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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열쇠

열쇠 - 김혜순(1955~ )

역광 속에 멀어지는 당신 뒷모습 열쇠 구멍이네

그 구멍 속이 세상 밖이네

어두운 산 능선은 열쇠의 굴곡처럼 구불거리고

나는 그 능선을 들어 당신을 열고 싶네

저 먼 곳, 안타깝고 환한 광야가

열쇠 구멍 뒤에 매달려 있어서

나는 그 광야에 한 아름 백합을 꽂았는데

찰칵

우리 몸은 모두 빛의 복도를 여는 문이라고

죽은 사람들이 읽는 책에 씌어 있다는데

당신은 왜 나를 열어놓고 혼자 가는가

당신이 깜빡 사라지기 전 켜놓은 열쇠 구멍 하나

그믐에 구멍을 내어 밤보다 더한 어둠 켜놓은 캄캄한 나체 하나

백합 향 가득한 그 구멍 속에서 멀어지네

지난해 초여름, 김혜순 시인을 비롯한 시인 몇이 프랑스의 저명한 시잡지 ‘포에지’ 한국시 특집호 기념 낭독회차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다. 편집책임을 맡은 무샤르 교수는 김혜순 시인의 시를 사유에 의해 존재들이 서로서로 통과하고 변신하고 해체하는 정신적 모험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시인의 시를 존재와 존재를 여는 열쇠, 세계와 세계를 투과시키는 구멍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에서 빛을 안고 멀어져 작아지는 당신 뒷모습에서 세상 밖을 본다. 그 당신에게는 저 먼 곳의 환한 광야가 매달려 있다. 나는 당신을 통해, 당신은 나를 통해 다른 세계의 문을 열고 백합을 꽂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멀리 내던져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빛과 존재와 세계를 잇는 열쇠구멍이 아닐까. 그것이 어떤 세계이든 당신 몫이겠지만.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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