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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 떠났던 박경철 "정치적 낙인은 무서운 형벌"

의과대학을 다니던 20대 청년 박경철의 가슴에 뜨거운 불길을 일으킨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50대를 바라보게 된 의사 박경철을 고독한 여행자로 길 위에 서게 만들었다. [김경빈 기자]
자발적 유폐라 할까, 자의의 유랑이랄까. 박경철(49·안동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씨가 어느 날 갑자기 세간에서 사라지자 그 은둔을 놓고 궁금증이 커졌다. 안철수 전 대선 후보의 ‘소울 메이트’로 자타가 공인하던 그가 정작 정치현장에 발가락 한 쪽을 담그지 않고 잠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묵직한 책 한 권을 들고 돌아왔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리더스북)다.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제 1부 펠로폰네소스 1’이란 부제로 미루어 이 여행이 상당히 오래 갈 것이라 짐작하게 한다. ‘시골의사’란 필명으로 알려진 뒤 경제평론가·칼럼니스트·방송인· 연사로 활동의 장을 넓혀온 그는 이제 여행가란 새 영역에 배를 띄우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인으로 떠나간다.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고 만난 그는 “온전히 이 책의 저자로서 평가받고 싶다”고 했다. 말은 공중에 섞여 흩어지지만 글은 비석에 새겨지듯 오래 남을 것이므로 인쇄 직전까지 10번 이상 퇴고하고 교열을 봤다며 문장에 마침표 찍기가 조심스러웠다고 털어놨다.

 - 왜 그리스인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나서 짝퉁 로마의 원본인 그리스를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청년 시절 내 가슴에 불을 지른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저작을 수십 년 읽고 나서 그처럼 주유천하하며 세상에서 받은 수많은 질문에 내 나름의 답을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 지금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하나의 답인가.

 “그리스인들에게 인간은 곧 신이요, 신은 곧 인간이었다. 스파르타의 폐허에서 가장 우뚝한 인물은 신이 된 인간 헬레네였다. 사랑의 도피 행각으로 그리스를 피바다로 만들었지만 훗날 스파르타의 여신으로 거듭난다. 인간의 근원을 파고 드는 것, 다양성을 껴안는 것, 운명에 도전하며 신의 자리에 앉으려 피눈물을 흘린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이 숙명을 ‘탁월함’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서로를 포용하고 함께 걸어갈 때, 삶은 생생한 환희로 상승한다는 것이 그리스가 들려주는 일종의 신탁이다.”

 - 다른 역할을 기대한 이들이 많았다.

 “사람은 다 자기가 할 몫이 있다. 깊이 한 우물을 파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우물 구석에 이끼로 살아가는 이도 있다. 꽤 오래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계 없이 살아왔다. 이쯤 해서 세상을 나름의 해법으로 건져 올리겠다는 내 꿈을 위해 당분간 여행가로 살아도 좋겠다 싶었다. 하루 한 끼 먹고 서너 시간 자면서 지난 1년 여 그리스 내륙 깊숙이까지 샅샅이 훑으며 발에 땀나게 걸었다. 인간이 오십에 이르면 고독한 여행이 필요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대면하며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있는가 짚어보았다.”

 박 원장은 “사람들은 아마도 박경철이 ‘안 캠프’에 들어가 혓바닥께나 놀릴 것이라고 봤겠지만 난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그 상황(대선 후보 결정 전후)에서 친구를 돕고 자기를 지키는 최선의 길이 사라지는 것이라 판단해서 그리스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적 낙인은 무서운 형벌과 같다. 안 교수는 공익적 가치를 위해 자기를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난 내 길을 가는 장삼이사(張三李四)일 뿐”이라고 했다.

 - 그리스에 있다가 갑자기 베트남으로 뛰고,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거쳐 남미로 가는 그 발걸음의 끝은 어디인가.

 “연대기적 서술이 아니라 ‘스페이스 텔링(Space Telling)’, 즉 그 공간에 들어가 내 몸이 응답하는 얘기를 펼치는 것이므로 육신이 가는 곳에 곧 답이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신경하게 외우던 홍익인간(弘益人間)이 한 순간, 가슴을 치고 들어오더라. 동서의 결합으로 새로운 문명의 옥동자를 낳을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깨달음.”

 - 나이 50이 되면 ‘시민 박경철’로 살겠다고 했는데.

 “시민 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누가 누구를 끌고 가는 시대가 아니다. 지도자보다 훨씬 사려 깊고 훌륭한 시민이 많다. 트위터 140자 속에서 눈이 번쩍하는 탁견을 발견할 때면 한국 사회에는 중요한 발언을 할 사람이 널려있구나 싶다. 내 인생의 후반전을 책상머리에 앉아서 보내지 않겠다는 꿈을 실행에 옮긴 것뿐. 나는 늘 길 위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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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