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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얼굴의 아이들 … 엄마의 마음으로 보듬고 싶다

[중앙포토]


국민 가수, 혼혈 가수, 열정의 상징…. 가수 인순이(56) 앞에는 붙어다니는 수식어들이다. 하지만 그 모든 설명에 앞서 그는 엄마였다. 인순이가 딸에게 주고픈 말을 담은 에세이집 『딸에게』(명진출판)가 출간됐다. 서른 여덟에 얻은 고명딸 박세인(19)양은 지난해 가을 미국 스탠퍼드대에 입학하며 ‘엄친딸’로 화제가 됐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신사동 북카페 애슐린라운지에서 그를 만났다.

가수 인순이, 열아홉 세인이에게 주는 에세이 『딸에게』 펴내



 “제 품을 떠나 공부하러 갔고, 곧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럴 거 아니에요. 그런 딸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제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죠. 내가 살아온 방법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인순이의 어머니는 생전 딸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단다.



“내 딸이 많이 슬퍼하지 않게 해주세요.”



 검은 얼굴빛, 지독한 곱슬머리를 가진 딸을 어머니는 한국인으로 키우려 했다. 그러나 어머니도 이해할 수 없는 "절대 고독”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었다.



 “학교에서 ‘백의민족’ 이야기만 나오면 책상 밑으로 숨었어요. 괜히 나 하나 때문에 흰 천에 검은 때를 묻힌 것 같아 죄책감을 느꼈거든요.”



인순이 작 ‘거위와 우산’. 비 오는 날 함께 우산을 씌워주듯 딸을, 또한 다른 사람의 예쁜 꿈들을 하나하나 보호하고 감싸안고 싶다는 희망을 그렸다.
 극복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엄마가 되려니 남들 보다 더한 용기가 필요했다. 자신이 겪은 모든 고통을 아이도 겪을 일이 두려웠다.



 “아이가 100% 한국사람인 남편을 닮을지, 나를 더 닮을지 알 수 없는 일이잖아요. 욕 먹을 각오 하고 미국에서 아이를 낳았죠. 역설적으로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려면, 도망치지 않으려면, 그러면서 아이를 보호하려면 국제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이를 낳곤 세상이 달리 보였다. 노래 하는 이유도, 돈을 버는 이유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도 모두 ‘딸을 위해서’로 바뀌었다.



 딸 아이가 네 살 무렵 ‘혈관종’이라는 병을 앓았다. 그러나 스케줄에 매인 연예인 엄마는 병상을 지킬 수 없었다.



 “저 아이가 빨리 나을 수 있다면 내 목숨을 바로 드려도 후회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메이크업을 하면서도 기도하고, 잠들면서도 기도했죠. 기도를 하다 잠이 들면 천사가 마무리 지어준다고 하더라고요.”



 인순이는 어머니를 따라 천주교 신자가 됐다. 그러나 교회에서도, 절에서도 기도한다.



 “웃긴 얘긴진 몰라도 저는 스님하고도 친해요. 사찰 음악회에도 가고요. 울 엄마 돌아가셨을 때 불교의 천도제도 지내드렸어요. 좋은 건 다 해드리고 싶어서요. 종교가 뭐든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되는 것 같아요.”



 그는 하루를 마무리할 때 제일 먼저 돌아간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지금 기도하는 사람은 100명 가량 되는데요. 김수환 추기경님, 지학순 주교님, 옛날 매니저 엄마 아버지, 남궁옥분 엄마 아버지, 주현미 동생…, 천안함·연평도 희생자…조성민까지. 뉴스에서 누가 돌아갔다고 하면 ‘그 사람도 추가해주세요’라고 해요.”



인순이는 짬이 나면 아이를 포대기에 둘러 업고 나갔다. 엄마 등에 업혀서 느낀 ‘뼈울림’을 아련히 기억하듯, 언젠가 딸도 어렴풋이 기억하길 바라면서. 『딸에게』에 들어간 박경호 일러스트 작품.
 누군가의 기도를 받은 영혼은 연옥에서 천국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곤 시작된 습관이다. 정화수 떠놓고 빌던 한국 어머니의 마음. 그는, 그냥 엄마이고팠다. 남의 눈 신경 쓰지 않고 딸 아이 업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엄마 등에 업혀서 엄마 목소리를 들을 때의 그 진동을 잊을 수 없어요. 제가 좋았던 건 딸에게도 해주고 싶었어요.”



 그러니 책은 딸에게 쓰는 이야기지만, 하늘의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저희 엄마가 저더러 ‘쟤 앉은 자리에서 풀도 안 날’ 거라고 할 정도로 냉정했는데, 아이 낳곤 많이 달라졌어요. 걸핏하면 눈물이에요. 어릴 적 건너 뛴 사춘기를 아이 낳고 겪은 거죠.”



  가난 탓에 열 일곱에 가장이 됐던 그다. 딸이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를 가져오던 날, 가슴을 쓸어 내리며 학력난에 ‘중졸’이라고 적었다. 그리곤 애써 쾌활하게 말했다.



 “얘! 중학교 졸업하고 이만큼 출세했으면 나, 괜찮은 거 아니니?”



 중졸 학력에 바쁜 엄마가 교육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얼굴에 철판 깔고 다른 엄마들에게 학원 정보를 구하고, 남들 다 보냈다는 캠프를 뒤쫓아 보냈다.



 “세인이는 나를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난 철 없을 때 그랬거든요. ‘엄마는 왜 날 낳았어?’ 딸에게 정말 고마워요.”



 지독한 고생 끝에 국민 가수로 자리매김했는데, 굳이 자신이 혼혈이라는 사실을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 고아와 혼혈아를 돕는 펄벅재단에서 학생협회장을 맡는 딸을 보며 마음을 바꿨다. 책머리에서 그는 “딸아이를 키우면서 배운 사랑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얼굴의 아이들을 제대로 보듬어 안고 싶다”고 적었다. 그는 강원도 홍천에서 다문화 대안학교를 4월경 개교할 계획이다. 그는 책의 마지막 장에 이렇게 적었다.



 ‘내 딸을 사랑하는 만큼 너희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중략)너희는 나처럼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지 마.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바꾸려 하지 마라.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강해지는 첫걸음이야..’



 올해는 데뷔 35주년 준비로도 바쁜 한 해가 될 예정이다. 콘서트는 10월께 연다.



 “지난해 6월부터 앨범 준비를 하고 있는데 몇 곡 안 나왔어요. 작곡가들이 어려워해요. 나이가 있으니 댄스도 난해한 건 못하겠고, 음악은 신나게 해야 하니까요. 뭔가 도전해보고 싶은데 실험적인 곡은 안 주네요. 저는 그냥 건전가요 불러야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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