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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떠나는 사찰기행⑥ 문태준의 인제 백담사

내설악 백담사가 눈에 잠겼다. 눈이 바다처럼 펼쳐진 세상에서 산사가 배처럼 떠있다. 얼얼한 한기만이 중중하였다.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우습다/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차가운 고요와 적막 속 희열 … 사방이 한 칸의 선방



 설악무산 스님의 시 ‘아지랑이’의 전문이다. 설악무산 스님은 신흥사 조실이면서 세간에는 시조시인 조오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조계종의 대표적인 선승이다.



 백담사에 찾아가기 전 만해마을 심우장에서 스님을 뵈었다. 스님께서 나를 맞으며 “멀찍하게 앉아라. 숨 막히지 않게. 팔순 늙은이가 죽지는 않고 여기 앉아서 낮을 다 보네. 팔순이라는 꼭대기에 선 거야. 끝없는 낭떠러지야. 돌아갈 곳도 없어. 쳐다봐도 허공이야”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이 시 ‘아지랑이’를 단박에 떠올렸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더 말씀을 않으셨지만 저 자탄의 말씀 뒤에는 ‘백척간두 진일보하라’는 말씀이 숨겨져 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무금선원에서 동안거 중인 스님들이 예불 시간에 맞춰 법당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백척간두 진일보라. 한 걸음을 더 떼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절벽에 섰다는 것일까. 수행자의 처지가 절벽에 선 것과 같다는 뜻일 것이니 그만큼 목숨을 내걸고 용맹하게 정진하라는 말씀일 것이다. 중생의 처지가 절벽에 선 것과 같으니 중생구제가 그만큼 절박하고 급하다는 뜻일 것이다.



 설악무산 스님은 나에게 “그거 하지 마라”며 스님의 법문을 내가 받아 적는 일을 극구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스님의 말씀은 돌을 쪼개듯 또렷하게 이어졌다.



 “괜히 해보는 소리지만 국화는 국화 향기가 있고, 야생화는 그대로 향기가 있는 거야. 좋다 나쁘다라는 것은 자기 생각이야. 그냥 다를 뿐이야. 옳고 그른 것은 각자 생각이야. 본디 못난 놈도 없고 잘난 놈도 없어.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어.”



 나는 불교 경전의 한 비유가 생각났다. 가령 바싹 마른 풀을 구해서 불을 지피든지, 바싹 마른 무화과나무를 구해서 불을 지피든지 불이 곧바로 일어나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또 그렇게 다른 땔감에서 불은 피어나지만 그 피어난 불의 열기와 빛은 차이가 없다. 스님의 말씀이나 경전의 이 비유가 뜻하는 것은 모든 생명 있는 것이 가진 고유한 성품과 존엄에는 차등이 없다는 것이니 그 고유한 성품과 존엄은 어떤 종자, 불성(佛性)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설악무산 스님의 말씀은 대공(大空)을 활강하는 매처럼 매섭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천진하고 미소가 가득 고인 그곳에서 흘러나왔다.



 “잘못되었다고 생각 마라. 잘못된 게 오히려 복이야. 섭섭한 생각을 마라. 일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거야. 이 세상 사는 것은 남 비위 맞추는 것이야. 그걸 제일로 잘한 분이 부처님이야.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인생은 이와 같고 저와 같은 것이야.”



 이 말씀에 내 심중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 이와 같고 저와 같다고 생각하면 무엇에든 무착(無着)할 것이다. 고착도 막힘도 없이 능란하고 자유자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눈을 하나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착은 얼마나 큰 은산철벽인가. 집착은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 해로움과 괴로움과 불편함을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얼마나 뚫고 무너뜨리기 어려운가. 천둥과 벼락으로도 깨기 어려운 것 아닌가. 오욕락(五慾樂)이라는 것, 재물과 이성과 음식과 명예와 수면이라는 이 다섯 도둑에게 훔침을 당하기만 하는 나의 형편이 부끄럽고 위중(危重)하게 느껴졌다.



불 밝힌 백담다원.(위) 문태준 시인이 백담사 일주문에 들어서고 있다.(아래)
  스님께 삼배로 하직을 아뢰고 백담사로 서둘러 길을 나섰다. 백담사로 가는 길은 하늘도 땅도 꽝꽝 얼었다. 계곡의 큰 반석은 큰눈에 덮여 흰 이마를 드러냈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 한 마리도 없는 이 폐색(閉塞). 모든 것으로부터 오롯하게 차단되었다. 얼얼한 한기(寒氣)만이 중중(重重)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고요하고 차가운 적막에 희열이 느껴졌다. 아래 위 왼쪽 오른쪽 모두가 한 칸의 선방처럼 느껴졌다. 곡기를 끊고 오직 깨달음만을 구하는 선사의 수행 공간처럼 느껴졌다. 이 백담계곡 전체가 처참하리만큼 앙상하게 뼈를 드러낸 채 낮밤을 잊고 고행하는 수행자처럼 느껴졌다.



 백담사라는 절의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작은 담소가 100개째 있는 곳에 절을 세웠다고 해서 그렇게 붙여졌다고 한다. 나는 이 백담사에 꽤나 여러 차례 찾아왔었다. 오늘처럼 계곡 안쪽이 한천(寒天)으로 가득할 때에도 있었고, 쌀알보다 작아진 팥배나무 열매들이 나무에 맺혀 쪼글쪼글해지는 것을 보았던 때도 있었고, 유수(流水)에 망념을 씻던 때도 있었고, 밤새 철야정진을 하며 세속의 일을 깊이 참회한 적도 있었고, 계곡의 얼음이 꺼지는 소리를 들었던 적도 있었다.



게다가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행적이 아직도 성성한 곳 아닌가. 나는 ‘복종’이라는 시가 특히 좋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금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이 여성 화자의 사랑에 대한 역설적인 화법이 좋다. 스님은 1926년 회동서관에서 펴낸 시집 『님의 침묵』을 이곳 백담사에서 집필하셨다.



백담사 경내 만해 한용운 동상.
 백담사 극락보전으로 들어갔다. 절을 올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법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설악무산 스님께서 언젠가 들려주셨던 “구하는 것이나 버리는 것이나 다 자기를 더럽히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참답게 집착을 버리면 집착을 구하느니 버리느니 하는 그 마음조차 애초에 없다는 것 아닌가. 죄가 없으면 홀로 있어도 두려운 생각이 없거늘 법당에 가만히 홀로 있으니 짧은 순간에도 나의 만 가지 생각이 넝쿨 뻗듯 뻗어 나의 뿌리까지 얽어매는 것을 보았다. 당혹스러웠으나 좀 더 앉아 있어 보았다. 바깥이 침침하게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백담사 무금선원에는 동안거 결제가 한창이었다. 수좌스님들이 정진하고 계시는 터라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올겨울에는 무금선원에 스물여섯 분, 무문관에 열두 분의 스님이 정진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백담사 무문관은 밥을 들여놓는 작은 공양구(供養口) 외에는 문이 없다. 자물쇠로 바깥에서 문을 걸어 잠가버려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 퇴로를 없앴으니 이 또한 백척간두에 올라선 것 아닌가.



 절 마당으로 내려오니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가 서 있었다. ‘저물 무렵’이라는 시였다. ‘천봉우리 만골짜기 그 너머로/ 한 조각 구름 밑 새가 돌아오누나/ 올해는 이 절에서 지낸다지만/ 다음 해는 어느 산 향해 떠나갈 거나/ 바람 자니 솔 그림자 창에 어리고/ 향 스러져 스님의 방 하도 고요해/ 진작에 이 세상 다 끊어버리니/ 내 발자취 물과 구름 사이 남아 있으리’



 시행을 따라 읽으니 사방이 캄캄해졌다. 시비의 글씨가 어둠 속에 완전히 묻히고 있었다. 속간(俗間)에 봄이 오고도 한참 후에야 이 백담 계곡의 흰 잔설과 두꺼운 얼음은 녹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까지 이곳 백담계곡은 면벽좌선하는 수좌의 행색 그 자체일 것이다.



 글=문태준(시인),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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