줄 때 자만할 것도 없고, 대중에게 잊혀진다고 좌절할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었다. 그래도 인생 살면서 정말 귀에 솔깃할 만한 ‘한 방’이 없었느냐고. 그러자 그는 “폭탄(선언)을 기대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서 자극적인 걸 찾긴 힘들 거다. 내겐 재미없는 인터뷰가 가장 잘 어울린다”며 되레 기자에게 한 방을 날렸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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