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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이어폰 끼고 걸으면 위험 … 가방 날치기 그냥 뺏기세요”

저승에 쫓아가서라도 범인을 잡겠다는 베테랑 형사 4인방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JTBC ‘당신을 구하는 TV, 우리는 형사다’에 고정 출연하며 시청자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윤석·박용호·김수진·임문규 경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밤 늦게 이어폰 꽂고 음악 크게 들으면서 걸으면 안 됩니다. 한쪽으로만 듣거나 볼륨을 낮춰 주변의 소리를 같이 들으세요.”

“날치기를 당할 경우 차라리 가방을 빼앗기세요. 그렇지 않으면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 살해까지 당하게 됩니다.”

 지난 21일 페이스북에 ‘여성분들이 꼭 읽어줬으면 한다’는 내용의 범죄 예방 글이 포스팅됐다. 올라온 지 사흘 만에 ‘좋아요’가 8만6000여 건이나 눌려졌고, 추천 댓글이 2600여 건에 달했다. 특히 여자친구를 둔 남자들이 “OO야, 제발 밤에 노래 듣는다고 이어폰 끼고 걷지 좀 마라!”는 걱정 어린 글이 많이 올랐다. 게시글의 주인공은 경찰관이 아닌 일반인 남성. 이 남성은 “JTBC의 ‘당신을 구하는 TV, 우리는 형사다’가 글의 출처”라고 밝혔다. 범죄 현장의 최전방에서 활약 중인 베테랑 형사들이 직접 출연해 수사 뒷얘기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아 어느새 입소문이 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고정출연하는 ‘입담꾼 형사 4인방’(강윤석·임문규·김수진·박용호)을 만나 브라운관 밖에서의 20년 수사 경험담을 들어봤다.


아무도 믿지 마라, 범죄는 언제든 일어난다

 늦은 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한 여고생이 집으로 걸어가는데 한 남성이 다가온다. “옆 학교 선생님인데 잠깐 짐 옮기는 것 좀 도와줄래?” “네, 선생님.”

 남성을 따라 한적한 골목길에 들어선 여고생은 순순히 ‘선생님’을 따라 갔다. 그날 밤, 여고생은 집에 돌아가지 못했고, 다음날 학교 인근 주택 3층에서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알몸 상태의 시체로 발견됐다. 잔인하게 성폭행당한 뒤였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인천 남동경찰서 청소년계 박용호(56) 경위는 “매년 사건이 발생했던 3월이 되면 그 여학생이 눈앞에 어른거린다”며 “몇 달 뒤 똑같은 사건이 또 발생했는데, 막지 못한 미안함과 분함에 아직도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옆에서 김수진(44) 경위가 말을 거든다. “아직도 도움을 빙자하거나 친분을 이용하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죠. 특히 여성들이 주된 대상입니다.” 서울여성·학교 폭력 원스톱 지원센터에서 성·가정·학교 폭력 상담 및 수사 총괄팀장을 맡고 있는 김 경위는 “길을 가르쳐주려다, 혹은 지인을 도와주려다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하고 심지어 살해까지 당하는 경우가 여전히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설령 살아남아도 피해자에겐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지만 범죄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며 “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믿지 말아야 할 대상’에 친아버지가 포함될 땐 수사를 맡은 형사들도 혀를 내두른다. 경북 경주경찰서 강력팀 임문규(43) 경위는 초등학교 3학년 딸이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8년간 성폭행한 아버지를 잊지 못한다. “애한테 성교육시켜 준다며 딸을 대상으로 그짓을 했어요. 나도 같은 나이 또래 딸이 있는데, 하도 어이가 없어 물어보니 ‘내 물건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오히려 대들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배를 확 걷어찼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 장기미제수사팀 소속으로 20년 가까이 강력사건을 맡고 있는 강윤석(48) 경위 역시 아버지로부터 4년간 성폭행당한 한 여고생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단란주점에서 밴드 활동을 하는 아버지는 학교를 마치고 온 둘째딸에게 “찜질 좀 해달라”며 ‘신체 접촉’을 시작한 뒤 딸이 고2가 될 때까지 성관계를 요구했다. 그는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오히려 “딸이 정신이상”이라며 딸의 얘기를 거짓말로 몰아갔다. “딸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우는데, 그렇게 서럽게 우는 건 살면서 처음 봤어요. 잘 살고 있어야 할 텐데….”

학교폭력 예방 강사로도 활동

 장기미제수사팀의 강 경위는 대부분 실체가 없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범인을 검거하는 데 총력을 쏟는다. 그는 “7~8년을 쫓아 범인을 붙잡아도 제대로 반성하는 경우가 없어 ‘진짜 잡은 게 맞나’ 싶을 때가 많다”고 했다. 채무관계로 갈등을 겪던 피해자를 살해해 암매장을 시도하던 중 피해자가 살아나자 산 채로 생매장해 버린 범인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겠다며 직접 변론을 준비하기도 했다.

 “7~10년 만에 검거되면 영화에서처럼 ‘아, 이제 속 편합니다’라며 반성할 것 같죠? 절대 안 그래요. 매일같이 ‘내가 잡히면 이렇게 잡아떼야지’라고 시뮬레이션까지 해보곤 하죠.” 20년차 강력반 형사인 임 경위는 딱 한 번, 강도상해를 저지른 범인이 어린 아들을 위해 ‘새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경우를 봤다고 했다. “교도소에서 용접을 배워 나오더니 착실하게 잘 살데요. 그거 딱 한 번뿐입니다. 개과천선? 그런 건 없어요.”

 ‘배운 게 도둑질’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이 형사들 사이에선 ‘절대적 진리’로 통한다. 재범의 경우 수법도, 장소도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강 경위도 같은 생각이다. “축의금 훔치던 놈은 나와서도 축의금 훔치고, 강도하던 놈은 머리 나빠서 사기는 못 치고, 사기치던 놈은 겁이 많아 강도짓 못해요. 남대문시장에서 검거되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다 할아버지·할머니들이죠. 저희가 폐쇄회로TV로 지켜 보는데도 언제 하는지도 모르게 해버립니다. 그런 고급 기술은 절대 썩히지 않죠.”

 박 경위는 인상이 무섭기로 소문이 나 있지만 요즘은 전국을 돌며 학교폭력 예방 강의를 하느라 쉴 틈이 없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사부님’으로 불리는 박 경위는 1989~92년 강력반 검거 1위의 ‘도둑 잡는 형사’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92년 학력고사 전국 10등이었던 한 아이가 범죄의 유혹에 빠져 윤락가와 마약을 전전하다 자살하는 사건을 접하고는 한동안 일을 손에 잡지 못했다.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범죄에 빠지지 않게 미리 예방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95년 청소년 2급 지도사 자격증을 딴 뒤 아이들을 위한 ‘사부님’으로 변신했다.

 인터뷰 도중 그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떴다. “사부님, 저 오늘 반에서 10등 했어요!” 중학교 2학년 김정호(14·가명)군의 문자였다. 학교에서 알아주는 ‘일진’이었던 정호군은 박 경위를 만나 속 깊은 대화를 나눈 뒤 “공부 열심히 해서 경찰이 되고 싶다”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박 경위가 대견스러운 듯 말했다. “아이들에게 ‘늘 지금을 소중히 여기라’고 당부합니다. 너희들 한 명 한 명이 너무 소중한 존재라고, 그렇게 말해주곤 하죠.”

 조직폭력배 전담팀에서 조폭 관련 사건을 맡고 있는 임 경위도 옆에서 맞장구친다. “ 저 아이들이 잘못 빠지면 다 조폭이 됩니다. 흔히 ‘시내 나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이냐면 이제 조폭 생활 시작한단 뜻입니다. 그 나이가 대략 17~18세 때죠. 얘들이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강도 등 범죄 저지르고 깜방 몇 번 살다 나오면 금세 서른 살이 됩니다. 12년 전 21세짜리를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시켰는데 얼마 전 그 아이한테서 출소했다고 전화가 왔어요. 33세 돼서 ‘이제 잘 살겠습니다’라고 하는데 뿌듯하더라고요.” 임 경위도 경북 지역 일진 학생 17명을 정기적으로 만나며 ‘특별지도’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후회할 일만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형들(조폭 출신 선배들) 보면 알지 않겠어요. 얘들도 진심을 가지고 다가가면 잘 알아듣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형사’

 갈비뼈가 부러지고, 한 달 넘게 집에 못 들어가고, 밥 먹듯 병원에 입원해도 범인의 윤곽이 잡힐 때면 늘 초임 형사 때처럼 가슴이 떨린다. 강 경위는 “특히 시체가 없어 허공에 붕 뜬 듯한 사건의 경우 범인을 알게 됐을 때의 그 쾌감은 말로 표현 못한다”고 했다. 김 경위도 2000년대 초 ‘자유로 귀신 사건’이라 불리며 괴담까지 떠돌았던 사건을 잊지 못한다. 그는 “실종된 지 1년 만에 한강에서 유골 상태로 발견된 여성을 전국의 실종자들과 일일이 대조 끝에 3년 만에 신원을 파악했다. 3개월 뒤 범인을 추적해 잡았는데, 피해자 가족들이 내 손을 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며 “억울한 영혼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2004년부터 7년간 54명의 여성을 성폭행 및 성추행한 일명 ‘경주 발바리’ 검거의 1등 공신이었던 임 경위도 같은 심정이라고 했다. “여자 나이 안 가리고 무분별하게 성폭행한 놈이었는데, 좀처럼 단서가 안 잡혀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요. 그랬던 그 놈의 꼬리가 조금씩 잡혀간다 싶으니까 수년간의 고생이 전부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더라고요.”

 이들은 “영원한 범죄도, 영원한 범죄자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못 잡은 범인은 인수인계를 해서라도 끝까지 추적한다는 게 형사들의 신조라는 설명이다. 그들에게 공소시효는 중요하지 않다. 매주 경주에서, 인천에서 3~4시간을 달려와 JTBC ‘우리는 형사다’에 출연하는 것도 각종 범죄 예방법을 소개하며 시청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범죄야 발생 안 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그저 국민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매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죠.” 베테랑 형사들의 눈에서 빛이 난다. ‘다시 태어나도 형사를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들은 한목소리로 답했다. “살아서도 형사, 죽어서도 형사 아닙니까. 저승 가서도 범인 잡아야죠. 영원히 형사로 살 겁니다.”

송지영 기자

형사들이 말하는 ‘범죄 예방 10계명’

1 택시는 뒷자리에 탈 것. 차 번호를 반드시 지인에게 알릴 것.
2 낯선 사람이 건넨 음료수는 절대 마시지 말 것.
3 주차는 CCTV가 있는 곳에 할 것.
4 차체가 높은 차량 옆에 주차하지 말 것.
5 낯선 사람에게 휴대전화를 빌려주지 말 것.
6 밤거리에서 이어폰 꽂고 크게 들으며 걷지 말 것.
7 지갑을 주으면 반드시 경찰에 신고할 것.
8 지하철·버스에서 성추행을 당하면 즉시 주변에 알리고 동영상 등으로 증거를 남길 것.
9 오후 11시~오전 2시에는 절대 혼자 다니지 말 것.
10 독신 여성은 경비실을 통해 택배를 받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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