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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할 수 있는 것 당당하게 밝혀야 휘둘리지 않아요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데뷔 13년 만에 첫 국내 단독 콘서트 '아시아의 별' 보아를 만나다

콘서트라는 게 가수 입장에선 응당 필수 코스다. 특별한 무대를 눈앞에서 보고 싶어하는 팬들에 대한 서비스이자 자신의 모든 끼를 발산하는 자리다. 하지만 가수 생활 14년차, 7장의 앨범을 내고도 국내에서 콘서트 한 번 하지 않은 가수가 있다. 바로 보아(27)다. ‘넘버원’ ‘마이네임’ ‘허리케인 비너스’ 등 잇단 히트곡을 불렀던 그는 26, 27일에서나 첫 국내 단독 콘서트를 마련했다. 지금껏 대형 기획사(SM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과 트레이닝을 거친 아이돌의 원조, 한류 바람이 불기 전 이미 일본에서 성공한 K팝의 개척자 등의 이미지로 대중과 거리감을 두어온 그로서는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기실 보아의 변신은 지난해부터 조금씩 감지돼 왔다. 7집 앨범의 타이틀곡 ‘온리원’으로 강한 일렉트로닉풍 댄스를 벗어나 서정적 멜로디를 선보였고, 한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 ‘k-pop스타’에 심사위원으로 등장해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지적으로 ‘보아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화에 대한 그의 생각은 무엇일까. 콘서트 준비에 한창인 그를 9일 오후 서울 청담동 SM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중앙SUNDAY가 만났다.





게스트 없이 혼자서 20여 곡 부를 계획

긴 머리에 살짝 웨이브를 넣은 보아는 좀 피곤해 보였다. 콘서트를 앞두고 매일 연습장으로 ‘끌려다닌다’고 했다. 이미 해외에서 콘서트를 수십 번 해봤을 그이기에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국내 공연에 대한 부담이 큰 걸까. “곡이 너무 많아요. 20여 곡 부를 계획인데 옛날 노래들은 지금 들어보니 저도 모르겠더라고요. 게다가 옛날 안무를 외우고 있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동영상 보고 ‘이거 어떻게 했었지’ 되살리기를 하고 있어요.”



-처음이니만큼 부담이 크겠어요.

“부담이라기보단 고민이죠. 이 많은 노래를 어떻게 보여드릴까, 어떤 방향으로 공연을 꾸며야 할까. 그걸 정리해서 멋진 퍼포먼스로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런데 국내 단독 콘서트가 왜 이렇게 늦었죠.

“공연이라는 게 댄서와 저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연출·음향 등 전체 스태프에 대한 세팅 자체가 필요해요. 이제는 그게 가능해졌어요. 무엇보다 일본에서 공연할 때 합을 맞춰본 분이 합류하게 됐죠. 실력 있는 스태프를 모으다 보니 인종도 다양해요.”



-비장의 카드가 있을 텐데.

“없진 않겠죠? 현장에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실 만한 걸 준비하려고요. 아이돌 친구들은 뭘 많이 하더라고요. 패러디 같은 것도 하고. 하지만 전 게스트도 없어요. 그저 오시는 분들이 ‘이런 노래도 있었지’ 추억하고 즐기는 공연이 될 것 같아요.”



1 1집 ID Peace B 재킷 사진 2 2집 No.1 재킷 사진 3 4집 My Name BoA 재킷 사진 4 6집 Hurricane Venus 재킷 사진


5~7 7집 Only One 재킷 사진 8, 9 6집 Hurricane Venus 재킷 사진


10, 11 Copy & Paste (BoA The 6th Repack Album) 재킷 사진 12 미국 싱글 Eat You Up 재킷 사진 13 미국 앨범 BoA 재킷 사진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주위가 숙연~”

보아는 지난해 SBS 연예대상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k-pop스타’에서 심사위원으로서 프로그램에 기여했다는 이유였다. 이전까지 그는 예능 출연이 거의 없었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주위가 숙연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러 웃길 필요가 없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의 장기가 발휘됐다. 차분하지만 따뜻한 말투, 참가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모습이 인간미 넘치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어줬다.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회사에서 제의를 받았어요. SM에서 한 명 나가야 하는데 양현석·박진영 대표가 남성이니 여자가 나왔음 좋겠다는 거였죠. 처음엔 현역으로 가수를 하면서 누구를 심사한다는 게 부담됐죠. ‘말은 그렇게 하면서 네 무대는 왜 그래’라는 소리를 듣기 딱 좋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참가자들도 ‘내가 15년 전 가졌던 마음으로 오디션을 보러 오지 않을까’라고. 그러면 직접 조언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고민 끝에 수락했어요.”



-차가운 이미지와 다르다고들 해요.

“대본도 없고, 시즌1부터 우리가 어떻게 심사할지 감독들도 전혀 예상을 못해요. 눈치껏 첫 심사위원이 많이 혼내면 뒤에서 좀 위로해 주고, 암암리에 그런 분위기가 조성이 된 것 같아요.”



-진행 경험이 없는데도 말을 잘하던데.

“전 심사 멘트를 미리 준비하지는 않아요. 그냥 간단하게 좋으면 좋았다, 그러죠. 나머지 두 사람이 경쟁이 붙지 않았나요? ‘공기반 소리반’ 수준의 비유들이 막 나와요. 둘 사이에서 저는 시청자 입장에서 재밌게 지켜봐요.”



-스스로 오디션 출신이라 감정 이입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캐스팅이 먼저 돼서 오디션 보고 (SM) 소속 가수가 됐죠. 그 친구들은 20회 넘게 서바이벌 관문을 통과해야 해요. 이 프로그램이 잔인하다고 생각되는 게 트레이닝을 도와주면서 고민도 들어주고 정이 들게 되거든요. 그런 친구들이 탈락하면 참 마음이 아프죠. 친구들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저는 성장통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감정적인 모습이 드러나게 되나 봐요.”



-경험자로서 10대의 어린 참가자들에 대해 조언한다면.

“전 긍정적으로 봐요. 시대가 많이 변했어요. 많은 분들이 제게 ‘어릴 때 데뷔해서 잃은 게 많지 않냐’ 그러는데, 생각하기 나름이죠. 대학까지 나와서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반면 어린 친구들이 자신의 끼를 찾고 잘되면 정말 좋은 거죠. 끼 있는 친구 보고 딴 건 절대 못 할 사람이라 생각하면 지지해야죠. 이젠 아이돌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어요. 저 나이에 왜 저렇게 춤을 춰가 아니라, 저렇게 어린데도 참 잘한다로 바뀌었죠.”



-이제 오디션-기획사의 발탁 없이 가수가 되기는 힘든 건가요.

“아마 눈에 보이는 가장 빠른 시스템이니까 사람이 몰리겠죠. SM에는 아직도 길거리 캐스팅이 있다고 들었어요.”



-끼와 노력, 가수에게 뭐가 더 중요한가요.

“사실 끼가 없는 친구들은 가능성이 많이 낮아요. 연예계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정말 시험처럼 점수가 많이 올라간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끼가 있는 친구들에게 노력하라고 할 순 있지만, 노력하는 친구들에게 끼를 줄 순 없죠. 끼는 자기 안에 표현할 게 너무 많아 주체가 안 되는 건데, 노력만 하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죠. 같은 노래를 불러도 흡인력이 달라요.”



-15년 전 오디션에 뽑힌 이유도 그 끼 때문일까요.

“한 번은 저도 궁금해서 수만 선생님에게 왜 나를 뽑았는지 물어봤어요. 그냥 웃는 게 예뻤다고 그러시대요.



-춤을 잘 춰서 아닌가요.

“오디션에서 수만 선생님은 노래만 봤어요. 음,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몰라요.”







미국서 찍은 댄스 영화 ‘코브3D’ 올해 개봉

2000년 보아는 만 13세의 나이로 데뷔했다. 그리고 이듬해 일본으로 진출했다. 6개월 만에 대성공을 거뒀다. 2002년 일본 정규 앨범 1집 ‘Listen To My Heart’가 100만 장 넘게 팔리며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로부터 여섯 장의 정규 음반을 연속으로 오리콘 위클리 앨범차트 1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넘버원’(2002), ‘아틀란티스 프린세스’(2003), ‘마이 네임’(2004),’ 걸스 온 톱’(2005)을 발매하며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 2009년 4월에는 미국에 진출, 미국 첫 정규 음반 ‘BoA’를 발매해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200’에서 127위에 진입했다.



-왜 그렇게 빨리 가수가 됐고, 또 외국에 나갔나요.

“모르겠어요. 제가 발상이 특이할 수도 있는데, 학교 생활이 꼭 나한테 필요한 건가라는 생각이 있었죠. 부모님도 ‘너는 꼭 학교에 가야 해’ 이런 생각이 아니셨고요. 제가 하는 일에 지지를 해주셨죠. 일본에 간 건 어렸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어요. 국내에서 1집이 별로 성공을 못 해서인지 일본에서 또 신인부터 시작한다는 부담이 없었죠. 외국에서 산다는 거나 2개 국어를 한다는 게 너무 좋았죠. 국내 활동은 (어리니까) 나중에 갔다 와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기획사 의도대로 컨셉트가 정해지진 않았나요.

“파워풀한 댄스의 여전사 이미지는 제가 정한 컨셉트였어요. 기획사에서 정해주는 것도 한계가 있죠. 아티스트가 같이 성장 안 하면 발언권도 잃게 되요. 가수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 잘 하고 싶은 것을 과감히 말하고 도움을 청해야 서로에게 윈윈이죠. 아티스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마인드가 확실히 있어야 갈팡질팡을 안 하게 돼요.”



-어린 나이에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했을 텐데.

“사람들은 ‘보아니까’라고 기대가 컸어요. 그러면 전 그냥 ‘보아도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하죠. 잘될 때도 있으면 안될 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좋은 게 오더라고요. 낙천적으로 살라는 게 말처럼 쉽냐고 하는데 습관이 되면 그렇게 돼요. 제가 중심을 잘 잡고 컨트롤하고 있어야 항상 제 주관대로 가더라고요.”



-미국에서의 성과는 예상보다 저조했는데.

“잘 되고 못 되고 떠나 미국에선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우선 춤에 대해서요. 미국 안무가들이랑 당시 유행하던 클럽풍 일렉트로닉을 하면서 당시로선 본 적도 없는 안무를 보는 게 아주 신선했고, 음악적 시야도 넓어졌죠. 또 훌륭한 프로듀서·안무가도 만나고, 그걸 계기로 ‘코브3D’라는 영화도 찍게 됐으니까요(그는 지난해 초 듀안 애들러 감독의 댄스 영화에 출연했고, 작품은 올해 개봉 예정이다).”



-그래도 한류 도움을 받은 싸이가 부러울 것 같아요.

“그때 만약에 잘 됐다면 제가 그런 걸 배울 시간이 있었을까요. 싸이 오빠가 항상 음악에 나이가 필요 있냐, 라고 하죠. 가수가 어리다고 더 인정받는 건 우리나라가 가장 심한 것 같아요.”

스물일곱 살 ‘중견 가수’는 시종 일관 여유가 넘쳤다. 일찍 데뷔한 단점을 물었을 땐 나이에 비해 눈치가 빠른 것, 성형해도 누구나 과거 모습을 알고 있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일본-미국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국내에선 진지하게 연기를 해 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갈 길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그이지만 변하지 않고 지키고 싶은 단 하나는 무엇일까. “제 무대를 보면 알겠지만 안무가 너무 어려워요. 할 때마다 기준이 높아지고 힘든 것만 시키니까 가끔 안무가들에게 투정을 부리죠. 그러면 그래요. ‘너니까, 보아니까 할 수 있어’라고. 앞으로도 그런 도전이 이어질 것 같아요.”



글 이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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