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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백발의 평생법관을 보고 싶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이웃 나라 일본에선 백발이 성성한 판사들이 수두룩하다. ‘평생법관제’가 완전히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판사 10명 중 9명은 65세까지 판사로 일하다 정년 퇴임한다. 퇴임한 뒤 변호사로 일하며 다시 법정에 서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백발의 판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인사철마다 고위 법관 승진을 앞두고 판사들이 줄사표를 내기 때문이다. 올해도 그런 풍경이 어김없이 반복됐다. ‘판사의 꽃’이라 불리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7명이 2월 고위 법관 정기 인사를 앞두고 사직서를 낸 것이다. 최근 10년 내 최대 규모다. 고법의 허리급인 사법연수원 15~17기(50대) 판사들이 주축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며 변호사로 개업할 계획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인사 때마다 나오는 ‘줄사퇴’ 문화를 깨고, 정년까지 일하는 법관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며 1년 전 도입한 평생법관제를 무색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법관은 “신망받는 선배 법관들이 무더기로 사표를 내 후배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고 털어놨다.

 평생법관제를 처음 도입한다고 했을 때 내심 조금은 바뀔 것으로 기대했다. 변호사로 옮긴 법관들이 맡은 소송에 대해 후배 법관들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전관예우(前官禮遇)’ 관행도 사라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난해에도 기수와 서열 때문에 사표를 던진 고참 법관들이 대형 로펌 변호사로 법정에 서는 풍경은 여전했다. 사퇴한 고위 법관을 원하는 수요가 있기 때문일 터다. 한 외국인 변호사는 “한국에서 일하며 가장 놀란 것은 형사사건 피고인이 담당 재판부의 연수원 기수에 따라 변호인 선임을 요구하는 관행이었다”고 말했다.

 자녀 결혼·유학 비용 등 경제적 이유로 떠나는 법관을 탓할 수는 없다. 로스쿨을 졸업해 대형 로펌에 갓 입사한 변호사 후배들이 고참 법관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상황에서 ‘법관으로서의 명예’만 운운할 순 없다. 오히려 법관들이 명예를 마다하고 돈을 택하게 만든 법원의 시스템을 돌아봐야 할 때다. 밤낮없는 격무에 비해 떨어지는 처우는 개선하지 않으면서 “평생 법관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뒀으니 버텨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다. 법원에 남은 법관들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재야에서 법관을 수혈하는 ‘법조 일원화’ 추세를 떨떠름하게 바라보는 일부 법관의 잘못된 엘리트 의식이 그것이다.

 법관들의 무더기 사표로 힘이 빠진 것은 법원이다. 하지만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다. 경험 많은 법관에게 수준 높은 재판을 받기 위해 20여 년 동안 세금을 낸 주인공이다. 우리 국민들도 백발이 성성한 경륜 있는 법관들이 법정에서 평생 재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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