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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선행학습을 차단하려면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선행학습은 ‘일어서서 영화 보기’에 비유될 수 있다. 영화관에서 맨 앞줄 관객이 일어나면 그 다음 줄 관객은 할 수 없이 일어서야 하고 결국 모든 사람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선행학습은 일부가 시작하면 옆 사람은 눈치 보며 따라 할 수밖에 없다. 앉아서 보나 서서 보나 동일한데 괜히 일어나 관람함으로써 피로감만 쌓이는 것처럼, 선행학습은 소모적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이러한 ‘묻지마’ 선행학습의 폐해에 공감한다. 최근 논란이 되는 선행학습 규제법의 취지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냉철하게 따져보면 선행학습 규제법은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우선 예습과 선행학습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규제 대상을 정하기 어렵고, 법 적용을 통해 학원의 선행학습을 금지하게 되면 음성적으로 선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고액 개인과외가 성행할 것이다. 상위 학년 내용을 접하면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영재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선행학습의 표적이 되는 과목은 주로 수학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수학 실력은 과학기술 발전의 기반이 된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선행학습 규제로 그들의 수학적 능력 신장의 기회를 제한하는 것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이처럼 법을 제정하려면 선행학습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개인교습은 어떻게 단속할 것인지, 영재들은 어떻게 판별할 것인지 등 복잡하고 섬세한 단서 조항이 있어야 한다. 이로 볼 때 법 제정의 현실성은 그리 높지 않다.

 법을 통한 규제라는 대증요법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선행학습 유발 요인을 줄여나가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첫째 방안은 선행학습을 통해 이득을 얻기 어려운 평가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선행학습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앞당겨 배운 내용이 현재의 시험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변별력 확보라는 명분으로 중학교 1학년 함수 문제가 고등학교 1학년 함수 내용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선행학습이 제 학년 시험에서 유리하게 만드는 연결고리를 끊도록 평가체제를 관리감독한다면 억제 효과가 있을 것이다.

 둘째 방안은 선행을 부추기는 고등학교 수학 과목 운영과 수능 체제를 정비하는 것이다. 현 교육과정에서 고교 이과생은 2, 3학년에서 수학1, 수학2, 적분과 통계, 기하와 벡터의 네 과목을 배워야 한다. 학교는 이를 위해 수능 직전까지 진도를 나가야 한다. 결국 진도를 빨리 끝내고 수능 대비를 하도록 이중 시간표를 동원하는 등 과다하게 수학 수업을 편성할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면 학생은 중학교부터 고교 수학을 선행해야 한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려면 교육과정 운영이 정상화돼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학습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기하와 벡터와 같이 고난도의 과목은 모든 학생이 보는 수능에서 배제하고, 일부 대학의 논술시험에서 다루게 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셋째는 선행학습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교육과정은 학습자의 인지 발달 단계와 사고의 수준을 고려해 구성한 것이다. 지나치게 선행하면 무리가 따른다. 즉 내용을 소화하기 어려운 시기에 피상적으로 배우고, 막상 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시기에는 이미 아는 것으로 간주해 대충 넘어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물론 선행학습을 통해 앎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극소수의 뛰어난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에게 선행학습의 부작용은 크다. 그럼에도 선행학습이 보편적인 사회현상으로 고착화된 데에는 불안감을 마케팅한 학원의 영향이 크다.

 선행학습 규제법은 말하자면 영화관에서 일어서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그보다는 일어나 영화를 봤을 때 실질적인 이익이 없도록 만들고, 또 실익이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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