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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며칠 준비한다고 안 된다”

고정애
논설위원
“이런 청문회는 없애야 합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과 갓 청문회를 통과한 장관들이 차 마시는 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튀어나왔다고 한다. “근래 자식을 결혼시켰는데 청문회에서 사돈까지 다 거론되니 면목이 없더라”는 푸념과 함께였다. 인사청문회는 2000년 6월 도입됐고, 노 대통령 때인 2005년 7월 전 국무위원을 대상으로 확대됐었다. 당시 장관이었던 이용섭 민주통합당 의원이 그 자리에서 “일부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존치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이 청문회를 의식해 자기 관리를 하지 않겠느냐”고 반박했다고 한다.

 이 의원,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있다. 지금껏 213명이 인사청문 대상이 됐고, 그중 199명만 관문을 넘어섰다. 이 의원은 한 번도 어렵다는 청문회 관문을 세 번이나 통과했다. DJ 때 국세청장, 노무현 정부에선 행자부·건교부 장관에 거푸 기용됐다. 정권교체 와중에 세 번의 청문회를 거친 김황식 국무총리(대법관→감사원장→총리)나 양승태 대법원장(대법관→중앙선관위원장→대법원장)만큼은 아니어도 대단한 기록이다.

 그런 이 의원에게 청문회 통과 요령을 물었더니 이같이 답했다. “며칠 준비한다고 삶을 숨길 순 없다. 옳게 사는 길밖에 없다. 자기가 생각할 때 공직에 안 맞으면 권력을 탐해선 안 된다. 대통령에게도 부담이다.”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사람 판단력이 어디 다 그런가. 대개 스스로 청백리는 못 될지라도 남들보다 바르게 살았다고 여기곤 한다. 능력도 낫다고 믿는다. 그러다 청문회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곤 당황한다. 상당수는 부적격 판정을 받고 그중 일부는 낙마도 한다. 곧 발표될 박근혜 정부의 총리·장관 후보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그간 청문회에서 추출되는 몇 가지 참고사항이 있으니 첫 번째가 ‘가랑비 무섭다’는 거다. 국무총리 1호 낙마자인 장상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법을 어긴 것도, 딱히 파렴치한 행위를 한 것도 아니었다. 세 차례의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걸렸다. “국민의 정부에서 여성 장군과 청와대 수석도 탄생시켰다. 마침내 여성 총리까지 나왔으니 이제 남은 건 대통령뿐”이라고 좋아했던 DJ도 이내 실망했다. 한때 의혹이 대여섯 건만 제기돼도 많다고 했는데 근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이르러선 ‘흡31’까지 갔다. 진실은 늘 모호한 채였다.

 ‘답변이 죽고 살린다’다. 장상 후보자가 “시모가 전적으로 맡아서 했다”고 해서 세상의 시어머니들을 화나게 했다면, 2008년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다”는 말은 모두를 분노케 했다. ‘창이 대체로 방패보다 세다’도 있다. 야당의 검증 항목과 실력은 늘 청와대의 예상을 뛰어넘곤 했다. 현 청와대가 2010년 마련한 ‘고위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가 그 이후 기능을 했는지 의구심을 남기곤 했다. ‘대타가 나을 수도 있다’는 점도 있다. 누군가 낙마한 자리에 발탁된 경우엔 야당의 공세가 좀 느슨해지곤 했다. 당사자로선 운칠복삼(運七福三)인 셈이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수월하다’도 가능하다. 근래 총리 후보자로 거론되는 인사 대부분이 청문회 유경험자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사이 대통령도, 후보자도 깨닫곤 했다. 야당은 대놓고, 여당은 은근히 무섭다는 사실을 말이다. 야당이 “낙마시키겠다”고 나서면 대체로 못 버텼다. 여당에서도 어렵다면 사실상 상황 종료다. 도덕성 기준은 점차 강화되고, 어느덧 대통령의 인사 최우선순위가 청문회 통과 여부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막판엔 “인사청문회에 안 걸릴 아무나 데리고 오라”고까지 했다지 않은가. 능력 있는 인사가 청문회 하는 자리에 손사래치는 일도 잦아졌다.

 이런 풍토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을 거다. 청문회를 보며 자기관리한 세대가 청문회 대상이 될 때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하다. 지금과 같은 청문회에서라면 황희 정승이 장관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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