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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에너지 문제, 정치서 벗어나야

김정관
서울대 초빙교수
대학생들이 박근혜 당선인에게 하지 말아야 할 첫째 일로 복지 남용을 꼽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미래의 우리 돈을 당겨 쓰지 말아달라는 요구였다. 복지 공약 남발로 인한 미래의 경제적 부담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현상이 이미 에너지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

 요즘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국민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 과거 에너지정책을 담당했던 한 사람(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전기 없는 현대 생활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전기의 중요성은 무한대로 커졌다. 정부는 그동안 전기를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해 왔다. 석유·가스·석탄 등 전기 생산에 필요한 연료비는 급등했지만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고 국민들에게 전기를 값싸게 공급하는 정책을 고수해 온 것이다. 그 결과 한국전력은 상당한 적자를 내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상식이다. 적자를 계속 내는 기업이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한전을 적자 누적으로 도산되게 둘 수는 없다.

 누군가 언젠가는 지금 전기를 원가보다 싸게 사용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몇 년 후 우리 후손이 훨씬 더 비싼 전기요금을 지불하거나, 우리 세대가 전기요금이 아닌 세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2008년에 정부가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는 대신 한전에 세금을 보조해 준 적이 있다. 정권 초기 국민의 지지를 얻겠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생활에 비중이 큰 재화를 ‘MB물가품목’으로 정해놓고 물가 관리를 강하게 하면서, 국제유가 급등으로 전기의 원가가 크게 올랐음에도 요금을 올리지 않고 대신에 세금으로 한전의 적자 일부를 보전해 준 것이다.

 가격 인상 요인이 생겼을 때 이를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세금으로 기업에 보전해 주는 것은 정책 중에서 하책(下策)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후진국에서 정권이 단순히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전기·석유 등 기본 재화를 국민에게 싸게 공급하고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이 정책은 시장경제에서 가격이 시장에 주는 시그널적 순기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가격은 수급 조절 기능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투자 결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석유제품은 가격 결정이 시장에 맡겨져 있어 국제유가가 오르면 그만큼 가격이 오르지만, 전기는 정부에 의해 가격이 묶여 있어 고급에너지인 전기가 석유보다 값이 싸졌다.

 이런 이유로 석유 사용자들이 대거 전기로 전환하면서 전기 수요가 예상보다 대폭 늘어나 2011년의 9·15 정전사태가 발생한 큰 원인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국민에게 값싼 전기요금으로 얻는 혜택보다 훨씬 더 큰 불편을 준 것이다. 스마트그리드 등 현 정부가 추진한 녹색성장 정책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도 지나치게 저렴한 전기요금의 탓이 크다. 전기요금이 적정 수준으로 현실화돼야만 합리적 소비행위와 더불어 스마트그리드 등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필요한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녹색성장의 기반이 구축되는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저소득층의 추가 부담은 쿠폰 등을 발급해 별도로 해결하면 된다. 이런 측면을 간과하고 단기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명분으로 전기요금을 값싸게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무분별한 복지 남용과 같이 미래 우리 후손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는 국가 유지와 국민 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 인프라이다. 에너지가 바로 서야만 지속적인 국가 발전이 가능해진다. 차기 정부에서는 정치적으로 에너지 문제를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치로부터 벗어나야만 백년대계인 에너지가 바로 선다.

김정관 서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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