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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다, 내 공간 … 행복하다, 미술로 숨쉬는 하루

갤러리에서 잔뼈가 굵은 서른 아홉 동갑내기 정혜연(왼쪽)과 이승민씨는 “일터가 놀이터이자 쉼터라 집에 가고 싶지 않은 게 유일한 단점”이라고 했다. 리노베이션 공사에도 직접 뛰어들며 몸으로 닦은 갤러리 101 공간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김성룡 기자]

100세 장수 시대, 1인 가구 시대다. 길게만 살기 보다는 즐겁고 보람차게 살려는 이들이 늘면서 문화창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은퇴·정년 없는 재미 있는 일터가 꿈이다. 일자리보다 일거리, 작업보다 놀이를 창조하는 현장을 찾아 우리 삶을 바꾸는 비결을 들어본다.


시작은 평범하나 절실했다. 나이 사십이 내일 모레인데 일터에서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이는 갤러리스트(화랑에서 전시 기획 전반 운영과 작가 관리, 작품 판매 등을 맡아 일하는 전문가) 11년차라면 여성 이력으론 괜찮아 보였지만 젊고, 말 잘 듣고, 외국 유학으로 무장한 젊은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현실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서른아홉 동갑내기 이승민·정혜연씨는 각기 이름난 국제갤러리와 오페라갤러리에서 일하며 서로의 고민을 잘 알던 정신적 동지였다. 그런 두 사람은 지난해 “때가 왔다”며 의기투합했다. 갤러리에서 월급쟁이로 일하는 모든 이들의 최종 목표는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것. 미술인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물쭈물 하다가는 인생 마감이 닥치리라 깨달았다.

 찡한 겨울 냉기를 뚫고 들어간 서울 용산구 장문로 ‘갤러리 101’ 공간은 정열적인 선인장 그림들이 내뿜는 열기 덕인지 후끈했다. 작고 소박한 전시장이지만 현장을 지키고 있는 주인들의 패기만만 자신감이 무늬처럼 흐른다.

 지난해 12월 12일 두 사람이 공동 투자해 연 갤러리 101은 미술인들 사이에서 벌써 ‘작가의 내면을 이해해주는 신생 갤러리’로 주목받고 있다. 13일까지 이어지는 개관전에 초대작가로 출품한 작가 김을씨는 “닳고 닳은 기존 갤러리 사람들과 다른 성정, 이를테면 차가운 거래가 아니라 따듯한 공감이 있어 함께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시회를 준비 중인 작가 이명호씨는 “호흡을 길게 가고 싶은 작가들에겐 이렇게 작품을 제대로 이해해주고 돈보다 즐거움을 나누는 화랑이 좋아” 선뜻 응했다고 한다.

 이승민씨는 “남의 밑에서 일할 때는 감출 수밖에 없었던 내 색깔을 찾고 나의 역량을 확인하면서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일하는 요즘이 즐겁다”고 했다. 정혜연씨는 “주변 지인들과 함께 움직이니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과 책임감이 생긴다”고 털어놨다. 화랑에서 일하면서 고용인이기에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여기서 차근차근 풀어나가겠다고 했다. 작업 외에 마케팅이나 홍보 같은 일에는 아이처럼 순진해서 상처입고 손해 보는 작가들의 마음을 친구처럼 다독이겠다는 각오다.

 미술평론가 이진숙씨는 이들에게 ‘아트(Art) 교(敎)’ 신도란 의미 있는 이름을 붙여줬다. 예술이 이끄는 정신과 마음을 세상에 널리 펴는 일꾼이란 뜻이다. 숨어있는 좋은 국내 작가를 발굴해 해외에 소개하고 합리적인 미술품값으로 미술애호가와 작가를 이어줘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트를 생활화 하는 그날까지 쉬지 않는 것이 이들의 교리이자 철학이다. 느리게, 낮게, 아름답게 가는 길을 화랑 일로 다지고 있다.

 ‘갤러리 101’의 올 상반기 일정은 꽉 잡혀있다. 개관전에 출품한 강석호·김을·이광호 세 작가가 호평 받은 데 이어 2월에는 ‘가구전’이, 4월에는 서양화가 최울가 개인전이, 5월에는 사진작가 이명호와 네덜란드의 비디오 작가 로버트 오버벡의 2인전이 대기 중이다. 주한 외국 대사관 18곳이 몰려있는 곳이라 각국 대사관 직원들이 자주 들르는 문화 명소이자 한국미술을 세계로 알리는 창구 구실까지 겸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공간에서 최대 혜택을 받는 이들은 “우리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쁘고 즐겁고 신나고 행복해서다. ‘조금 벌고 많이 놀자’ ‘우리는 예술 하러 출근한다’를 좌우명 삼은 ‘아트교’ 2인조는 더 많은 신자들을 포섭하는 걸 창업 원년의 희망이라 했다.

 “‘아트교’에 입교하려는 분들, 한번 왕림하시라”는 두 사람의 인사가 살갑다. 02-797-3093.


‘갤러리 101’ 창업 비용은 …

고정 비용 최소화를 목표로 세웠다. 임대료 포함해 매달 지출 상한선을 400만원으로 했는데 아직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초기 자본금은 1억8000만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중소기업청이 운영하는 청년 선도 창업자금 5000만원과 맞춤형 창업사업 지원금 5000만원을 받았다. 서울 용산구 옛 오만 대사관 자리였던 38평 공간을 보증금 1억 원에 빌렸 다.

 인테리어 비용이 4000만 원, 집기류 구매에 500만 원, 기타 경상비와 홈페이지 관리 등에 월 100만원이 든다. 앞으로 예상되는 목돈 지출은 애플리케이션 개발비 정도라 출발은 비교적 무난했다는 평가다.

 홍보와 마케팅은 지인들과 ‘재능 맞교환’을 했고 이 부분이 가장 든든한 자본이다. 문화 창업은 특히 콘텐트가 중요하기 때문에 평소 생각을 나누던 이들과 주고받는 모든 것이 일의 핵심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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