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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경의 중국기업인열전 ⑨] 2세 경영의 주역, 하이신그룹의 리자오후이 회장





중국의 현 부호 대다수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이후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제 이들은 은퇴 연령에 다다랐다. 그들은 지금 2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2세 부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이들은 자수성가한 선대 창업자와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은 ‘부의 고착’으로 이어졌다. 리자오후이(李兆暉?33)는 이런 세간의 우려를 기대로 바꾼 인물이다. 산시성(山西省) 하이신(海?) 강철 그룹 리하이창(李海倉)은 중국 굴지의 민영 철강기업인이다. 리하이창은 재계 순위 26위의 잘나가는 기업가다. 리자오후이는 유복한 가정환경에 태어나 호주에서 마케팅을 전공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건 급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2003년 리하이창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친구이자 동창인 펑인량(馮引菱)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당시 펑인량은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허덕였다. 리하이창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해 160만위안 상당의 토지를 넘겨주게 됐다. 이에 앙심을 품은 펑인량은 결국 친구를 살해했다. 아버지의 암살 소식에 리자오후이는 바로 귀국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족회의의 결정에 따라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그의 나이 겨우 22세 때였다. 어린 나이에 경영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가 대권을 이어받자 세간의 우려가 쏟아졌다. 그 중 회사 지분을 보유한 리자오후이의 삼촌들은 심하게 경영을 간섭했다. 삼촌들은 명목상 투자자였지만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리자오후이는 이대로 가다간 회사를 이끌어 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지분 포기를 대가로 하이신그룹 산하의 시멘트 공장을 삼촌에게 양도했다. 협상은 예상외로 순조로웠다.



홀로서기를 한 뒤 그는 매출 50억위안(약 8512억원)을 기록했다. 경영 능력을 인정받을 만한 수준이었다. 특히 2005년 공급 과잉으로 철강제품 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졌지만 80억위안(약 1.3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내회사’라는 집념이 불러 온 놀라운 성과였다.철강 업계는 구조조정 압력이 거셌지만 그는 순조롭게 회사를 이끌어 갔다. 남다른 투자 감각 때문이다. 그는 당시 중국 증시 활황세를 활용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경영권 승계 후 6억위안 규모의 중국 민생은행 주식을 대량 매입해 10대 주주가 됐다. 2009년 민생은행은 주식시장에 상장했고 주가는 다시 급등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단숨에 중국 500대 부호 중 39위에 등극했다. 또한 푸화그룹(富華集團)의 지분 21.5%를 매입해 약 791억위안의 시세 차익을 거뒀다. 과거 중국 기업인들은 경제 성장 흐름에 따라 비교적 쉽게 부를 축적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와 다르다. 통찰력으로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는 2세 부호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류를 잘 타서 부호가 되기 보다는 부를 축적하는 능력이 또 다시 부를 불러오는 셈이다.



☞신보경 한화생명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에서 국제경제를 전공했으며, 현재 중국 경제 및 기업을 연구하고 있다. shinbo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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