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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4만 달러 부자 도시 ‘울산 스타일’

울산시 남구 삼산동 일대 야경. 이곳은 백화점과 호텔, 놀이시설, 명품매장, 음식점 등이 밀집해 있는 울산의 최고 번화가다. 대구·부산 등 인근 대도시 백화점과 달리 울산의 백화점 매출은 해마다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중저가 의류를 파는 아웃렛 매장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울산=송봉근 기자]


#3일 오후 7시 울산시 북구 연암동 화성 골프연습장. 평일이지만 72개 전 타석이 꽉 차 있었다. 골프연습장 직원은 “1500여 명의 등록회원 중 절반 정도는 생산직 근로자들”이라고 말했다. 주차장에는 4400여만원짜리 폴크스바겐 등 수입차와 그랜저·에쿠스 등 국산 중대형차들이 여러 대 눈에 띄었다. 연습을 끝내고 폴크스바겐 파샤트 차량에 올라타던 근로자 이모(47)씨는 “울산 지역 대기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대체로 20년 근무하면 연봉이 1억원을 넘어선다”며 “1억 연봉으로 한 달에 두세 번 필드에 나가는 건 별로 부담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석유화학업체에서 일하는 고졸 생산직 근로자다.

20년 일한 고졸 생산직 연봉 1억 “골프 부담 안 된다”
“울산 손님 잡아라” 해운대 업소들 벤츠 보내 모셔가



 #3일 오전 6시30분 울산시 남구 고사동 SK에너지 동문 인근 주차장. 잔뜩 광택을 낸 고급 승용차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한 벌에 80만원쯤 하는 유명 브랜드 양복이나 고가의 수입 아웃도어 룩 차림으로 차에서 내린 사람들 역시 대부분 생산직 근로자들이다. 직원 김모(45)씨는 “상당수 근로자들이 출근할 때는 등산복이나 세미 정장 차림으로 집을 나와 회사에 도착한 뒤 작업복으로 바꿔 입고 일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부자 도시 울산에서 볼 수 있는 ‘울산 스타일’이다. 서울 강남이나 부산 해운대 등과 다른 점은 부자 울산의 주축이 생산직 근로자들이란 점이다. 본지가 국세청 근로소득 과세기준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울산 근로자 37만1741명 가운데 19.9%(7만4294명)가 6000만원 이상 연봉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12%, 40만2894명)과 부산(6.97%, 7만8508명)보다 많다. 울산 기업과 개인이 1년간 벌어들인 순수익은 서울보다 두 배 정도 많다.



 울산이 부자 도시라는 것은 지난달 하순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잘 나타난다. 2011년 말 기준 1년간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서비스의 부가가치를 합해 인구로 나눈 1인당 지역총생산(GRDP)을 비교해 보자. 서울은 2829만원(2만5530달러)이었다. 울산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 6253만원(5만6430달러)이다. 부산(1809만원, 1만6330달러)의 3배가 넘는다. 울산은 1998년 광역시로 승격한 후 줄곧 1인당 GRDP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울산 시민과 울산에 본사를 둔 기업 및 지자체의 소득을 인구로 나눈 1인당 지역총소득(GRI) 역시 3977만원으로 전국 1위다. 다시 말해 울산 지역으로만 한정하면 1인당 소득이 3만6000달러에 이른다는 얘기다. 1인당 GRDP와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이유는 서울 등 외지에 본사가 있는 기업의 생산액이 제외되기 때문이다. GRI는 본사가 울산이 아닌 서울에 있는 기업의 수익은 뺀 수치란 점을 감안하면 울산을 소득 4만 달러 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 울산의 지금 모습은 대한민국의 미래상일 수 있다. 1인당 GRI에서 세금을 뺀 실질적 가처분소득을 의미하는 개인소득도 1854만원으로 울산이 전국 최고다. 서울의 지역총소득은 3783만원, 개인소득은 1684만원이다.



 부자 도시인 만큼 울산의 교육열은 서울 강남 못지않다. 남구 옥동은 울산의 대치동이다. 1.5㎞ 왕복 7차로 도로를 사이에 둔 대로상에 239개의 학원이 몰려 있다. SK에너지 생산직 근로자를 남편으로 둔 주부 김광자(46·남구 옥동)씨는 고3 아들을 서울의 명문대로 보내는 게 올해 목표다. 김씨는 아들 사교육비로 매달 300만원을 쓴다. 영수종합반과 국어 학원을 보내는 것과 별도로 수학과 영어 과외를 시키고 있다. 김씨는 “상당수의 학부모가 학원 정보를 얻으려고 서울 대치동의 학원 설명회까지 찾아다니곤 한다”고 말했다.



옥동에서 고교생이 일주일에 두 차례 영어나 수학 과목을 수강하면 과목당 25만원을 내야 한다. 대치동 수강료와 큰 차가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학원 관계자는 “학원을 2~3군데 다니면서 서울의 유명 강사를 불러 월 500만원을 주고 과외를 따로 받는 학생도 있다”고 귀띔했다. 옥동에는 지역 명문 학성고와 신정고가 있고 울산검찰청·울주군청 등 관공서가 많다. 서울 강남만큼 고급스럽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브랜드 카페들이 몰려 있어 누가 봐도 부자 동네란 느낌이 든다.



울산시 남구 삼산동 롯데백화점 울산점 명품 코너에서 시민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백화점에서는 특히 고가의 해외 브랜드가 잘 팔린다.
 부자 도시 울산만의 독특한 소비 현상도 있다. 중저가 의류를 파는 아웃렛 매장이 줄줄이 문을 닫는 현상이다. 2011년 6월 준공한 울산 북구 진장동의 울산패션타운은 개장식도 하지 못하고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2000년 이후 4~5개의 아웃렛 매장이 울산에 꾸준히 진출했지만 명맥을 유지하는 아웃렛은 뉴코아아울렛 2개와 세이브존 1개가 전부다.



 반면 백화점 매출은 떨어지지 않는다. 대구·부산 등 인근 대도시 백화점과 달리 울산의 백화점 매출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2011년 말 기준 롯데백화점 울산점의 매출 신장률은 15.4%로 전국 29개 지점 중 1위다. “(모든 사람이 그러지는 않겠지만) 어릴 때부터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다 보니 아웃렛 자체가 어색한 게 사실이다. 아웃렛보다는 믿을 수 있는 백화점을 주로 찾는다”는 웨딩플래너 조경아(27·여·남구 신정동)씨의 말을 듣고 보면 이런 현상의 원인이 뭔지 이해가 된다.



 백화점에선 특히 고가의 해외 브랜드가 잘 팔린다. 페라가모·버버리·에트로 등 해외 명품 브랜드 매출은 매년 14.1%씩 오른다. 1년에 3500만원어치의 물건을 사야 자격이 주어지는 MVG라는 VIP 고객도 울산에 2541명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지난해 총 3364억원을 백화점에서 썼다. 모 백화점 명품관의 직원은 “회사 작업복 점퍼를 입은 고객이 매장을 찾아 아무렇지 않게 물건을 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소득 수준이 높고 그만큼 소비가 활성화되다 보니 물가도 덩달아 높다. 울산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전국 1위다. 지난해 상반기 아파트값 상승률은 1.59%로 충남(1.56%), 대구(1.40%), 광주(0.74%)보다 높았다. 각각 0.12%, 0.99% 하락한 부산·대전과 대조적이다. 이영래(38) 부동산114 부산경남울산지사장은 “부산의 고급 아파트 단지인 해운대 센텀시티의 아파트를 팔아도 울산 옥동에 오면 평수를 줄여야 구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센텀시티 주상복합아파트는 3.3㎡당 1000만~1100만원이다. 옥동은 비슷한 수준의 아파트가 1200만원 정도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2011년 상반기 기준으로 울산은 쌀(20㎏·4만7620원), 감자(1㎏·3489원), 양파(1㎏·1982원) 등 3개 품목의 가격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식료품과 비주류음료의 물가상승률은 11.37%로 전국 평균(9.50%)을 훌쩍 앞질렀다. 폐기물처리업체에서 일하는 생산직 근로자인 김기성(45)씨는 “울산은 도시 규모에 비해 물가가 너무 비싸다”며 “부산·대구보다 족히 10% 이상은 비싸고 문화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국내외 관광객이 가까운 부산·대구로 많이 가버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아쉬워했다.



 울산의 부자들을 겨냥해 인근 부산의 접객업소들이 ‘원정 마케팅 요원’을 파견하기도 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메리트는 울산에 비해 ‘착한 가격’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8시 울산시 남구 삼산동 현대백화점 후문 앞에 검은색 카니발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30대 남성은 휴대전화로 누군가에게 “말씀하신 곳에 도착했습니다. 천천히 오세요”라고 했다. 10분쯤 뒤 작업복 차림의 남성 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연말을 맞아 부서 직원끼리 부산 해운대로 회식을 하러 가는 길인데 그 업소에서 보낸 차량”이라고 말했다. 해운대까지 가는 이유를 묻자 “울산보다 술값이 싸고 시설과 서비스가 좋기 때문”이라며 “종종 간다”고 말했다.



카니발 운전자는 “울산에서 부산까지 40분밖에 걸리지 않아 단골손님에게 차량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해운대 유흥업소들이 벤츠와 에쿠스 리무진 등을 동원해 울산의 유흥가인 삼산동에서 손님 유치활동을 벌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해운대 고급 유흥업소의 경우 발렌타인 12년산을 15만~20만원에 판매한다. 비슷한 시설을 갖춘 울산 삼산동에서는 25만원쯤을 내야 한다.



울산시 남구 옥동 일대는 239개 학원이 몰려 있어 울산의 ‘대치동’으로 불린다. 이곳 학원 수강료는 서울 대치동 학원가 못지않게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산이 부자 도시가 된 배경에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SK에너지, 에쓰오일·삼성 SDI 등 세계적인 제조업체가 있다. 특히 현대 계열의 기업이 압도적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에는 2만6000여 명, 현대중공업 본사에는 2만3000여 명, 현대 미포조선에는 3500여 명의 근로자가 일한다. 여기다 하청업체와 관계사를 합치면 3000여 곳이 넘는다. 이들 업체의 가족까지 감안하면 110만 인구 가운데 40만 명이 현대와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강남 부럽지 않은 소득 수준, 소비 수준에 비해 수입차의 비율이 낮은 이유다. 현대 근로자들이 수입차보다 현대자동차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울산 자동차등록사업소에 등록된 수입차는 6002대(전체 46만여 대)로 인구 150만 명인 대전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3년간 울산에서 르노삼성자동차 딜러로 근무했던 박정수(35)씨는 “수입차가 비싸서 적게 탄다기보다는 현대가 울산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의식이 시민들 사이에 강하다”고 말했다.



 울산의 총 기업 수는 7만746곳(2010년 기준)에 이른다. 종업원 300명 이상의 큰 기업체도 36곳에 이른다. 울산보다 인구가 3배 이상인 부산(350만 명)의 기업 수는 5만852곳이다. 이은규(44) 울산발전연구원 박사는 “울산이 국내 제일의 부자 도시가 된 것은 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3대 주력산업이 지속적으로 번창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을 통한 울산의 수출액은 지난해 108조467억원(1015억 달러)이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김기수(58) 울산시 경제통상실장은 “지난해 9월 LG하우시스와 독일 인터페인사가 합작해 만든 유리 생산기업 등 외국 기업의 울산 진출이 계속되고 있다”며 “울산의 성장은 멈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시는 1인당 5만~7만 달러의 고소득 도시로 만들기 위해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에 뛰어드는 등 신성장동력 사업 찾기에 힘을 쏟고 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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