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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이 없다는 건 기술이 좋다는 것 안목이 높다는 것

1 포텐스 피보탄트 조명. 프랑스의 여성 디자이너 샬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했으며 극단적인 절제와 순수한 기능주의 디자인을 보여준다. 2 바로크 시대의 가구. 바로크의 캐비닛은 바로크 건축의 축소판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면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작은 조각품들이 다리와 전면, 그리고 윗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김신의 맥락으로 읽는 디자인 <13> 바로크적 미니멀리즘

3 삼성 3D LED TV 9000. 오늘날 TV는 모든 브랜드의 제품들이 단순한 사각 프레임만으로 디자인되지만, 이 프레임을 고급스럽게 제작하는 데는 뛰어난 기술과 많은 비용이 든다. 4 애플 아이팟. 단순한 사각 박스 형태에 장식이 전혀 없는 매끈한 표면, 이음매에 접속 부품이 보이지 않는다.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라는 잡스의 디자인 철학을 잘 보여준다. 5 바실리 의자. 바우하우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20세기 모더니즘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강철관으로 만든 최초의 의자로 아무런 장식 없이 구조와 재료만이 보인다. 6 무지 CD 플레이어. 일본의 생활용품 브랜드‘무지’는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애플 아이팟 이후 우리 주변의 많은 제품이 단순한 사각 박스에 아무 장식 없는 표면을 드러내고 있다. 런던 디자인뮤지엄 관장이자 건축?디자인 평론가인 데 얀 수직은 이런 트렌드를 ‘바로크적 미니멀리즘’이라고 표현했다. 바로크는 장식 과잉이고 미니멀리즘은 그 정반대이므로 이 말은 굉장히 모순적이다. 왜 그는 이런 역설적 표현으로 지금의 디자인 스타일을 정의했을까.



단순한 형태와 표면, 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낸 스타일이 처음 등장한 건 20세기 초반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스타일이 처음 생긴 건 인류가 도구를 처음 만들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는 기술력과 자원의 부재로 그렇게밖에 만들 수 없었다. 기술이 진보하고 재료가 풍부해지자 물건은 순수한 쓸모를 넘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바로 상징성이다. 물건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그 물건을 소유하게 될 사람의 신분과 재산, 지적 수준을 함께 표현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화려한 장식이다.



장식은 오랫동안 인류가 만든 인공물을 지배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그리스의 고전 건축물조차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황금으로 뒤덮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경배 대상을 인류가 개발한 가장 뛰어난 기술로 치장하고 싶은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정점에 바로크가 있다.



바로크는 울퉁불퉁한 돌을 가리키는 포르투갈어‘바로코(barroco)’에서 온 말이다. 불규칙하고 기이한 보석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공상적일 정도로 기교가 과장되고 역동적이며 대담하고 열정적인 건축과 가구 스타일을 뜻한다. 르네상스 말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프랑스와 독일로 퍼졌으며 17세기에 그 절정기를 누렸다. 절정기 바로크 건축의 실내를 보면 직선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현란한 곡선의 장식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지나치게 과잉 장식돼 쓸데없이 비용을 추가한 사물을 바로크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장식적인 물건들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부와 지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시대에 장식적인 물건은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부자들은 이런 물건으로 자신의 지위를 차별화하려 했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가격이 싸지자 가난한 이들도 장식적인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계급이 낮아도 취향과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수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계가 복제한 이런 모조품은 조잡하고 천박해 보였다. 이때 모더니즘이 등장했다.





단순미는 현대 부자들 고상한 취향의 상징

20세기 초반의 모더니스트들은 기계가 생산한 이런 장식적인 복제품을 혐오했다. 사물의 진정한 목적을 감추고 단지 남에게 과시하려는 욕망만이 남은 허세로 보았다. 아돌프 루스 같은 건축가는 “장식은 인간의 노동, 돈 그리고 재료를 망쳐버리는 국민경제에 대한 범죄”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문화의 진화는 일상용품에서 장식을 멀리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말한 그는 장식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 수천 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에 이미 네덜란드의 데스틸과 독일의 바우하우스,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모더니스트들은 장식을 완전히 걷어내 구조와 재료만이 눈에 띄는 디자인을 내놓았다.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의자는 강철관으로 만든 최초의 의자다. 이 의자는 과거의 역사와 완전한 단절을 보인다. 오직 하중을 견디는 구조적인 뼈대, 그리고 그 흔한 패턴 하나 없이 기능만을 위해 얹은 매끈한 천만이 눈에 띌 뿐이다. 샬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한 포텐스 피보탄트(Potence Pivotante) 조명은 극단적인 절제와 기능주의에 따른 철저한 단순미를 보여준다.



현대의 부자들은 이런 절제의 단순미를 더 고상한 취향으로 여기게 됐다. 절제의 디자인 전통은 20세기 중반 디터 람스 같은 디자이너에게 이어졌고, 그는 브라운의 제품들을 통해 ‘최소한의 디자인’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 전통은 21세기 전반 다시 애플의 아이팟으로 부활했다.



스티브 잡스는 물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성’이라고 보았다. 사소한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그 정성과 정교함이 기교의 자랑이 아닌 단순함에 있다고 보았다. 잡스는 애플의 첫 브로슈어에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다”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현대적 의미에서 적절한 표현이었다. 사실 매끈한 표면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여러 부품이 정교하게 조립되는 현대의 제품은 접합에서 기술의 차이가 드러난다. 면과 면이 만나는 지점이 완벽하고 깔끔해야 한다. 이음매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야 완전하게 매끈한 표면이 완성된다. 이것은 바로크적 장식 과잉보

다 어려운 기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쉽고 절제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도덕적으로도 우월해 보인다. 장식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터 람스의 팬이었던 애플의 디자인 디렉터 조너선 아이브는 람스의 “더 적게 그러나 더 낫게”의 원칙을 실천한 21세기 디자이너다. 애플의 디자인은 20세기 초반 모더니스트들의 철학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절제와 단순미를 추구한 애플의 디자인은 장식 과잉의 바로크와도 맞닿아 있다. 기술과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에서다. 바로크적 미니멀리즘이라는 말이 역설적이면서도 오늘날의 디자인트렌드를 통찰력 있게 정의했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우월한 안목과 첨단 제품 자랑하고픈 욕망

누구나 어떤 물건을 사고 소유하는 것은 곧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도 있다. 장식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시대에 그것은 부와 높은 안목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화로 인해 장식적인 것은 천박한 졸부의 취향이며,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사람의 마음속에서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가 사라진 건 아니다. 그들에게 바로크적 미니멀리즘은 대단히 훌륭한 대안이다. 미니멀리즘은 어떤 시대에든 절제의 미학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보다 우월한 안목, 기술적으로 진보된 사물을 자랑하고 싶은 내면의 욕망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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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씨는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7년 동안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의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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