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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박근혜와 패션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튀는 것을 싫어하는 한국의 남성에게 패션은 딴 나라 얘기다. 평균적 스타일이 지배하는 남성문화에 개성 연출이 허용된 출구가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넥타이다. 남성들이 원색 넥타이를 매고 나타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은 남성들의 야망이 색깔에 담겨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식에 비취색 넥타이를 맸고, 정권 출범 3년 기념식에서도 그걸 다시 맸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단일화 협상에서 한창 밀고 당길 때 약속이나 한 듯 원색 넥타이를 매고 링에 올랐다. 양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개성 연출이 한없이 자유로운 여성들의 패션문화는 너무나 기묘하고 변화무쌍해서 옷차림만 보고 심경을 읽어내기가 난감하다. 각종 액세서리와 구두, 핸드백 등에 분위기를 분산 배치한다. 그런데 최초의 여성대통령 박근혜 당선인의 경우는 비교적 용이하다. 뚜렷한 단일이미지로 고정된 이른바 ‘근혜스타일’이기 때문이다. 헤어스타일은 40년 동안 ‘올림머리’ 그걸로 일관했다. 1960, 70년대에 유행했고 육영수 여사에게서 절정을 이룬 그 고전적 스타일 말이다. 패션도 올림머리처럼 단일 품종이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3년간 133종의 옷’을 입었다고 공격한 바 있는데 그건 여성생활에 무지한 저급한 발상이었다. 133종은 청와대를 떠난 후 33년간 장만한 옷일 터인데 그렇다면 일 년에 약 4벌꼴이다. 이보다는 오히려 133종이 동종 디자인으로 수렴된다는 사실에서 당선자의 ‘무서운 원칙주의’를 읽어냈어야 했다. 이른바 슈트형 재킷이다. 32년간 헤어스타일도, 패션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이게 앞으로 5년간 펼쳐질 박근혜 정치의 개성을 짐작케 한다. ‘일단 결정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간다’는 결기정치의 어려운 행로를 예고한다. 당선인의 단일 패션에는 3개의 변종이 발견된다. 평상모드, 신중모드, 전투모드가 그것이다. 투피스 정장은 공통점인데, 윗도리 깃이 얌전하게 접혀 있는지, 세워져 있는지가 판별의 기준이다. 평상 혹은 예절모드라면 접혀 있고, 신중 혹은 겸손모드라면 약간 세워져 있다. 전투모드에는 사파리스타일이 등장한다. 단추가 많고 스티치가 분명하고 견장이 달린 옷을 입었다면 전투 중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허리띠까지 맸다면 ‘진돗개 3’이 발령됐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2002년 김정일과의 면담에서 박 당선인은 유례없이 긴치마에 깃이 얌전하게 접힌 옷을 입었다. 최고의 예절모드다. 2005년 천막당사 시절에는 사파리복장을 선호했고, 요즘은 주로 깃이 약간 세워진 만다린 칼라를 즐긴다. 지극히 신중하고 몸을 낮추고 있다는 시그널이다.



 그런 탓인지, 인수위는 완장부대가 아니라는 당선인의 정치철학에 따라 몸을 낮추고 입을 봉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김용준 위원장은 출범 첫날 아예 인수위를 벙커로 밀어 넣었다. 평생의 법정신을 십분 발휘해서 인수위 법령을 상기시켰다. ‘만약 위법행위로 물의를 빚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응분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는 경고와 함께 말이다. 그래서 소위 전례 없는 ‘벙커인수위’가 탄생했다. 뭐라도 하나 건져야 할 취재기자들의 불평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보다 못해 경제1분과 홍기택 위원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취재기자들에게 귤을 하나씩 나눠줬다. 그를 알아본 기자들이 몰리자 홍 위원이 조용히 속삭였다. “shut up!” ‘벙커인수위’의 암구호는 ‘닥치시고(shut up)!’가 됐다.



 국민들은 인수위의 겸손·신중모드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인수위가 조용한 워크숍이 되는 데에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권설계사는 고통스러운 시대진단과 치열한 정신으로 무장한 정예부대다. 이런 비장감으로 지적 처방전과 전략적 실행방안들을 펼쳐놓고 갑론을박해야 한다. 공약집에 열거된 정책메뉴들을 기존 정권들이 몰라서 실행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실행과정에서 사회세력 간, 이익집단 간 분쟁을 조정하지 못하면 정권에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사전에 언론방송의 여과기제를 거치는 것도 좋다. 조금 소란해져도 좋을 것이다. 소식 메신저인 기자들을 귀찮은 구경꾼처럼 쫓아버리는 것은 정작 권력주인인 국민들을 쫓아내는 것과 같다. 소통의 환풍기를 작동하지 않은 채 벙커인수위가 한 달 뒤 정책로드맵을 들고 나와 일괄 낭독하고 해산한다면 그건 또 다른 낭패의 시작일지 모른다.



 그래서 차제에 당선인이 전투모드로 패션을 바꾸기를, 사파리에 허리띠를 질끈 매주기를 희망한다. 인수위가 꼭 모범적일 필요가 있을까. 정권 100일 작전, 6개월 전략, 1년 기획을 치밀하게 그리는 데에 약간 사고를 치면 어떠랴. 대통합과 국민행복시대라는 이 절박한 과제를 실현할 철학과 실행방안을 국민과 함께 창출하는 데에 ‘닥치시고!’는 좀 생뚱맞지 않은가? 정권을 뒤흔드는 복병은 항상 예기치 않은 곳에서 뛰쳐나왔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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