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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한반도는 지금 저강도 전쟁 중

채인택
논설위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42일 만인 22일(현지시간) 대북 제재를 확대·강화하는 내용의 결의안 제2087호를 채택하자 북한은 예상대로 펄쩍 뛰고 있다. 하지만 “이제 한반도에 비핵화는 없다”며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는 기존 입장까지 바꾼 건 예상 밖의 일이다. “핵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자극적인 말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12일 로켓 발사 직전에도 예기치 못한 행동을 했다. 서방 정찰위성이 상공을 도는 동안엔 철거작업을 하는 척 위장하다가 위성의 감시 사각시간대에 준비를 마치고 로켓을 전격 발사했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이 기만술에 꼼짝없이 당했다.



 익명을 요구한 30년 경력의 대북전문가는 이를 두고 “북한은 아직도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 식으로’라는 낡은 구호대로 살고 있음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명된 지 한 달 만인 1974년 3월 내놓았던 정치 구호다. 이 전문가는 “북한은 이처럼 적의 눈을 속이고 그 틈을 타서 기습한 다음 신속히 뒤로 빠지는, 빨치산 식 전술을 모든 활동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의 40년 전에 나온 이 구호는 지금도 북한 당국이 주민을 교육할 필요가 있을 때 노동신문 등에 수시로 등장한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 이런 빨치산식 전술을 한국을 상대로 상시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킹·크래킹으로 상대 전산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황폐화하는 사이버전부터 한국 국민을 염탐하는 스파이전까지 대놓고 벌이고 있다. 한반도에선 이런 식의 저강도(低强度) 게릴라 전쟁이 매일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사례는 많다. 지난 16일엔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지난해 6월 중앙일보 신문제작 서버를 해킹한 주체가 북한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북한의 사이버 공격은 2009년 7월과 2011년 3월 정부기관 등 국내 주요 사이트에 대한 디도스 공격, 2011년 4월 농협전산망 해킹, 2011년 11월 고려대 e-메일 악성코드 유포 등 확인된 것만 벌써 다섯 번째다. 이 정도 빈도와 수준이라면 이미 악동들의 행패 수준을 넘어선 중대도발이다.



 21일엔 서울시 복지과에서 탈북자 지원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던 탈북자 출신 스파이 유모씨가 구속됐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지령에 따라 서울 거주 탈북자 1만여 명의 신상정보를 통째로 넘긴 혐의다. 이미 대한민국 국민이 된 탈북자들이 북한의 암살 위협, 가족을 이용한 회유와 협박, 재입북 공작 등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스파이를 동원한 탈북자 명단 확보는 단순한 일회성 공작이 아닐 수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더 큰 타격을 노리고 단계적으로 벌이는 비밀공작의 일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회 곳곳에서 스파이가 암약하고 그 때문에 국민 안전과 사회 안정이 위협받는다면 근본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이제는 정부기관부터 인터넷 네트워크까지 방첩활동을 대대적으로 강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를 핑계로 공안정국이나 불법 민간인 사찰, 또는 국민을 이유 없이 불편하게 하는 일은 안 된다. 하지만 법 절차를 따르는 합법적인 탐문과 수사는 강화해야 한다.



 올해로 6·25전쟁 정전 60주년을 맞는다. 박근혜 당선인의 새 정부 출범까지 맞물려 남북 대화와 긴장완화의 전기가 마련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트려면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한 우리 내부의 방첩 태세부터 튼튼해야 한다. 그래야 국론분열 가능성도 줄어 정부의 대화와 협상이 국민 신뢰를 얻고 힘을 받을 수 있다.



 서독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의 일화는 이에 대한 좋은 반면교사(反面敎師)다. 독일 사회민주당 소속의 브란트는 ‘동방정책’을 내세워 공산권과 긴장완화를 이룬 공로로 71년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3년 뒤 최측근 보좌관인 귄터 기욤이 동독 비밀 첩보기관 슈타지의 스파이로 드러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기욤이 의심된다는 정보기관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를 중용한 책임을 진 것이다. 안전과 안보 없이는 국민도 정부도 맘 놓고 일할 수 없음을 이 사례는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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