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모딜리아니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긴 얼굴에 긴 목, 조각 같은 코에 고개를 외로 꼰 인물. 모딜리아니(1884~1920)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이렇게 그릴까. 생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심각한 얼굴을 한 천사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요절했기에 영원히 젊음으로 남은 화가다. 병마와 마약에 찌들어 일찌감치 마감한 생이 그랬고, 우수에 젖은 눈으로 혼자 화폭에 들어앉아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법”이라고 말하는 듯한 인물들이 그렇다. 가난했던 그는 남루한 하숙방 대신 몽파르나스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고, 거기 오가는 이들을 관찰해 쓱쓱 그려주곤 그걸로 밥과 술을 구한 보헤미안이었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유년기에 피렌체·베네치아에서 르네상스 거장을 접하며 화가 꿈을 꿨고, 파리로 건너와 아프리카 미술에 관심을 가졌으며 콘스탄틴 브란쿠시를 만나 한동안 조각에 몰두했다. 그래서인지 둥근 어깨와 텅 빈 눈, 배경을 생략한 그의 그림은 조각을 닮았다.

자화상, 1919, 캔버스에 유채, 65×100㎝, 상파울루 대학 현대미술관 소장.
모딜리아니는 숱하게 인물화를 그렸지만 자화상은 딱 한 장 남겼다. 캔버스를 앞에 두고 팔레트를 든 모습이다. 팔레트를 오른손에 든 것은 거울을 보고 그려서일 거다. 그림 속 그의 인물이 직업이나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 반면 여기선 ‘나는 예술가요’라고 주장한다. 눈은 세상의 반영, 그러나 텅 빈 눈은 마음으로 향한 거울이다. 관객과 마주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응시한다. 자의식 과잉이다. 그래서 그렇게 빨리 인생을 소모해 버린 걸까.

 1920년 1월 24일 모딜리아니는 파리의 자선 병원에서 숨졌다. 36세. 다음 날 새벽, 열 네 살 연하의 부인 잔 에뷔테른은 친정집 5층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임신 8개월이었다. 잔의 자살은 예술적 반려에 대한 헌신으로 자주 미화된다. 그러나 이만한 무책임이 또 있을까. 낭만적 사랑 이후 책임감 가득한 소시민적 삶을 영위하는 세상의 많은 부모가, 미욱해서 그리하는 건 아닐 터다.

 당시 14개월이던 모딜리아니의 딸 잔(1918∼84)의 안부가 궁금했던 것은 그래서였다. 고모에게 입양된 그는 미술사를 전공했다. 마흔 살에 아버지의 전기(『Modigliani: Man and Myth』)를 썼다. 국내엔 출간되지 않은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할머니와 고모는 집에서 늘 ‘가엾은 네 아비’라고 말했다.” 먼저 간 아버지, 그리고 곧 태어날 동생과 함께 목숨을 끊은 엄마를 긍정하기까지 그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세기의 순애보’가 그 덕분에 해피 엔딩이 되어 참 다행이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