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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국민연금기금 일부를 기초연금에 써도 되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기초연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재원 중 30%가량을 국민연금기금에서 충당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놓고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연금 고갈과 세대 간 갈등 등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반론이 엇갈리고 있다. 찬반 두 목소리를 들어봤다.


기금 적정 관리·노인 빈곤 완화 효과 있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 사회복지학부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31.2%인 400조원이 적립된 국민연금기금은 30년 후 GDP의 52%인 2465조원까지 늘어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금기금을 적립한 일본, 스웨덴의 최대 적립액이 GDP의 30.2%였음을 고려하면 한국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적립금 쌓아두기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말 국민연금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주식 시가총액의 5.7%, 채권 발행 잔액의 14.9%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곧 주식시장의 10%, 채권시장의 20%를 차지해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금융 독점이 발생하고 여기서 수많은 폐해가 생길 수 있다.

 국민연금이 연금을 주기 위해 한 해에 수십조원의 주식과 채권을 처분하면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만에 하나 적립금이 줄어드는 2040년과 2060년 사이에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일이 닥치면 2000조원이 넘는 연금자산은 휴지 조각이 된다. 이 때문에 적립금의 크기를 적정한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적립금의 일부를 기초연금으로 쓰면 적립금 크기도 줄이고 심각한 노인 빈곤도 완화시킬 수 있다. 동시에 보험료로 연간 30조원씩 걷어 채권에 투자하는 데서 나오는 소비 위축의 부작용도 일부 제거해 한국 경제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내수 진작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기초연금 같은 방식으로 돈을 쓰지 않으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더 커진다. 적립금이 커지면 후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이 줄어들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현재 연금 적립금의 62%인 240조원이 국내 채권에 투자돼 있는데 대부분이 나중에 국가가 갚아야 하는 국공채다. 연금이 보유한 국공채는 기금 입장에서는 자산이지만 미래 세대에는 부채가 된다. 국가가 국민연금에 판 채권은 미래에 원금과 이자를 모두 상환해야 하고 그 돈은 미래 세대의 세금으로 충당되기 때문이다. 적립금이 적건 많건 기금의 존재 자체가 후세대의 부담을 유발하는 역설이 존재한다.

 기초연금의 재원으로 국민연금기금을 쓰는 것은 보험료를 낸 사람의 재산을 침탈하는 사유 재산 침해라는 주장도 있다. 국민연금이 개인 저축이나 개인 연금이면 이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보험료와 사회보험기금은 사유 재산이 아닌 공공자산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며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례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보자. 먹을 것이 부족한 할아버지가 자식에게 옆방에 가득 쌓여 있는 쌀을 조금만 달라고 했다. 안 된다고 대답할 자식은 없을 것이다. 상황을 확대해보자. 수백만 명의 노인이 400조원의 적립금 중 아주 조금만 기초연금으로 달라고 했다. 그런데 현 세대가 “그 돈은 우리들의 노후를 위해 쌓아둔 돈이며 그 돈을 가져가면 사유재산권 침해이니 절대 안 된다”고 말한다면 이상한 논리에 빠지게 된다. 내가 저축한 목돈의 일부를 나의 부모에게 주는 것은 당연하며 우리들이 저축한 국민연금기금을 우리들의 부모에게 주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국민연금기금을 당장 허물자는 것도 아니다. 적정 수준의 적립금은 한국 경제와 국민연금 운영에 필요하다. 다만 국민연금기금의 과도한 적립이 가져오는 경제적 위험을 성찰하고, 전 국민의 노후를 위해 조성된 국민연금기금의 ‘일부’를 너무나 어렵게 살고 있는 현재의 노인들에게 쓰는 것은 경제적·도덕적, 그리고 사회 통합의 측면에서도 타당하다는 것이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 사회복지학부


‘용돈’ 수준 연금 만들어 불신 키울 수 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산업화의 역군인 노인의 높은 빈곤율과 이에 따른 높은 노인 자살률은 노인 빈곤 문제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아래 등장한 것이 기초연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을 낮출 수 있는 정책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1997년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 활동 이후 연금 개편 논쟁의 중심에 기초연금이 있었다.

 연금 개편 논의가 폭발력을 지닌 까닭은 연금제도 자체의 경로의존성(path depen dence) 때문이다. 97년 기초연금 도입을 검토할 때만 해도 국민연금뿐이었다. 지금은 기초노령연금이 추가돼 있다. 국민연금이 보험료를 낸 사람에게만 연금을 주는 사회보험제도인 반면 기초노령연금은 세금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공공부조 제도다. 두 제도가 너무나 다르다 보니 통합과정에서 충돌이 불가피하다.

 기초노령연금 도입 당시 정부는 기초노령연금을 한시적인 제도로 인식했다.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현 노령층을 위한 준보편적인 제도로 도입한 것이다. 국민연금 수급자 수에 맞추어 기초노령연금 수급자 비율을 줄이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었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기초노령연금을 보편적인 기초연금으로 전환할 경우 2060년께 수급 대상자가 4배 증가하고 급여 수준이 2배 증가함에 따라 제도 유지 비용이 8배 이상 늘어난다.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 등에서 기초연금을 폐지하거나 비중을 축소한 이유다.

 보편적인 기초연금을 도입하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는 약 500만 명의 납부 예외자와 상당수 전업주부 등에게도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특히 소득 대체율이 축소될 국민연금은 저소득층에게 유명무실한 제도가 된다. 지금도 월 100만원 소득자는 국민연금을 20년 부어봤자 연금액이 30만원을 조금 넘는다.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이 줄어들면 저소득층에게 국민연금은 용돈 수준으로 전락한다. 이런 상황에서 저소득층이 없는 돈 쪼개서 국민연금을 붓겠는가?

 통합 운영이 자칫 저소득층의 국민연금 참여율을 떨어뜨리는 기제로도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저소득층의 노후 소득원이 기초연금에 한정돼 기초연금 급여 인상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 적은 액수의 기초연금만으로는 노후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초고령 사회 대처 차원에서 본인의 자조 노력을 강조하는 외국의 연금개혁 동향과도 맞지 않는다. 연금 사각지대 축소 차원에서 도입된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사업인 ‘두루누리 사회보험’의 취지와도 배치된다.

 통일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남한 인구의 2분의 1 수준인 북한에 대한 기초연금 소요 재원은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수 있다. 독일의 통일비용 중 연금이 25%를 차지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이 저소득층의 노후 빈곤 해소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취약 노인에게 더 많은 혜택이 필요한 이유다.

 2007년 개혁 당시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를 위해 보험료를 12.9%까지 인상하려 했다. 취지가 좋더라도 국민연금기금 일부를 기초연금 재원으로 활용하는 순간 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보험료 인상이 어려워질 수 있다.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구체적인 통합방안은 시간을 두고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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