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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새 해, 새 꿈, 새 불꽃 - 청년들에게

박명림
연세대 교수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초빙교수
새해다. 새해는 늘 새 마음 새 다짐으로 맞게 된다. 지난해 나는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던가? 새해 나는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올해의 끝 날에 돌아볼 때 나는 새해 첫날의 다짐들 중 몇 개나 이루었을 것인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반드시 돌아보게 될, 지나온 내 모든 날들은 또 어떠할 것인가? 내 삶 전체에서 나는 무엇을 이루려 했고 무엇을 이루었던가?

 강의차 방문한 파리에서의 첫 만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 식당에 들렀을 때 그곳에서 일하는 청년은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더니, 갑자기 말춤을 추며 어색한 발음으로 ‘강남스타일’을 반복했다. 말춤은 수준급이었다. 유럽의 심장부에서 K팝 열풍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2년 전 제2차 세계대전의 유산을 논의하는 미국의 한 학술회의에서의 화제는 단연 김연아 선수였다. “김연아의 놀라운 득점기술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길래 어떤 전문지식도 없이 “청자와 승무의 장인기예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더니 계속 청자와 승무의 미학을 캐물어 혼쭐이 났다. 결국 청자와 승무는 곡선과 직선의 구별이 없어, 직선인 듯하면 곡선이고 곡선인 듯하면 직선인 절대미를 갖추었는데 그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피겨스케이팅에 접맥한 것이 피겨 역사를 새로 쓰게 한 동력이라고 짐짓 아는 체를 했다. 움직임과 정지를 구별할 수 없는 경지가 청자와 승무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때는 더욱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2005년에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학술회의를 함께 기획한 저명한 독일 언론인은 차범근의 위상을 말하며 놀라게 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유럽인들이 한국을 잘 모르던 시절 놀라운 실력과 겸손한 사람됨으로 충격을 준 차범근 선수가 끼친 동서교류와 민간외교의 업적을 극찬했다. 내가 차범근과 같은 학교 졸업생이라는 이유와, 화요일 심야마다 그의 경기를 보던 추억을 되살려 분데스리가에 대해 담소하자 복잡한 회의준비는 쉬이 합의가 되었다.

 로마에서의 한 학술회의가 끝나고 이탈리아 참석자들과 함께 조수미 특별초청공연을 보았을 때 “그녀는 입술이 아니라 가슴으로 노래를 하기에 세계인들의 감동을 자아낸다”는 이탈리아 정부 최고위인사의 극찬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보기가 결코 쉽지 않은 조수미의 특별공연을 무료로 보던 이탈리아 고위인사들의 계속되는 앙코르 요청에 그녀는 직접 피아노를 치며 우리 가곡을 절창해 만장의 박수를 받았다. 조수미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문화시민이 된 듯한 마음 뿌듯한 저녁이었다.

 일본 도시샤 대학의 특강에 초청받았을 때는 그 학교의 졸업생 윤동주가 다녔던 대학의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은 바 있었다. 교정에 그의 시비를 세워 기리는 학교에서 받은, 윤동주의 영혼과 이름이 갖는 고결한 무게 덕분이었다.

 김연아, 윤동주, 조수미, 차범근, 싸이… 이 모든 경우에 나는 자신의 전부를 건 누군가의 성취와 희생에 무임승차한 것이었다. 부모와 가족, 스승과 동료에게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듯 늘 누군가에게 빚진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그 안의 사람들이 절대절망에 빠졌을 때, 단지 17세의 나이로 자신의 전부를 던져 희망의 깃발을 들었던, 그리하여 백년전쟁의 물줄기를 바꾸고 조국을 구했던 잔 다르크의 나라에서 새해 아침 우리 공동체와 그 속의 청년들의 삶을 생각해본다. 그녀 자신이 아무런 소망도 없는 소작농의 딸에서, 공동체 전체의 꿈과 희망의 깃발로 떠올랐던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과 공동체의 꿈·신념·희망·비전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불태웠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한 사람의 꿈은 자기를 구하고 시대와 역사를 바꾼다.

 누군가의 희생과 도움으로 인해 사는 나 자신이 다른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는 없을까? 자신이 심한 정신질환을 앓았기에 자신보다 훨씬 절망적인 삼중장애인 헬렌 켈러를 보며, 자신과 헬렌과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꽃을 되살려낸 설리번은 또 어떤가? 고난에 처해 있을수록 그의 극복과 성취는 더욱 값지고 더욱 감동적이다. 나 자신이 누구보다 힘든 지금 옆을 보자. 그리고 세계를 보자. 불안·자살·저출산·가난·실업·양극화·성차별·불평등…의 질곡 앞에 절망하는 오늘의 동료청년들, 세계청년들을 보며 내가 먼저 그들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자. 나 자신이 먼저 희망의 불꽃, 신념의 불덩어리를 갖자. 바위 같은 신념 앞에 넘지 못할 난관은 없다. 나의 꿈으로 나와 남, 그리고 시대를 구하자. 세계를 구하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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