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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서양 “청을 몰라도 리훙장은 안다” … 어떤 인물이기에

리훙장 평전
량치차오 지음
박희성·문세나 옮김
프리스마, 309쪽
1만8000원



이 책은 두 가지 즐거움을 준다. 19세기 말 청조(淸朝)를 대표한 인물 리훙장(李鴻章·1823~1901)을 만나는 게 첫 번째요, 그 리훙장을 중국 근대의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의 눈과 입을 빌려 만난다는 게 두 번째다. 지은이 량치차오는 청조를 근대적으로 개혁하려 했던 무술변법(戊戌變法)운동의 주역으로 루쉰(魯迅)과 마오쩌둥(毛澤東) 모두 그의 글을 읽으며 구국(救國)의 꿈을 키웠다.

리훙장
 리훙장은 군사가·정치가·외교가의 삶을 살았다. 군사가로서 19세기 중엽 중국을 휩쓴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과 염군(捻軍)의 난을 평정하는 데 일등 공신이었다. 15년간에 걸친 내란 진압 전투에서 리훙장은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 이후 정치가로서 군사 중심의 근대화 운동인 양무(洋務)운동을 펼쳤다. 그런 그를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동양의 비스마르크’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1894년 청일전쟁에서의 패배는 리훙장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당시 ‘일본은 중국이 아니라 리훙장 한 사람과 싸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외롭게 싸웠고 또 패배했다. 이후 외교가로서의 삶은 고초의 연속이었다. 오래 살면 욕됨이 많은 것일까(壽則多辱). 청일전쟁을 매듭짓는 시모노세키(下關)조약 담판 중엔 일본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탄알이 왼쪽 눈 밑에 박히는 화를 당했다.

 이후 청으로부터 이권을 챙겨가는 서구와의 거의 모든 조약에 리훙장이 대표로 나섰다. 서양에선 ‘청을 몰라도 리훙장은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리훙장의 외교는 주로 다른 국가와 연합해 또 다른 국가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다.

 리훙장이 조선에 서구 각국과 조약을 맺어 일본을 견제하라는 밀서를 보낸 것 또한 같은 이치에서였다. 결국 죽기 한 시간 전까지도 더 많은 이권을 요구하는 러시아의 협박을 받다 간질환이 악화돼 숨을 거뒀다. 사후 ‘매국노’란 평이 많았다.

 량치차오는 두 마디 말로 리훙장의 삶을 정리했다. 단점은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어 감히 파격적이지 못했다(無學無術 不敢破格)”는 것이다. 청조의 테두리 안에만 머무르다 보니 국민의 실력을 키워 위엄을 갖춘 국가를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단지 서양의 겉모습만 보고 배우는 데 만족했다는 지적이다. 반면 장점은 “고생을 피하지 않고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不避勞苦 不畏謗言)”는 것이다. 온갖 굴욕적인 조약 체결 현장에 그는 노구를 이끌고 참석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온 세상이 욕을 하면 간웅(奸雄)이고, 온 세상이 칭송을 하면 호걸(豪傑)이다. 한데 리훙장은 욕과 칭송을 동시에 받는다. 량치차오는 그런 그를 ‘시대가 만든 영웅’이지 ‘시대를 만든 영웅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인물과 시대의 다양한 함수를 짚은 훌륭한 평전으로 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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