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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란의 월남과 우리의 입장

최근 월남에서 일어온 비극적인 분란에서 우리는 대충 두 갈래의 저류를 간취할 수가 있다.

그 하나는 혼미로운 사태를 일관하여 흐르는 민정에의 욕구이며 또 다른 하나는 날로 농도를 더하는 가운데 발현된 민족주의적 성향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갈래의 저류 속에 담겨진 월남국민의 희원이 어떻게 충족되느냐에 따라 사태는 결정적으로 좌우될 것이라는 견해를 갖는다. 또한 우리는 「키」정권에 대한 불교도들을 중심한 정치적 도전이 결코 단순한 정권욕만으로 출발한 것이라고는 믿지 않기 때문에 오늘의 월남의 분란과 한국군의 주월문제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선 이양이 선 안정의 길>

한 마디로 말해서 지금 「사이공」 「다낭」 「후에」등지를 휩쓸고있는 소용돌이는 급속한 민정실현을 표적으로 하는 대「키」정부공세이다. 강경불교도파의 정상인 「트리·쾅」승이 말한 대로 그 동안 반정부 구호 속에 편입된 반미구호는 일단 그것이 민정에의 욕구가 과대했던 데서 파생된 부산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쾅」승의 표현을 빌면 미국이 의회구성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 바로 반미구호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만큼 이번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정이란 목표는 압도적인 자리를 점했던 것이 사실이며 그에 대한 욕구도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반정부구호를 뒤따른 여타의 반전·반미구호를 압도할 수 있을이 만큼의 강도를 반정부구호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반정부시위자들의 눈에 가장, 그리고 제1차 적으로 거슬리는 존재는 무엇보다도「키」군사정권이었을 것이며 그 다음 제2차 적으로 거슬리는 존재론 「키」군사정권에 대해 과도할이 만큼의 신뢰를 표시해온 미국이 되었었을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반공·친미의 「키」정부를 지나치게 뒷받침한 결과로 미국이나 「키」정권은 오늘의 화를 입게 된 것이라는 견해가 그렇게 보면 전혀 이유 없는 게 아닌 듯 하다.

어떻게 보면 이런 사태의 진원은 보다 많이 그러한데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늘 현대사 주류에서 소외된 듯한 일종의 피해의식을 만약 불교도들이 지녀왔었던 것이라 한다면 미국에 의한 과도한 「키」수상의 중용이 필경은 그들의 심경을 아프게 자극하였을 것이며 격한 반미구호가 터져 나오게 한 동인이 되었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보기로는 이유야 어떻든 극도의 정치적 위기 속에 있는 월남의 안정은 화급하며 그 방법도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다. 어제 12일의 전국정치회의는 불교도 측 등의 불참으로 마침내 공전하고 말았지만 사실 월남의 정치적 국면의 개선은 그런 우원한 방법에 의지할 때를 지나고 있다 할 것이다.

지금 나오고 있는 해결책으론 대체로 첫째 단시일 내 총선, 둘째 거국내각, 세째 제3세력의 등장 등이 있는데 우리는 첫째의 방법만이 사태를 급속히 확실하게 개선하는 방법인 것으로 본다. 이미 국내정치의 위기결정권이 의심할 수 없이 불교도 손아귀 속에 넘어간 이상 거국내각이나 제3세력의 등장 등을 통해 혼란을 우선이나마 미봉해 보겠다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사태가 지금에 이르러서도 선 안정·후 이양을 「키」정부나 미국이 고집할 때 혼란이 더욱 장기화 할 것이며 열풍을 휘몰아오는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이치이다. 사태는 어느모로나 그 근본적 전환을 강요한다.

월남은 모름지기 선 민정이양·후 안정의 길을 택하여야 할 것 같다. 공산주의를 앞에 한 무이득하고 소모적인 월남의 정치적 분란은 시급히 그리고 근원적으로 종식되어야 할 일이다.

<응시돼야할 파병기반>

그런데 월남정국이 걷잡을 수 없는 격동을 겪는 동안 그곳으로 쏠리는 우리의 관심은 비상하게 고조되어 왔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비둘기, 맹호, 청룡부대를 그곳에 투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시 막 증파병력을 떠나 보낼 찰나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듭 밝힐 것도 없이 한국이 월남전쟁에 파병을 하고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병력을 증파할 것을 예정하고 있는 것은 싸우는 월남을 도와 대 공산주의전쟁에서의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자는 데 있다.

따라서 첫째는 우리가 돕고자하는 국가가 전쟁수행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갖추고 있어야할 것이요 둘째론 능력을 구비하고 있어야한다. 만일에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싸울 의사도 힘도 없는 나라에 가서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 것인가. 월남전쟁은 어디까지나 월남인의 전쟁이지 미국인 또는 한국인의 전쟁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근자 월남정정 가운데서 추출된 몇몇 사태의 의미는 대단히 비관적인 전망을 우리로 하여금 안게 한다. 「데모」대열이 뿜은 용공·반미는 아니더라도 반공·반미의 분위기, 염전사조 등은 이미 그 기반이 붕괴된다고 볼 수밖에 없는 군사정권의 존재와 함께 우리의 우려를 더욱 짙게 만든다.

또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정에 그친다 해도 만약에 앞으로 언젠가 탄생할 군사정부 아닌 민간정부가 중립의 방법을 포함하는 협상에 의한 월남사태해결의 방향으로 일거에 나서게 된다면 파병당사국인 우리의 입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워싱턴」정가에서도 일고있다는 이러한 기우는 정말로 그것이 기우로 끝나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여기에 엄연하게 자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한국파병의 전제가 되었던 반공·군사적인「키」정권의 기반이 최소한도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우리의 파병은 그 내일의 행로를 예측할 수 없는 정권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은 중대한 변화이다. 어쩌면 그것은 파월한국군이 디디고 서야할 발판의 상실여부와 관련되는 문제이다. 어느 땐가 불행하게도 우리가 주창하는 중립화협상 반대의사가 월남에서 좌절되고 그것이 허공에 메아리지는 결과가 뇐다면 파병의 의미는 어디서 구해내야 할 것인가.

분란의 월남사태저류에 또렷또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과, 기반을 상실하기 시작한 「키」정권의 오늘을 보고 우리가 돌아볼 곳은 바로 우리자신의 발목이다. 대응은 모든 가정을 향하여야 한다.

어지러운 사태, 내일을 예견하기 힘든 분란일수록 우리의 대응은 탄력을 .갖추어야 한다. 월남의 집안싸움은 이제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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