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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0년' 日은행 독립시대 끝, 한국도…

아베 총리
일본은행(BOJ)의 독립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BOJ는 22일 끝난 올해 첫 통화정책회의에서 물가상승 목표를 1%에서 2%로 두 배 높였다.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BOJ 총재는 성명서에서 “가능한 한 빨리 2% 목표를 달성하도록 정책 수단을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무제한 ‘머니 프린팅’ 요구에 굴복한 것이다.

 시라카와 총재는 “2014년 1월부터 매월 13조 엔(약 154조원)을 투입해 국채와 회사채 등을 사들이겠다”며 “매입 기한은 (미국처럼) 따로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베는 지난해 총선 때 “BOJ가 디플레(물가하락) 저지에 미온적”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우리가 집권하면 물가상승 목표를 2%로 높이고 더욱 공격적으로 돈을 풀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는 집권 이후 BOJ를 압박했다. 시라카와는 “2%를 중기(3~5년) 목표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저항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BOJ는 물가상승 목표 달성 시한을 3~5년이 아니라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으로 정해야 했다. 더욱이 BOJ는 목표 달성 여부를 아베가 의장인 경제재정자문회의에 정기적으로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BOJ 정책위원 9명 가운데 2명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찻잔 속 태풍일 뿐이었다.

 세계적인 통화이론가인 프레더릭 미시킨 컬럼비아대 교수는 “중앙은행이 스스로 정책 목표와 수단을 결정할 수 없을 때 독립성을 잃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준대로라면 BOJ는 22일 ‘미에노 패러다임’이라 불린 독립시대를 마감한 셈이다. 리하르트 베르너 영국 사우샘프턴대 교수는 “BOJ는 미에노 야스시(三重野康)가 총재가 된 1989년 이후 개발시대 정책도구 신세에서 벗어나 독립을 만끽해 왔다”고 평했다. 그래서 나온 게 ‘미에노 패러다임’이었다.

 이전까지 BOJ는 정부 부처인 대장성(재무성의 전신)의 위세에 휘둘렸다. 대장성이 정한 경제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극 협조해야 했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 경제에 거품이 발생했다. 일본인이 거품에 염증을 느끼는 순간 미에노가 BOJ 총재가 됐다. 그는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려 거품을 터뜨렸다. 주가가 폭락했지만 일본 서민을 괴롭힌 집값이 잡혔다. 미에노는 ‘서민의 영웅’이 됐다. 일본 국민의 지지가 BOJ에 쏠렸다. BOJ는 대장성을 제치고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고성장-완전고용, 엔저-수출 촉진’이라는 대장성 패러다임도 자동 폐기됐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미에노의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장기 디플레와 경기침체 늪에 빠졌다. 고령화 등 문제가 있었지만 BOJ의 실책도 한몫했다. 베르너 교수는 “대장성이 개발시대 패러다임을 고집하다 거품을 야기했듯이 BOJ는 경제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거품 사냥을 고집하는 바람에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BOJ는 2001년 양적완화, 2012년 물가상승 목표제 등 정책을 도입해 디플레 저지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그 결과가 바로 독립성의 상실인 셈이다. 자연스럽게 엔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과 고용을 늘리려는 옛 대장성 패러다임이 부활했다. 한국 등 이웃 나라와 환율 및 무역 분쟁이 예견되는 대목이다.

 중앙은행 독립의 퇴조는 일본만의 현상이 아니다. 요즘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들도 물가안정보다 일자리에 초점을 맞추라는 정치권 요구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영국 HSBC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킹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쓴 칼럼에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정치와 엮이기 시작하면서 독립성을 잃어가고 있다”며 “사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좋다’ 혹은 ‘나쁘다’는 이분법으로만 볼 수 없다”고 했다. 역사를 돌아볼 때 중앙은행들이 정부 정책을 추종했던 시기가 훨씬 길었다.

 BOJ의 변화는 한국은행(BOK)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발시대 한국은행의 역할은 BOJ의 복사판이었다. 한국은행 독립성도 BOJ의 뒤를 이어 90년대 후반 강화됐다. 이런 흐름대로라면 지금의 BOJ는 한국은행의 미래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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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