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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갱시기와 아이스크림 와플

신 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
주말 점심에 부모님과 집 근처 국밥 집을 찾았다. 주문한 김치국밥이 나오자 아버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내가 어릴 때 먹던 갱시기 아니냐!”

 갱시기. 김치와 밥을 함께 넣고 걸쭉하게 끓인 국밥이다. 예전에 아버지가 몇 번 끓여주신 기억이 나지만 동생과 나는 ‘꿀꿀이죽 같다’며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10년간 잊고 있던 음식을 다시 만나니 아버지는 무척 반가우셨나보다. 국밥을 달게 드시며 어릴 적 이야기를 두런두런 꺼내셨다. 개구쟁이 시절 흙길에 구덩이를 파 놓고 사람들을 골려주던 이야기, 대도시에 홀로 올라와 외롭고 힘들었던 학창시절 사연까지.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어릴 적 이야기에 귀 기울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내 고민만 잔뜩 털어놨다. 위로를 받아 기분이 좋아지면 내 방으로 휙 사라졌다. 부모님과 친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자부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쌍방 소통은 아니었다. 부모님과 언쟁을 할 때도 일방적인 이해를 바라고 있었지, 내가 부모님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내친김에 스마트폰으로 ‘갱시기’를 검색해봤다. 경상도에서 많이 먹던 음식이란다. 어쩐지 국밥 집 아주머니 말투가 아버지와 비슷하다 했더니. 대표적인 구황음식이기도 하단다. 갱시기라는 이름도 ‘다시 끓인다’ 는 의미의 갱식(更食)에서 시작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없던 시절 갱시기는 밥 한 공기로 삼 인분 식사를 만들 수 있게 했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가난이다. 공자님 말씀같이 진부하게 느껴졌던 절약 정신. 아버지에게는 지독한 가난을 이겨낸 원동력이었단 것을 이제야 알았다.

 예전엔 그저 ‘경상도 상남자’로 뭉뚱그려 생각했던 아버지의 삶을 좀 더 촘촘히 들여다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문득 ‘두 개의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기성세대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해’라고 불만인 우리 세대에게 묻고 싶어졌다. 우리는 이전 세대의 삶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을까.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어린 시절 추억은 어땠는지 관심 가진 적 있나. 서로를 이해하려면 서로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세대 갈등의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국밥을 먹고 부모님을 카페로 이끌었다. 어릴 땐 그저 그랬던 갱시기가 이제는 얼큰하고 담백한 별미로 느껴진 만큼, 부모님에게도 맛있는 디저트를 대접하고 싶었다. 와플을 먹으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딸 덕에 이런 것도 먹어 보네.”

 와플을 잘라 아이스크림과 과일을 얹어 아버지에게 냉큼 건네며 대답했다. “아부지, 이제는 내 얘기 할 차례!” 갱시기와 아이스크림 와플,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신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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