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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배·가압류 압력에 극단적 선택 않게 대책 세워야

부산시 대교동 영도구민장례식장 301호실.
안내판엔 장지와 발인이 빈 칸으로 돼 있다. 이곳은 지난해 12월 21일 노조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조직차장 최강서(34)씨의 빈소다. 장례 절차는 노조가 유가족의 위임을 받아 진행키로 했지만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노조 측이 민주노조 탄압 금지 노조를 상대로 회사가 낸 158억 손해배상소송 취하 유가족 생계보장 등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회사가 납득할수 있는 방안을 내놓을 때까지 장례를 무기연기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12·19 대선 후 해고 근로자 잇단 자살…원인과 처방

3일 기자가 취재차 찾은 최씨 빈소엔 전국 각지의 금속노조 지회가 보낸 조화들로가득했다. 이날만도 40여 명의 직장 동료가 퇴근 후 조문했다. 최씨 부인 이선화(37)씨는 검은 상복을 입고 다섯 살, 여섯 살 두아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씨는 “(남편이) 숨지기 전날 부모님을 뵙고 온 뒤 다시 집을 나가면서 애들 보고 ‘엄마 말씀 잘 듣고, 사이 좋게 지내라’고 말한 게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무기력·분노·불신은 ‘헬프미’ 사인
12·19 대선이 끝난 뒤 근로자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최씨가 숨진 다음 날인 22일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 소속 이운남(32)씨가 자신의 울산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같은 날 노동운동가 최경남(40)씨도 자택에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5일에는 이호일(47) 전국대학노조 한국외국어대 지부장이 용인캠퍼스 노조 사무실에서 목을 맸다. 다음 날엔 이 지부장의 빈소를 지키던 이기연(49) 수석부지부장이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
이 수석부지부장 외의 나머지 노조 간부들이 죽음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닌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 태어나 듣지도 못한 돈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 자본.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최강서씨가 숨지기 전 카카오톡에 남긴 유서 내용의 일부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과 회사 측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 것이다. 그는 2011년 한진중공업의 직장폐쇄 때 정리해고된 뒤 지난해 11월 9일 복직됐다. 그러나 복직 세 시간 만에 무기한 유급휴직 통보를 받았다. 작업 물량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부인 이씨는 “힘들게 투쟁해서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복직하자마자 휴직이 되고, 손해배상청구액도 그대로 묶여 있는 데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돼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 비관한 게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이운남씨는 2003년 8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 때문에 곧바로 해고했다. 2004년 2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근로자 박일수(당시 50세)씨가 분신자살하자 동료 노조간부와 함께 대형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여 구속된 경력도 있다. 진압 과정에서 폭행을 당해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근(PTSD)과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외국어대 이호일씨는 2006년 노조간부로 파업을 주도했다가 해고됐다. 3년간 소송 끝에 2009년에야 복직했지만 학교는 그를 충남 대천해수욕장에 있는 대학연수원 관리요원으로 발령을 냈다. 노조 관계자는 “이씨가 해고와 복직, 좌천 등의 곡절을 겪으며 많이 지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의 죽음은 극단적인 저항의 수단으로 자살을 택했던 1980, 90년대와는 다르다. 손해배상청구로 인한 압박감과 해고 후 생활고, 대선 패배 무력감 등으로 좌절감을 느낀 나머지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쌍용자동차 해고 근로자와 배우자 60여 명을 집단 상담한 정혜신(49·정신과 전문의) 마인드프리즘 대표에 따르면 해고 근로자는 자신도 모르게 무기력·분노·불신 등 ‘헬프미사인(help me sign)’을 외부로 내보낸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우종민(45·정신과) 교수는“정치적인 이유를 내건 자살도 따져보면 대개 개인적인 이유나 지병, 경제적인 곤란 등이 겹쳐 일어난 경우”라고 말했다.

4일 오후 6시 한진중공업 입구에서 조합원들이 근로자들을 상대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왼쪽). 지난달 27일 오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손배소 취하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뉴시스]
박근혜 당선인이 빈소 방문할지 관심
근로자들의 잇따른 죽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경총 이광호 홍보팀장은 “최씨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한진중공업이 노조를 상대로 158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은 과한게 아니다. 그동안 불법파업에 대해 관용적이다 보니 ‘책임을 지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현장에 만연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지순 교수는 “노동계도 합법적인 방향으로 쟁의문화를 바꿔야 한다”며 “손배소나가압류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이를 인정하고 어떻게 합리적으로 운용할지 노사 양측과 정부·사법부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경우 불법파업으로 입은 손해가 너무나 컸다. 2년 동안 수주를 거의 못했다”며 “158억원의 손해배상청구는 노조원 개인에 대해 가압류를 걸지 않았기 때문에 큰 압박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자들의 죽음은 정치권에도 파장을 던지고 있다.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지난해 12월 23일 트위터에 “안타까운 소식에 죄스러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대선 패배 후 첫 트위터였다. 그는 27일엔 “한진중공업 최강서님 빈소에 다녀왔다.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호소드린다”며 “박근혜 당선인께도 각별한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진보정의당 노회찬 공동대표 역시 지난달 31일 트위터의 공개서한을 통해 박 당선인에게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박 당선인 측과 새누리당은 잇따른 근로자들의 자살이 부담스럽다. 박 당선인으로선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무슨 해결방안을 내놓느냐가 국민대통합의 시금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31일 황우여 대표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이 최씨 빈소를 찾은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다.
이호일씨의 복직소송을 도왔던 법무법인 시민의 김선수(52) 변호사는 “박근혜 당선인이 빈소를 방문한다면 모두를 안고 가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라며 방문을 희망했다.



한진중공업 노사 입장은

한진중공업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2011년 파업 종료 이후에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양측의 입장이 가장 크게 갈리는 사안은 한진중공업 측이 2011년 5월 노조와 노조 간부 11명을 상대로 낸 158억원의 손해배상청구다. 그해 11월 노사합의 후 파업이 끝나면서 회사는 노조 개인에 대한 소송은 취하했다. 그러나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자살한 최강서씨는 죽기 전 이에 대한 철회를 요구했다. 18일 부산지법에서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선고를 앞두고 한진중공업 기업문화실장 정철상 상무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박성호 부지회장을 만나 손배소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을 들었다.

박성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부지회장

“조합비 3억인데 158억 청구  합법 파업에 손해 전가”

-회사 측 손배소에 대한 노조의 입장은.
“우리가 한 파업은 모두 합법적이다. 회사에서 정리해고 안을 내놓기 전부터 임금협상 문제로 부분파업을 시작했고 수위를 높이던 중이었다. 쟁의조정법에 따라 가결을 통해 파업한 거다. 그런데 회사가 임금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정리해고 안을 내놓았다. 사측에서는 정리해고 때문에 전면파업을 했다고 하면서 불법파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면파업은 임금협상만 갖고도 한다. 또 불법파업이라고 하더라도 손배소에 해당하는 손해가 파업으로 인한 것이라는 인과관계도 없다.”

-사측은 소송 이유가 최소한의 피해를 보전받기 위한 ‘합리적 자구책’이라고 한다.
“말도 안 된다. 상대가 158억원을 줄 능력이 되면 손해를 보전하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보겠는데 우리 지회는 조합비 3억원도 없다. 그것 갖고 손해를 보전해야 할 정도라면 회사 하지 말라고 해야 한다. 또 회사는 노사 합의를 통해 ‘최소화하겠다’고 한 손배소 금액 158억원에 대해서 단 100원도 안 내렸다.”

-사측은 ‘최소화하겠다’라는 뜻이 금액 외에 다른 민사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의미였다는데.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 우리가 받아들인 건 158억원 손배소에 대해 금액의 최소화라고 생각했다. 회사가 그런 행위를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사 합의문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손배소는 단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조합원 개인에게는 부담이 없지 않나.
“말은 맞다. 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것은 다르다. 이번에 자살한 최강서씨도 조직차장으로 소송에 대한 중압감이 컸다. 설령 손해배상 청구액 158억원이 깎여서 단 5억원이 된다 해도 조합비가 3억원밖에 없는 우리 지회는 당장 아무 활동도 못한다. 회사는 노조의 발목을 잡아서 활동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게 목적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고 본다. 최강서씨가 끝까지 요구했던 것은 158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철회하고 민주노조를 탄압하지 말고, 남은 가족들을 보살펴달라는 거다. 100% 관철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이라도납득할 수 있는 합의를 위해 노력할거다.”



정철상 한진중공업 기업문화실장

“불법파업 때문에 계약 못 지켜 법에 호소할 수밖에”

-노조를 상대로 158억원의 손배소를 제기했다. 어떤 손해인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노조가 건조 중인 선박에 올라가 조타실·설계 컴퓨터 등을 파손해 입은 물적 피해다. 또 불법 파업 때문에선주들한테 인도하기로 계약한 날짜를 한 번도 지킬 수 없었다. 그 비용이 엄청났다. 한진중공업이 만든 쇄빙선 아라온호도 42억원의 지체보상금을 물었다.”

-노사합의를 통해 노조 상대 손배소를 최소화하겠다고 합의했는데 노사 합의 전과 후의 금액이 똑같다.
“처음부터 최소한의 금액을 산출한 거다. 노사합의문에서 ‘최소화하겠다’고 한 부분은 금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손배소 외 다른민사상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당 부분 취하했다.”

-노조에서는 임금협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에 합법파업이라고 주장한다.
“2010년 12월 20일 노조가 전면 파업을 하기 전에 ‘희망퇴직자 400명을 받고 400명이 안 되면 정리해고를 실시하겠다’는 정리해고 안을 내놓았다. 그 안을 보고 노조에서 전면파업을 한 것이다. 임금협상과는 상관없는 파업이었다. 정리해고는 교섭 대상이 아니고 협의 대상이다. 요건을 갖추고 협의하다가 안 될 때 회사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노조는 조합비 3억원밖에 없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158억원을 받기 어려울 텐데.
“회사는 직장폐쇄도 할 수 있고 시설물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공권력이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 ‘희망버스’가 다섯 차례 왔는데 회사안에 공권력이 투입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게 법적인 조치다. 법에 따라 기물을 부수면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법 테두리 안에서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계획은.
“18일에 손배소 1심 판결이 난다. 사법부 판단에 따를 것이다. 또 급선무가 유가족을 위로하는 것이다. 지금 노조가 최씨 장례와 관련해 교섭을 하자면서 유가족과의 접촉을 막고 있다. 이는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교섭 대상이 아니다. 유가족과 만나면 협의를 통해 위로할 방안을 강구하겠다. 회사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 성의껏 임할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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