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사설] 참여재판 강화, 사법 신뢰 높이는 계기 돼야

2010년 2월 경남의 한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70대 할머니를 둔기로 살해한 혐의로 30대 남성이 기소됐다. 피고인 신청으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찰은 피고인 운동화에서 발견된 혈흔을 증거로 제시했다. 피고인은 “시신을 덮은 부직포를 들어보다 혈흔이 묻은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배심원 9명은 전원 일치로 무죄 의견을 제시했다. “검찰 주장만으론 범인으로 단정하기에 부족하다.” 1심 재판부는 이 평결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처럼 시민의 건전한 상식과 합리적 의심으로 유·무죄를 가려내는 국민참여재판이 정착 단계에 들어선다. 사법 신뢰를 높이고 재판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시행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차분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지난 23일 대법원은 국민사법참여위원회가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에 ‘사실상의 기속력(羈束力)’을 부여하기로 최종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권고적 효력’만 갖고 있던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재판부가 배심원 판단을 존중하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미국식 배심재판처럼 법적 기속력을 인정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헌법과 충돌한다는 점을 감안해 사실상의 기속력만 인정키로 했다. 현행 헌법이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본다. 다만 ‘예외적으로 절차 또는 내용이 헌법·법률 등에 위반되거나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평결을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재판부 직권, 또는 검사의 신청으로도 참여재판을 열 수 있도록 한 것 역시 긍정적 변화로 판단한다. 그간 피고인만 신청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참여재판 건수가 도입 첫 해인 2008년 64건에서 2011년 253건으로 느는 데 머물렀다. 지난해의 경우 7월부터 재판 대상이 형사합의부 전체 사건으로 확대됐음에도 274건에 그쳤다. 전체 1심 형사 사건의 0.1% 수준이다. 또 피고인들의 기피로 대형 경제 비리나 뇌물 사건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우려를 걷어낼 제도 개선이 참여재판 확대로 이어지려면 법원과 검찰의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그러나 참여재판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작업이 동반돼야 할 것이다. 우선 ‘졸속 재판’ 가능성부터 불식시켜야 한다. 2008~2011년 4년간 574건의 참여재판 가운데 91.8%(527건)가 하루 만에 처리됐다. 배심원 생계 배려 등을 이유로 재판이 10시간 이상 이어지면서 밤샘 재판이 이뤄지곤 했다. 이렇게 하루에 몰아서 재판하다 보면 배심원들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형사 재판의 목적인 실체적 진실 발견과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소지도 있다. 법원이 배심원들의 협조를 구해서라도 가급적 8시간 이내로 기일을 나눠서 재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참여재판에 대한 항소율이 지나치게 높다. 특히 2008~2011년 피고인 항소율이 66.6%로 일반 형사 재판(59.4%)과 엇비슷한 수준인 반면 검사 항소율은 50.2%로 일반 재판(23.3%)의 두 배가 넘는다. 배심제를 채택한 나라와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미국의 경우 검사가 무죄 평결에 항소할 수 없다. 유죄 평결에 대해서도 법률 판단 문제인 때에만 항소를 허용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에 배심원 평결 방식을 단순 다수결에서 가중 다수결(배심원 4분의 3 이상 찬성)로 바꾸는 상황에서 항소 여부를 전적으로 검사에게 맡기는 것은 곤란하다. 검사 항소를 엄격한 기준으로 제한하는 게 옳을 것이다.

 참여재판 도입으로 재판 대상에 그쳤던 보통사람이 재판의 주역으로 설 수 있게 됐다. 참여재판을 사법 개혁의 계기로 삼기 위해선 판사·검사·변호사, 나아가 시민들의 성숙한 참여의식이 필요하다. 배심원으로 나오라는 통지서를 번거로운 의무가 아닌 소중한 권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법치는 몇몇 정치 지도자나 법원·검찰의 힘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힘이 합쳐질 때만 이뤄질 수 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