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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악역을 찾습니다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진용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새 정부 출범 준비에 나섰다. 이제 막 태동하는 새로운 권력인 만큼 당선인과 정권 인수팀의 의욕이 넘치는 것은 당연하다. 또 그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언론은 이들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잔뜩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를 앞다퉈 전하느라 경쟁이 치열하다.



새 정부가 직면할 어두운 현실



 그러나 이런 의욕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가 출범한다고 해서 국민의 생활이 당장 달라질 일은 별로 없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데 방정맞게 재를 뿌리자는 게 아니다. 새 정부가 맞이하게 될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박 당선인과 인수위는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줄 만한 여러 가지 새로운 정책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출범과 함께 그 정책의 밥상을 국민 앞에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한 달여 동안 준비해 차려낼 새 정부의 첫 밥상은 생각만큼 새롭지도, 화려하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온갖 현안을 통쾌하게 한 방에 해결하면서 국민 모두의 입맛에 맞는 만병통치의 상차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반찬은 입엔 달지만 몸에는 나쁘고, 어떤 반찬은 몸에는 좋지만 입에는 쓰며, 어떤 반찬은 제대로 맛이 나기에는 재료가 부족하거나 숙성 기간이 모자랄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뭐니 뭐니 해도 저성장(低成長)이다. 저성장으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일자리가 생기질 않는다. 일자리가 없고 양극화가 심해지는데 국민이 행복할 수는 없다. 저성장 속에서 ‘다시 잘살아보세’란 구호는 공허해진다. 문제는 이런 저성장 기조가 당분간 바뀌기 어렵다는 것이다. 작금의 저성장은 세계경제의 침체와 한국 경제 내부의 구조적인 성장둔화 요인이 맞물려 일어났다. 이런 저성장 요인은 한 정권이 의욕을 보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한국 정부 혼자의 힘으로 되돌릴 수도 없거니와 고령화와 저출산이라는 인구구조 변화를 새 정부가 단박에 역전시킬 방법도 없다. 결국 저성장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 없다면 단기간에 일자리를 늘리고 양극화를 해소할 뾰족한 방도도 없는 것이다. 만일 그런 게 있었다면 아무리 힘 빠진 이명박 정부라고 해도 그냥 손 놓고 있었을 리 만무하다. 저성장의 그늘은 새 정부의 복지재원 조달능력도 떨어뜨릴 것이다. 경기가 나쁠수록 복지수요는 늘어나지만 재원을 마련할 길은 좁아진다. 성장 둔화와 함께 세수(稅收)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새 정부는 어려운 여건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런 현실을 박 당선인과 인수위가 분명하게 인식하는 일이 새 정부 출범 준비의 첫 걸음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일단 무리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공연히 의욕만 앞세워 무리수를 두다간 실망과 부작용만 낳을 공산이 크다. 박 당선인이 첫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진단을 잘못하면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올 수 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냉철하게 직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묘책이 없다면 오히려 시야를 넓혀 멀리 볼 필요가 있다. 저성장의 원인을 단기간에 해소할 수 없다면 장기적으로 해결해나가자는 것이다. 저성장을 극복할 장기적 해법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것이다. 10년, 20년 후까지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고령화 시대의 복지재원을 충당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성장 공식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런 일은 당장 효과가 눈에 드러나지 않고 정권의 생색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는 가장 큰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국민에게 ‘쓴소리’할 악역 필요



 사실 단임 대통령의 임기 중 인기(지지도)는 허망한 것이다. 결국 최후에 남는 것은 역사적 평가다. 재선의 부담이 없는 대통령이라면 눈앞의 인기에 연연하기보다는 임기를 통틀어 이룬 업적에 대한 평판이 더 소중한 것이다. 그렇다면 박 당선인도 당장은 인기가 없지만 먼 훗날 ‘대한민국 재도약의 기틀을 다진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편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물론 ‘손톱 밑의 가시를 빼주는 치료’를 통해 국민이 느끼는 고통을 덜어주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잔가시를 뽑는다고 ‘저성장’이란 몸통의 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 박 당선인이 역할모델로 삼는다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국내의 온갖 반발을 무릅쓰고 고집스럽게 ‘영국병’을 고쳐 ‘철의 여인’이란 명성을 얻었다. 박 당선인이 재임 중에 인기가 없더라도 저성장을 탈피할 새로운 성장 모델의 초석을 놓을 수 있다면 ‘침몰하는 대한민국호를 구한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만일 박 당선인이 ‘역사의 평가’를 중시하기로 했다면 그런 일을 감당할 인재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박 당선인이 단기적 인기보다 장기적인 저성장 극복을 추구하다 보면 국민에게 달콤한 말보다는 ‘쓴소리’를 할 경우가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에게 무엇을 해주기보다는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할 일이 많을 것이다. 욕을 먹더라도 국민을 설득하고 정치권의 포퓰리즘에는 꿋꿋하게 맞서는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런 악역(惡役)을 대통령을 대신해 앞장서서 맡을 사람이 필요하다. 새 정부의 첫 내각은 악역을 자임하고 그 악역을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는 인물들로 충원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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