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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버릴 건 버리고, 고칠 건 고치고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원칙은 지켜야 하나, 깨뜨릴 수 있나. 어느 쪽이 쉬울까.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선택이 다를 뿐이다. 보통 ‘원칙을 고수한다’는 쪽에 마음이 가게 돼 있다. 믿음직스러워 보여서다. 정치인들이 ‘원칙’을 강조하는 건 이런 신뢰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판은 그렇지 않았다. ‘약속’이 툭하면 휴지조각이 되는 여의도 하늘엔 불신의 먹구름이 늘 퍼져 있었다. 원칙은 그래서 지키기 힘든 과제로 여겨졌다. 이런 풍토였기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돋보였다. 그는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믿음의 이미지를 체화한 승부사였다.



 하지만 나는 원칙에 관해서는 정반대의 해석을 하겠다. 원칙을 지키는 게 더 쉽다는 쪽의 손을 들어준다. 원칙을 고수하는 건 어찌 보면 단순한 일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한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만약 정해진 길이 잘못됐다면 어찌해야 하나.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원래의 길만 고수했다가 파국이 예상된다면 자존심은 상하지만, 이미지에 먹칠은 하지만 원칙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국정운영이 특히 그렇다. 원칙을 정해 놓고 죽 밀고 가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나라 운영이다. 국민의 의견은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 지역별, 계층별, 세대별로 패가 갈려 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칙만 강조했다간 갈등의 골만 깊어지기 십상이다.



 박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꾸려져 새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곳곳에서 벌써 원칙과 현실 사이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과 약속한 공약을 실천해야 한다는 건 원칙이다. 재원 등의 이유로 실천이 어렵다는 건 현실이다. 당선인의 공약은 ‘착한 정책’일 수밖에 없다. 착한 정책은 독이 될 수 있다. 65세 이상 노인 전원에게 기초연금(월 20만원)을 적용하면 당장 내년에만 13조원이 필요하다. 4대 중증질환(암·심장질환·뇌혈관질환·희귀난치병) 진료를 점차 무료화하려면 연간 1조5000억원이 더 들어간다. 군 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면 예산 문제는 물론이고 전력 공백이라는 위기도 우려된다.



 각 부처가 이런 이유로 당선인의 공약을 다듬으려 하자 성난 소리가 나온다.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은 “일부 부처에서 난색을 표명하거나 실현이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공약을 지키려는 의욕은 인정한다.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의도 존중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수명이 5년에 그치는 나라가 아니다. 후손들이 이어받아 수천 년 수만 년 지속할 나라다. 당선되자마자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려서는 안 되겠지만 집착하는 것도 문제다. 버릴 건 버리고, 고칠 건 고치는 것도 원칙이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가는 게 믿음을 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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