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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짓게 뭔데!

헨리 제임스 (Henry James, 1843~1916) 대표작 『어느 여인의 초상』은 영어로 쓰인 가장 뛰어난 소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 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자』와 함께 19세기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로도 꼽힌다. 헨리 제임스 소설들의 주제는 주로 유럽과 미국의 문화 충돌을 다룬 ‘국제문제’이며, 줄거리보다는 캐릭터를 강조한다. 형 윌리엄 제임스는 심리학자이며, 헨리 제임스는 결국 말년에 영국으로 귀화한다.
“그녀에게 귀족적인 생활은 고도의 지식과 자유가 결합된 것으로서, 지식은 인간에게 의무감을, 자유는 향락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스먼드에게 그것은 완전히 형식적인 것이며 의식적으로 계산된 태도였다. 그는 오래된 것, 신성한 것, 계승된 것을 좋아했다…어쨌든 이사벨은 남편의 그런 사고방식을 경멸했으며, 그것은 결국 그를 고자세로 만들었다. 그가 아내를 몹시 경멸했기에 아내 쪽에서도 남편을 경멸하는 건 당연했다.”

강신주의 감정 수업 <28> 경멸

너무나 때늦은 후회다. 촛불만이 외롭게 빛을 내는 거실에 홀로 앉아 이사벨은 자신이 남편 오스먼드를, 그리고 남편은 자신을 경멸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유산 상속으로 자신의 삶을 자기 스타일대로 살 수 있었음에도 이사벨은 가난한 남자, 심지어 이미 딸이 있는 오스먼드와 결혼했다. 심지어 영국 귀족 워버튼 경과 미국의 성공한 사업가 캐스파 굿우드의 청혼마저 과감하게 거부했다. 영국 귀족이 상징하는 고리타분한 관습과 인습, 그리고 미국 사업가가 보장하는 부유함 때문에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려는 의도가 좌절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가를 무릅쓰고, 주변의 모든 만류를 뿌리치며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결혼 생활은 그녀에게 참담함을 안겨 주었다. 오스먼드라는 남자가 겉보기와는 달리 관습과 인습의 추종자일 뿐만 아니라 부유함을 지향하는 속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밤이 새도록 이사벨의 고민은 깊어져 가기만 했던 것이다.

1881년 출간된 헨리 제임스의 소설 『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dy)』은 사랑, 결혼, 그리고 부부 생활에 고뇌하는 이사벨이란 여성의 내면을 담담한 필치로 서럽게 묘사하고 있다. 한때 설렘과 열정의 대상이었던 두 남녀가 어쩌다가 서로를 경멸하는 관계에 이르게 되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경멸(contemptus)이란 정신이 어떤 사물의 현존에 의하여 그 사물 자체 안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그 사물 자체 안에 없는 것을 상상하게끔 움직여질 정도로 정신을 거의 동요시키지 못하는 어떤 사물에 대한 상상이다.”(스피노자의 『에티카』중)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사람과 만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자꾸 타인을 배려하는 섬세한 마음씨를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소중한 정신적 태도가 떠오를수록 우리는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 자체를 무시하고, 심지어는 부정하게 된다. 이런 마음 상태는 어떤 식으로든지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럴 때 상대방은 우리가 자신을 경멸하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직감하게 된다.

이제야 우리는 비극적인 이 두 남녀가 서로를 어떤 식으로 경멸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사벨은 남편 오스먼드와 함께 있을 때 허위의식이 없는 자유로운 정신을 상상하고, 반대로 오스먼드는 아내 이사벨과 함께 있을 때 전통과 관습을 존중하는 경건한 정신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칙적으로 말해 경멸하는 대상과는 함께 있지 않으면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하나뿐인 소중한 삶을 경멸하는 대상과 지낸다는 것만큼 불행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면 이사벨은 단호하게 오스먼드와 헤어져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실제로 당당한 여성은 아니었다. 사실 그녀에게도 남편 오스먼드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속물근성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이사벨의 속내를 이렇게 묘사한다.

“결혼을 파기한다면 그녀의 미래는 온통 어두워질 것이다. 오스먼드와 결별하면 영원히 그렇게 되는 셈이며, 서로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공공연히 인정한다면 그들의 시도가 모두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녀가 점점 자신의 고유성을 버리고 남편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불행한 일 아닌가. 남편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는 인습과 관습을 존중하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밖에 없을 테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오스먼드의 딸 팬지에게 사랑하는 남자를 잊고 속물적인 결혼을 하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팬지에게 “너에게 돈이 별로 없으니 재산을 더 바라게 되는 거란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사벨은 불현듯 깨닫는다. “이사벨은 방 안이 어둠침침한 것이 고마웠고,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오스먼드를 위해서였다. 그를 위하는 일이라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눈을 응시하고 있는 팬지의 엄숙한 눈초리가 그녀를 당황스럽게 했으며, 팬지가 바라는 것을 자신이 너무 소홀히 다루었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앞섰다.”

남편을 경멸함에도 그와의 삶을 유지하려는 비겁함 때문에 마침내 이사벨은 자신을 경멸하는 데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이다.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경멸하는 대상과 단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런 용기는 또 얼마나 얻기 힘든 것인지.


대중철학자.『철학이 필요한 시간』『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상처받지 않을 권리』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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