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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사람이 기계보다 아름다운 건 전천후라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애들이 미국에서 왔다. 2년 만이다. 일 년에 이 주일밖에 안 되는 휴가를 쪼개서 다섯 밤 자고 갈 예정이란다. 행복한 ‘서울의 밤’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도착 첫날 밤을 고스란히 설쳤다. ‘그놈의 딱 맞는 온도 만들기’ 때문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맞는 온도’. 밤새도록 보일러를 올렸다 내렸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부지런을 떨었다.

 인내심 없는 애들. 일 년 내내 ‘서니 데이’인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탓인가. 아니, 날씨 탓만은 아니다. 그들에겐 ‘딱 맞는 가장 적합한 게’ 모든 것에 존재한다. 약수역에서 홍대를 가더라도 내비게이션이 실시간 알려주는 가장 빠른 경로를 이용해야 하고. 스케줄 북에 맞춰 시간 낭비 없이 움직여야 되며. 요리도 늘 같은 맛을 유지하기 위해 ‘레시피’대로 만들어야 한다.

 덕분에 잡채 만드는 법 가르쳐주다가 불어 터진 잡채만 지겹도록 먹었다. ‘간장 적당히 넣고, 적당히 볶다가’ 했더니 몇 스푼 넣고 몇 분을 볶아야 하는지 알려달란다. 모든 것에 매뉴얼이 필요한가 보다. ‘0 아니면 1’. 완전 디지털이다. 추우면 이불 좀 끌어당겨 덮고 자면 되고, 익숙하고 편한 길로 가다가 차 막히면 음악 감상 하면 되고, 음식도 짜면 밥과 먹고 싱거우면 밥 빼고 먹으면 되고. 이런 아날로그 엄마가 디지털 딸들은 못마땅하기만 할 터였다.

 디지털 딸들이 다 옳은 것도 아니다. 실내온도 조절기보다 두툼한 겉옷이 더 실속 있고, 멍청한 내비가 이상한 막다른 골목에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하는 경우도 많고, 갑자기 음식 만들어야 될 때도 많고, 전화기 없으면 번호 몰라 맹꽁이 되기 십상이고.

 하지만 아날로그인 난, 전천후다. 춥거나 덥거나 옷으로 조절하고, 내비 없이 어디든 다 갈 수 있고, 레시피 없어도 음식 다 만든다. 가사 없이 노래도 부르고 친한 친구에게는 전화번호부 들추지 않고 전화도 건다.

 지난해 10월 말 미국 동부지역을 강타하며 최소 120명의 생명을 앗아간 허리케인 샌디. 그로 인한 전기와 통신 두절로 며칠 동안 고립된 시민들. 볼거리도 들을 거리도 또 밖에 나갈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촛불을 켜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 있던 먼지 덮인 책도 꺼내 읽으면서, 모처럼 오순도순 대화하며 그 고통의 시간을 함께했다고 한다. 재난 속에서 가족끼리 마주했던 시간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의 경험’을 통해 새삼 깨우친 것도 많다는데.

 요즘. 전화도 ‘통화보다 문자’를 선호한다. 말도 하기 싫단다. 이런저런 상황 설명하면 ‘뭐 하라는 건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한다. 생각하기도 싫단다. 뉴스거리를 말해주면 사람 앉혀놓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인터넷 확인 들어간다. 믿지도 못하겠단다. 마주 앉아도 입도 열지 않고 문자로만 대화를 주고받을 날. 머지않아 오리라. 아니다. 벌써 왔단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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