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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살 기념으로 북한 풍자 코미디 ‘북극의 블랙파일’ 쓸 생각”

4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정원에서‘100세 문화인’ 박용구옹이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에서 여주인공 애랑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김선영씨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 조용철 기자 촬영협조 가나아트센터
우리나라 최초의 중등 음악교과서 집필자, 한국 최초의 음악평론집을 쓴 클래식 평론가이자 무용 평론가, 일본과 한국 최초의 창작발레를 집필하고 ‘백조의 호수’ 전막 초연을 성사시킨 기획자, 베르디 오페라 ‘오셀로’ 한국 초연을 이끈 오페라 연출가, 88 서울올림픽 개·폐막식 시나리오 작가, 방송문화진흥회 초대 이사장을 지낸 방송인…. ‘르네상스맨’ 박용구를 설명하는 말은 아직 부족하다. 1914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100세. 한 세기 동안 클래식, 공연, 방송계를 종횡무진해 온 대한민국 문화예술사의 살아 있는 전설, 영원한 현역이다.
그런 그에게 2013년은 특별한 해다. 그가 66년 선보인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가 오는 2월 다시 무대에 오르는 것. 예술의전당 개관 25주년 기념작이자 CJ토월극장 개관 기념작이다. 초연 당시 패티김이 열연했던 애랑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김선영(39)이 새해를 맞아 박옹을 찾았다. 김선영은 ‘에비타’ ‘지킬 앤 하이드’ ‘엘리자벳’ 등 대작 뮤지컬들에서 탁월한 가창력과 연기로 제1회 더뮤지컬어워즈, 제13회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한 최고의 디바다.

100세 현역, 문화인 박용구 옹을 만나다

4일 오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접견실에 지팡이 하나만 짚고 혼자 걸어 들어온 박옹은 놀라울 정도로 정정했다. 성악을 공부한 덕분인지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했다. 보청기를 쓰지 않아 조금 큰 소리로 말해야 했지만 그는 JTBC 방송 카메라 앞에서도 NG 한번 내지 않고 100년간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매일 철봉 하고 자기 전에 족욕
김선영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나이로 100세인데, 100세가 되면 어떤 느낌이 들지 저희는 상상이 안 됩니다.
박용구 나도 상상이 안 가(웃음). 돌이켜보면 내가 100년을 보낸 20세기는 세계대전이 두 번 있던 파란만장한 시대였죠. 내 삶도 평탄치 않았어요. 형무소, 일본 밀항 등 별걸 다 체험하면서 바쁘게 지내왔지.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오래 사는 법을 묻는다면 자기가 발견한 건강법을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각자 개성이 있고 신체 메커니즘이 다른 만큼 스스로 생활리듬을 발견해야 해요. 지금 내 리듬은 새벽 1시에 자고 낮 12시에 일어납니다. 오후엔 신문 보고 책을 읽고 5, 6시쯤 잠시 저녁 잠을 자요. 요샌 추워서 못 하는데, 집 앞 놀이터에 나가 하루 한 번은 철봉에 매달리죠. 2년 전부터 자기 전에 족욕을 합니다. 잠이 잘 와서 좋더라고.
술·담배는 안 하시죠?
담배는 하루 서너 대 태우지. 옛날엔 20개비 정도 태웠는데 쓴맛이 느껴진 뒤로 줄였어요. 아까 말했지만 (건강법은) 사람에 따라 다른 거니까. 술은 마시지 않아요.
2월 새로 선보일 ‘살짜기 옵서예’는 이미 반세기 전 고전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을 최첨단 기술과 동시대적 감각으로 되살리는 무대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와 한류 콘텐트의 글로벌화를 동시에 수행할 작업이다. 재공연 소식에 감격한 그는 제작진에게 “날개를 달고 글로벌하게 나아가라”는 친필 축사를 보냈다. 초연 당시 해외진출을 도모하다 정치적 이유로 좌절된 아쉬움을 간직한 그가 K뮤지컬 해외진출 전성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말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떨치라는 격려의 메시지다.
일제강점기에 어떻게 공연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남자로서 독립투사를 제일 먼저 꿈꿨지만 학생운동 지하조직에서 활동하다 보니 내 몸 갖고 독립투사는 못 되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세상을 알려고 일본으로 건너가 음악 공부를 했죠. 억압 속에서 그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게 예술이었던 거지.
‘살짜기 옵서예’는 당시 북한의 가무극에 필적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 국민소득이 이북만 못했지.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를 쓰고 새마을운동을 한 거거든. 이북은 꼭두각시처럼 인권이 없는 나라라 대규모 쇼가 가능했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는 손님이 안 들었어. 당시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나를 불러 뭔가 만들어보라기에 뮤지컬로 승부하겠다 했죠. 이북에서는 흑인풍 재즈 리듬은 체험하지 못했을 테니까. 군사정권이었지만 백지 위임을 받아 간섭 없이 내 맘대로 했기 때문에 제대로 풍자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었지. 뮤지컬이 오페라와 다른 건 풍자정신이거든요.
초연 당시 흥행에 크게 성공한 이유는 뭔가요.
애랑이란 인물은 강한 바이탈리티와 에로티시즘을 동시에 가진 여성이라 관객이 좋아했어요. 성공의 첫째 요건은 첫 장면이었지. 애랑이 제주도를 떠나는 정비장을 홀랑 벗기는 장면에서 패티 김과 후라이보이 곽규석의 환상의 호흡이 관객을 휘어잡았거든. 공연 석 달 전부터 패티 김이 노래한 동명 주제가를 라디오에서 틀었던 것도 주효했고.
오는 4월 도쿄 롯폰기에 한국 뮤지컬 전용극장이 생긴다죠? 롯폰기 배우좌극장은 50년대 망명 시절 내 집처럼 드나든 곳인데, 거기에 생긴다니 감회가 깊어요. 앞으로 국내에서만 뭘 하겠다고 해서는 살아남기 힘들거예요. 지금 싸이가 정월 대보름 쥐불놀이 하듯 산 밑의 불씨가 되어 한류가 세계로 번지고 있잖아요. 앞으로 모든 게 그래야 해요.

21세기 예술 양식은 심포닉 아트
박용구 선생은 21세기엔 경계 허물기와 인간성 회복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 새로운 경향이 대두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를 포용할 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6세기에 오페라, 20세기에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양식이 출현한 것처럼 21세기를 수놓을 새로운 예술양식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박옹이 명명한 이 새로운 양식의 이름은 ‘심포카’. 심포닉 아트의 줄임말이다. 공연과 영상이 하나로 융합되는 종합예술이다. 심포카를 통해 ‘지구촌 인간족’의 지적 유대감을 촉진하고, 우리나라가 한반도 문화 르네상스를 성취하는 단초로 삼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100세 나이에 그런 창의적인 생각이 어떻게 가능하신지요.
나이를 잊고 살죠. 2030년, 2050년엔 어떻게 될지 미래를 보며 사니까. 나이 들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꾸준히 독서를 하니 시야가 넓어져요. 요즘엔 중학 동창인 한우근 교수가 쓴 『한국통사』를 읽고 있어요. 우리 민족이 한반도 토착민이 아니라 아득히 먼 나라에서 왔다는 신채호의『조선상고사』와 고대사에 대한 견해가 같더군. 식민사관을 초극한 제대로 된 고대사인 거죠. 그 친구 죽기 전에 만나 어깨라도 두드려줄 걸 그랬어.
역사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있나요.
내가 평생 테마로 삼은 것은 “내가 누구냐” 하는 거예요. 나는 누구냐, 너는, 또 우리는 누구냐는 것이죠. 지금도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결론을 내셨나요?
칸트나 헤르더의 인류동조론처럼 인류는 하나라는 거예요. 인류 최초 수메르 문명에 가담했던 아카트족의 일파가 우리 조상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일파였던 단군족이 500년 걸려 이동해서 한반도 원주민들과 만나 혼혈을 이룬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가 되기 쉬워요. 내가 토착민이 아니라 중동에서 왔다고 생각하면 저들과도 어깨동무할 수 있다는 거죠. 21세기 글로벌 문화란 게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하나가 돼야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봐요.
나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 말씀하시는데,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와 지금 눈물이 날 뻔했어요. 이런 질문을 누구와 나눠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갑자기 들으니 그런 대화가 그리웠나봐요. 선생님을 직접 만난 시간이 제겐 힐링이 된 것 같습니다.
나도 공감인데, 21세기는 인터넷의 시대라 직접 대화가 아닌 기계를 통한 대화를 하고 있잖아요? 옛날엔 모두 오순도순 직접 대화하며 피가 통하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기계를 향해 얘기하는 시대이니 고독할 수밖에. 하지만 ‘내가 누구냐’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일본처럼 골목길 도망 말고 넓게 봐야"
수명은 길어지는데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걱정이 누구나 큽니다. 100년을 살아보신 입장에서, 기나긴 노년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내 경우엔 늘 새로운 작업에 흥미를 갖죠. 얼마 전 신문에서 스위스에서 유학중인 김정남 아들 인터뷰를 보고 시놉시스를 하나 썼는데 제목이 ‘내가 왔시요’야. 평안도 사투리죠. 민주주의 체제에서 공부한 청년이 독재국가로 돌아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이죠. 정신이 희미해지지 않으면 올해 100세 기념으로 작품을 하나 쓰려 해요. ‘북극의 블랙파일’이라고, 가상 독재국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북에 대한 풍자 코미디가 될텐데, 지금 같아선 쓸 수 있을 것 같아.
또 하나, 올해 출간하려는 책이 있어요. 우리 민족의 여명기를 소재로 한 ‘먼동이 틀 무렵’이란 작품이에요. 15부작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내 꿈은 평창올림픽 기간에 방영할 TV드라마로 제작하는 거예요.
정말 100세 현역이시군요. 대단하십니다. 20세기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으며 문화계를 이끌어오셨는데, 21세기 우리 문화는 어떻게 발전하게 될까요. 박 지구촌이 어깨동무해서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무엇일지 잘 생각하고, 우리가 그걸 주도해나가길 바랍니다. 일본처럼 골목길로 도망치면서 쪼그라들 게 아니라 더 넓게 보아야 할 거예요.
선생님, 이제 저는 연습을 하러 갈 시간입니다. 제가 어떤 연기를 하면 좋을지 조언해주세요.
여성 대통령 시대가 된 만큼 새로운 해석을 해야지 않겠어요? 여성 파워가 강해진 상황에서 21세기적 여성의 가능성, 활력을 갖고 등장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잘 만들어보세요. 개막 공연에 꼭 보러 갈테니.
2 1947년 무렵 음악가들과 함께. 오른쪽 셋째가 박용구 선생. 3 일본 최초의 창작 발레 ‘니치링’에서 각색을 맡은 박용구 선생(오른쪽)과 안무와 연출을 맡은 고마키 마사히데. 4 1966년 예그린 단원들과 함께 충남 태안 만리포에서. 5 1988년 박세직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장(왼쪽)과 악수하는 박용구 선생. 6 안무가 故 피나 바우슈(앞줄 오른쪽 셋째)와 함께한 박용구 선생(맨 오른쪽). 사진 제공‘수류산방+이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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