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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 칼럼] 중소기업 망해도 싸다.

홍승일 경제 에디터
사뭇 도발적인 제하의 300여 쪽 도톰한 책이 나온 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이다. 기업 도산이 잇따르고 실업자가 거리에 넘치던 흉흉한 시절이라 잘못하면 길 가다 뺨 맞을지 모르는 야박한 제목이었다. 설상가상 부제는 ‘중소기업 때리기’. 요즘 경제민주화 논의 와중에 ‘대기업 때리기’는 귀에 익숙하지만 힘없는 약자 중소기업을 때리다니…. 그래도 당시 20년 넘게 중소기업 지원기관에서 일해 온 현장 전문가의 체험인지라 저자는 욕 꽤나 먹으면서 격려도 많이 받았다. 툭하면 정부 지원금과 청탁에 기대려는 일부 중소기업의 습성, 허술하기 짝이 없는 관리·생산 시스템, 창업 경영자들의 독선적 전횡 등을 생생한 사례로 접할 수 있었다.

오래전 읽은 책을 새삼 떠올린 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각별한 중소기업 사랑 때문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중소기업 정책 발굴을 위한 별도 분과가 구성되고, 중소기업청은 쟁쟁한 장관급 부처를 제치고 11일 인수위 정부 업무보고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당선인은 일찍이 대선 유세 과정에서 ‘중소기업 대통령’을 자임했다. 이제 중소기업청을 장관급 위원회로 격상시키는 방안, 중소기업 졸업을 두려워하는 ‘피터팬 증후군’ 치유를 위한 중견기업 지원 확대도 검토되고 있다. 그래서 때 아닌 신종 ‘9988’이 인수위 안에서 회자된다고 한다. 익숙한 무병장수 덕담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죽자’는 뜻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 수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런데 의욕에 차 있을 인수위 관계자들이 두 가지를 읽어봤으면 한다.
하나는 중소기업기본법이다. 수치와 규정으로 점철된 따분한 법전이지만 세계적 수준이라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지원제도의 바이블이다. 업종별 중소기업 범위를 정해 놓고 그 범위 안에 드는 기업에 어떤 정부지원이 돌아가는지 규정해놨다. 인상 깊은 건 수많은 예외 규정이다. 업종별로 중소기업 범위나 지원 내용이 다 다른데, 업종별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복잡하다. 해당 업종·업체들의 정치권 로비로 개정을 거듭하면서 바이블이라는 중소기업기본법은 한때 ‘누더기 법’이란 오명을 얻었다. 역대 정부는 제한된 재원으로 효과적인 중소기업 지원을 하겠다고 중소기업 범위를 줄여보려 했지만 번번이 정치권 입김에 막히곤 했다. 회사 매출과 종업원 수가 쑥쑥 늘어 중소기업을 졸업할 때가 되면 축하파티를 하는 대신 중소기업기본법을 참고서 삼아 회사를 쪼갠다. 160가지 혜택이 있는 중소기업 온실에서 나와 190가지 대기업 규제가 기다리는 허허벌판으로 나가기 싫은 게 본능이겠지만, 과도한 중소기업 지원제도는 이런 ‘피터팬 증후군’을 키운다. 거기에 벤처다, 이노비즈다 하는 이름으로 2중, 3중의 지원을 해준다.

또 하나 일독을 권하는 것은 앞서 소개한중소기업, 망해도 싸다이다. 중소기업기본법의 도움으로 망해야 할 곳들이 좀비기업으로 살아남아 우리 경제에 어떤 주름살을 안겨 주고 있는지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다.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이 한창일 때 일부 업체 사장들은 강남 룸살롱에서 나랏돈은 공돈, 못 먹는 놈은 바보라며 술잔을 부딪쳤다.

결국 실마리는 ‘9988’에 들어 있다. 대한민국 사업체의 99%, 320만 곳이 99년 동안 팔팔하게 존속하긴 어려울 것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곳은 하루빨리 문 닫게 하고 될성부른 혁신 창업에 힘을 몰아주는 비즈니스 생태계가 해답이다. 중소기업은 복지가 아니라 산업정책의 영역이다. 70년대 이후 창업해 매출 1조원 넘긴 회사 수가 네이버·휴맥스·이랜드 등 손에 꼽을 정도인 것이 오로지 재벌의 탐욕 때문인지, 공공재원을 빨아먹은 좀비기업들 때문인지, 아니면 어느 쪽 책임이 더 큰지 엄밀히 따져볼 때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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