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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널드 빅맥 제국’일군 창업공신

맥도널드를 미국의 상징으로 키운 프레드 터너(오른쪽)와 회사 마스코트 로널드 맥도널드. [사진 맥도널드]
작은 햄버거 가게였던 맥도널드를 미국의 상징으로 키운 프레드 터너 명예회장이 7일 생을 마쳤다. 80세.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 통신 등은 터너 회장이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디어필드 호스피스 센터에서 폐렴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고 8일(현지시간) 전했다.

 터너는 맥도널드 경영학의 창시자다. 맥도널드 경영 이념인 ‘품질·서비스·청결(QSC)’이란 표어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또 그는 1958년 맥도널드 경영·교육 지침서를 만들었다. 61년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맹점 주인과 종업원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기 위해 회사 안에 햄버거대학을 설립했다. 세계 어딜 가나 똑같은 크기와 맛의 ‘빅맥’이 제공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는 ‘맥너겟’과 ‘해피밀’ 같은 히트 상품도 개발했다.

 맥도널드는 터너가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동안(74~87년) 매장이 전 세계적으로 3배나 늘어 3만1000개에 달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70년대 말부터 그의 경영 방법은 ‘맥도널드 경영학’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MIT 슬로언비즈니스스쿨 등에서 정규 과목으로도 채택됐다.

 앤디 맥키나 맥도널드 회장은 터너에 대해 “그는 진정한 개척자였으며 패스트푸드 식당 사업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라며 “그의 리더십과 열정 그리고 헌신적 노력은 길이 남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터너의 출발은 보잘 것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2년 뒤인 56년 시카고 한 맥도널드 매장에 취직해 햄버거 패티를 굽는 일을 맡았다. 리처드와 모리스 맥도널드 형제가 1940년 캘리포니아에서 맥도널드를 팔기 시작한 지 16년이 지났을 때다. 입사 5년 뒤 그에게 운명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61년 시카고 매장 책임자인 레이 크록이 맥도널드 형제로부터 맥도널드를 270만 달러에 인수했다. 크록은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려 갔다. 하지만 크록은 경영을 몰랐다. 그는 대졸인 터너에게 뒷수습(경영)을 맡겼다.

 터너는 크록이 은퇴한 77년 사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격이 한 단계 높아졌을 뿐, 이미 그는 크록이 은퇴하기 3년 전인 74년부터 CEO로서 맥도널드 제국을 지휘하고 있었다. 터너는 90년 일선 경영에서 손을 떼고 사실상 고문인 선임 회장으로 물러났다. 2004년엔 명예 회장이 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터너는 맥도널드 제국의 말단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며 “미국 1세대 전문 경영인들의 대표 주자”라고 평했다.

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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