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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에 최연소 사시 합격 … 총리 되면 75세 최고령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인생은 드라마틱하다. 김 후보자는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어머니의 등에 업혀 학교를 다녀야 했다. 서울고에 입학했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다. 대신 검정고시를 쳐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대학 3학년 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만 19세로, 최연소 사시 합격생이었다. 이번에 총리가 되면 최고령(75세) 총리로 기록된다.



김용준 후보자 라이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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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후보자는 서울가정법원·광주고법·서울고법 등에서의 부장판사 생활을 거쳐 서울가정법원장을 역임했다. 1988년 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판사 재임 시절 김 후보자는 소신이 강하고 직선적이었다고 한다. 196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된 송요찬 전 육참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한 것도 이런 성격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체력을 보완하기 위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영을 했다. 법관 시절엔 주량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후배들은 그를 “출중한 능력은 따를 자가 없었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소탈한 성품이었다”고 기억한다. 헌법재판소장 재임 당시 연구관으로서 김 후보자를 보좌했던 한수웅 중앙대 교수는 “두뇌 회전이 굉장히 빨라 아무리 두껍고 어려운 사건기록이 와도 놀라울 정도로 빨리 파악했다”고 전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후배 변호사도 “어느 자리에서든지 먼저 말을 꺼내고 재미있는 얘기를 해서 좌중을 편하게 해주는 능력을 지녔다”고 기억했다.



 신의를 중요시하고 대인 관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김 후보자의 법조계 후배인 신평 경북대 교수가 김 후보자에게 강의를 부탁했다고 한다. 김 후보자는 당시 목욕탕에서 넘어져서 지팡이조차 짚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KTX를 탈 수 없어 대구까지 자동차로 이동해 1시간 반 동안 강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강의가 끝나자 신 교수에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대선 때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을 맡자 법조계에선 실망의 눈초리로 그를 보는 이들도 많았다. “대법관에 헌법재판소장까지 지낸 분이 나이 들어서 무슨 노욕(老慾)이 있어 정치판에 뛰어드느냐”는 조소를 받았다고 한다. 평소에 지인들 앞에서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그였기 때문에 곱지 않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당시 그는 지인들에게 “진심으로 구국의 심정으로 나라를 맡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성향을 따지자면 중도보수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법관으로서 법조문에 얽매이기보다는 법과 현실의 괴리를 메우는 데 많은 공을 들이는 편이었다. 대법관 시절인 1994년 생수 시판을 허용한 판결이 대표적이다. 10년을 끌어온 이 소송을 맡은 김 후보자는 1년간 법정 밖에서 생수업자와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청취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1994년 제2대 헌법재판소장에 임명됐다. 실질적으로 헌재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목할 만한 결정도 많이 나왔다. 김 후보자는 대부분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확대하는 쪽에 섰다. 대표적인 게 2000년 과외금지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이다. 김 후보자는 당시 “과외를 억제하는 방법의 선택이 잘못돼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했다”며 다수의견인 위헌에 동의했다. 1996년 사전에 심의 받지 않은 영화의 상영을 금지한 영화법에 대해 “검열을 금지한 헌법에 명백히 위배된다”며 위헌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



 이 결정으로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이 사라지고 사후 등급부여제도로 바뀌었다. 1997년 동성동본 혼인 금지 조항에 대해서도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 이념에 맞지 않는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하지만 1996년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제청 당시에는 “헌정질서 파괴범을 처벌하는 것도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법치주의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며 한정위헌의 소수 의견을 냈다.



김경진·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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