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왔더니 서럽더라, 허허로움의 끝이 시더라

래여애반다라…래여애반다라…래여애반다라…. 입에 선 발음이 몇 번 구르기를 하니 여린 듯 굳세게 혀에 감긴다. 만가(輓歌)의 한 구절 같아 애처로운데 뜻 또한 그렇다 하니 도리 없이 구슬프다. 이성복(61) 시인이 십 년 만에 낸 시집 제목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 (문학과지성사)는 ‘오다, 서럽더라’는 뜻을 지녔다.



10년 만에 시집 낸 이성복 시인
“예순 해 피눈물 나는 인생 보고서”

이성복 시인은 “십 년 만에 묶은 시집에 자화상을 직접 그렸다”며 “팩스기가 고장나 대구에서 서울 출판사로 보낸 얼굴이 반쪽이 됐는데(위쪽 작은 사진) 그게 바로 시 정신”이라고 했다. [김도훈 기자]
“이곳에 와서, 같아지려 하다가, 슬픔을 맛보고, 맞서 대들다가, 많은 일을 겪고, 비단처럼 펼쳐지고야 마는 것”이 삶임을 노래하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불상 주조에 쓸 진흙을 나르던 이들이 부르던 노동요라는데 그 공덕으로 세상살이의 고됨과 서러움을 위안하고자 불렀다 해서 ‘공덕가(功德歌)’라고도 한다. 지난해 회갑을 지내고 이순(耳順)에 접어든 시인은 『래여애반다라』가 “예순 해 피눈물 나는 인생 보고서”라며, “신라 향가에 젖어들어 말갛게 탈골된 육신의 느낌이 나도록 나를 버리고 들어냈다”고 했다.



 여섯 개 장으로 이뤄진 시집은 6막짜리 연극처럼 생(生)-사(死)-성(性)-식(食)의 결정적 장면들을 살 떨리는 정밀묘사로 부려놓는다. 화장실 수건에서 발견한 인간사의 속절없음을 치댄 ‘소멸에 대하여1’은 삶의 끝장에 연결된 시인의 모세혈관을 보는 듯하다. “수건! 그거 맨정신으로는 무시 못할 것이더라…어느 날 아침 변기에 앉아 바라보면, 억지로 찢어발기거나 태워 버리지 않으면…이제나 저제나 우리 숨 끊어질 날을 지켜보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인 장모의 죽음에서 캐낸 ‘오다, 서럽더라’ 2, 3은 ‘시 쓰는 기계’가 되고 싶다는 시인의 소원이 애간장을 녹일듯하다. 장지로 가는 길, 장모님 영정을 차에 두고 내린 큰 아이를 “네가 어떻게 할머니를 혼자 두고 왔느냐고!” 마구 야단치고, 장인이 돌아가신 후 연구실에 둔 장인의 전동 면도기에 남아있던 고운 살비듬과 털가루를 보며 “그렇게 일 년인가, 이 년 그분은 내 사무실 서랍 속에 남아 계셨던 것이다”라고 추억의 생매장을 애통해한다.



 “경상도 말에 ‘아, 가가가 가가가?!’란 말이 있어요. ‘아,’ 라고 말할 때 이미 끝난 것이기도 하지만 ‘가가’와 ‘가가’를 붙여서 ‘아 그렇구나’ 하는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그 지점에 우리 앎과 삶을 도달시키는 거지요.”



 시인에게 시는 괴로움의 현재진행형이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세상을 굴절되게 들여다보고 있어야 할 색맹 검사 같은 것이다.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것에 실패해서 도달하는 것이 시다. 이미 받은 목숨을 붙들고 어둠이 오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더 보리라, 하는 허허로움의 끝이 시다. “왔더니 서럽더라” 해도.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