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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 무방비 … 한 달 10억 날린 기업도

볼트·너트를 제조하는 K사는 지난해 말부터 월 10억원의 환차손을 보고 있다. 이 회사는 매출의 70% 이상이 수출이어서 적자를 보더라도 해외로 납품을 해야 한다. 하지만 환 변동 보험조차 들지 않아 최근 요동치는 국제 환율에 그저 속수무책이다.

 이 회사 김모 상무는 “해외 시장에서는 1~2% 이내의 납품 가격을 갖고 경쟁을 하는데 엔저 쇼크 때문에 대처 방법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일본에 김을 수출하는 고젠 코리아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연간 단위로 수출 단가 계약을 하는데 지난해 100엔당 1370원을 기준으로 납품 계약을 했다. 그러나 최근 원화가치가 한때 100엔당 1100원대까지 떨어졌다. 이 바람에 최근 20여 일 만에 1000만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단가 조정을 요청할 계획이지만 일본 업체가 순순히 응해줄지는 미지수다. 이 회사의 장오식 담당은 “이렇게까지 엔화 가치가 하락할 줄은 몰랐다”며 “키코 때 손해를 본 회사가 너무 많아 환 보험을 따로 든 회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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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환율 방어책 마련에 손을 놓았던 중견·중소 기업들이 전에 없는 ‘엔저 쇼크’로 휘청거리고 있다.

 대기업도 사정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견딜 만하다. 해외 생산 비중(스마트폰 81%, 자동차 49%)을 높였고,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업체도 여럿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속수무책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환율 변동으로 영업에 영향을 받는 강도는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1.4배 크다. 이미 지난해 10월 대한상의 조사(500개 수출 기업)에서도 76%가 “환차손이 생겼다”고 답했다. 일부에선 들어오는 주문마저 마다해야 할 판이다. 충북 충주에 있는 공구 제조업체 S사는 지난달부터 일본에서 오는 주문을 아예 받지 않고 있다. 이 회사 최모 대표는 “100엔당 원화 가치가 1400원은 돼야 채산이 맞는데 요즘 같은 때는 아예 수출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경쟁력이 있는 업체마저 이렇게 된 데는 환 위험 관리를 미리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출액 1000만 달러 이상 기업은 70% 이상이 환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15%만 환 위험을 관리 중(한국무역보험공사 조사)인 실정이다. 이렇게 된 데는 ‘키코’ 사태의 영향이 크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원화가치는 급격히 하락했다. 이 무렵 기업 사이에선 ‘키코’라는 파생상품이 인기였다. 이 상품은 원화가치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환차익은 물론이고 추가로 돈을 벌 수 있는 상품이다.

 반면에 원화가치가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계약한 금액의 두세 배를 기업이 은행에 물어주거나, 아예 계약이 취소돼 환차손을 그대로 떠안아야 했다. 손실을 만회하느라 추가로 파생상품에 투자해 이중 피해를 본 업체도 있었다. 이 바람에 우량 전자업체였던 태산엘시디는 지분 가치가 5년 새 400억원대에서 15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모젬·모보·사라콤 등 촉망받던 기업들은 키코로 재무 상태가 나빠지면서 주식시장에서 퇴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로만손 등 219개 기업이 소송을 제기했고, 이 가운데 32개사가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정정식 키코피해기업공동대책위원회 사무총장은 “키코 사태 피해를 본 기업들은 지금도 그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키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책임 규명이 아직 안 됐기 때문에 환 보험에 드는 기업도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사흘 전부터 중소기업 환율 컨설팅 신청을 받고 있는 외환은행에는 3일 만에 12개 업체가 몰렸다. 앞으로 40~50개 업체가 신청할 것으로 은행 측은 전망했다. 현병규 농협 자금운용부 차장은 “아무 준비 없이 있다가 환 손실을 입고서야 은행에 하소연하는 업체가 많다”며 “키코 사태로 인해 기업이 두 번 고통을 받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리 대비한 회사는 여유가 있다. 부산의 자동차 부품생산업체인 오리엔탈 코머스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생산량의 45%를 일본에 수출한다. 그러나 환 변동 보험에 가입해 둔 덕에 지난해 12월에만 7억6000만원의 환 손실을 보험을 통해 보상받았다. 정경운 이사는 “안정적으로 환 관리가 되면서 장기적인 영업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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