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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지하철요금 묻는 대학생에게 발끈하며

당분간 벤처와 교육봉사에만 전념하겠다는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그는 “‘박근혜 키즈’라는 호칭을 부정하지 않지만 내 분야에서 활동하며 ‘박근혜 덕 봤다’는 얘긴 듣기 싫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준석(28)이 여의도 정치권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11년 12월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이란 감투를 ‘덜컥’ 쓰면서였다. 보수적이고 노쇠한 새누리당에 난데없이 등장한, 아직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남아 있는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스물일곱 살 청년 이준석은 많은 이에게 파격 그 자체였다.



“난 운 좋게 우물 위로 올라온 청개구리 … 정치 외도 지금은 끝”

 그래 봤자 ‘얼굴마담’ 아니겠느냐는 냉소도 있었다. 어떤 정치인은 “소년 급제처럼 재앙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돼 버린 연예인은 마약에 손대거나 자살한다”는 독설까지 퍼부었다. 이준석 본인도 얼떨떨했다. 새누리당 측에서 비대위원을 맡아 달라고 제안하자 “비대위가 뭔가요?”라고 되물었을 정도였다. 그는 “처음엔 ‘내가 정말 일회용이 아닐까’ 나 스스로도 궁금했었다”고 말했다. 비대위원이 된 뒤 TV 출연 요청이 오자 당직자들에게 “출연해도 됩니까”라고 일일이 허락을 받기도 했다.



 당초 ‘일회용’으로 이준석의 ‘유통기한’은 비대위 존속 기한인 6개월 정도로 인식됐었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6개월로 끝나지 않았다. 일회용이란 세간의 폄훼와 달리 ‘당돌한’ 모습을 보였다. 4·11 총선이 끝난 뒤 그는 제수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던 김형태 의원과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인 문대성 의원에게 “당을 떠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최근엔 윤창중 인수위원회 수석대변인에게까지 “나가라”고 했다.



 대선 기여도도 작지 않다는 평이다. 그는 대선 기간 아무런 직함을 갖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박근혜 당선인의 유세장에 자주 모습을 보였다. 신촌 등 젊은 층이 주로 가는 곳에서 지원유세를 했고, TV에 적극 출연해 ‘왜 박근혜인지’를 역설했다. 새누리당이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마련한 이벤트인 ‘빨간파티’에는 사실상 고정멤버로 출연했다. 그사이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 손수조 미래세대위원장과 함께 ‘박근혜 키즈’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제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원래 정치와 무관한 분야에서 ‘투잡(two job)’을 갖고 있었다. 인터넷 교육서비스 벤처기업인 ‘클라세 스튜디오’의 대표, 저소득층 교육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의 교사였다. 그는 기자에게 “나는 운 좋게 우물 위로 잠시 동안 올라온 청개구리다. 우물 밖 세상을 봤으니, 다시 우물 안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깜짝 인사’로 새누리당 비대위에 합류했다.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2011년 11월 박근혜 당선인이 찾아왔다. 그게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린 변곡점이 될 줄이야. 처음엔 그냥 의례적인 방문이겠거니 했다. 전에도 정치인들이 자주 찾아왔지만 얼굴 도장 찍고 기념사진 찍으며 10분 정도 머물다가 훈계하듯 연설하고 떠나는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런데 박 당선인은 수업 시작할 때 조용히 들어와 맨 뒷자리에 앉더니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수업을 듣더라. 필기까지 하면서. 놀랐다. 수업이 끝나도 계속 남아서 봉사하는 대학생들과 토론도 했다. 박 당선인이 떠나고 나서 ‘저런 정치인도 있구나’ 하고 감명받긴 했지만 앞으로 다시 박근혜란 사람을 볼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2월에 비대위원 제안이 왔다. 솔직히 당시엔 그곳이 자문을 하는 곳인지 토론을 하는 곳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비대위’를 검색했을 정도였다. 아무튼 ‘풋내기’ 비대위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비대위 생활이 어땠나.



 “난 아침형 인간은 못 된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배고프면 밤에 라면도 끓여 먹고 햄버거 사 먹고. 눈을 뜨면 그게 기상시간이고 눈감으면 취침시간이다. 일주일 내내 아침 6시에 일어나 회의에 참석하려니 죽겠더라. 딱 3일 하니까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좀비’ 같아 보일 정도였다.”



 -등록금·취업 문제에 시달리는 20대 3명 중 2명은 박 당선인을 외면했다고 하지 않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 중에 이런 문구가 있다. ‘어느 누구도 정부에 우리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역대 대선에서 청년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던 후보가 있었나. 청년이 정치를 외면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정치만을 믿고 있는 것도 청년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혹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청년들의 삶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청년 스스로 손을 놓고 있지 않고 노력해야 하고, 정치권에서도 청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합리적인 노력들을 해야 한다고 본다. ”



 -27세에 비대위원이 됐는데, 너무 일찍 맛본 성공은 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앞으로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거들먹거리고 남을 무시하고 우쭐거리며 산다면 나는 팔자에도 없는 감투를 한번 쓴 것에 불과할 거다. 하지만 허황된 욕심과 환상을 가지고 살 일은 없을 거다.”



 -지난해 5월 부적절한 내용의 패러디물(새누리당 손수조 후보가 부산 사상에서 맞붙은 문재인 후보의 목을 베는 내용의 삼국지 패러디 만화)을 페이스북에 올려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시 4월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넘었을 때였다. 직접 올린 게 아니고 다른 사이트에서 떠돌던 게시글에 링크를 걸었다. 짧은 생각에 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비난 여론이 크게 일었다. 놀라서 패러디물을 확인해 보니 당사자 입장에선 매우 기분 나쁠 내용이더라. 곧바로 문재인 전 대선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그날 국회 앞에 있는 한 빌딩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문 전 후보를 직접 만나 다시 한 번 사과했다. 문 전 후보는 트위터에 ‘이준석군은 제게 성의 있게 사과했고, 저는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 일은 누가 봐도 내 실수였다. 패러디에도 금도가 있다는 걸,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처신에 신중해야 한다는 걸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원래 정치를 하고 싶었나.



 “전혀 관심 없었다. 2004년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일했는데 사실 정치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당시 여자친구가 당산동에 살았다. 그 친구 집 가까운 곳에서 방학 동안 일을 하고 싶어 무작정 일을 찾았는데 그게 의원실 인턴이었다. 당시엔 의원실 인턴이 인기가 별로 없었다. 2명을 뽑았는데 지원자가 나밖에 없었으니까. 어깨너머로 국회의 모습을 보며 거부감을 가졌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최초로 과반을 차지했고 한나라당은 시위하고 농성하고 그럴 때였다. 나는 주로 팩스 뽑는 일을 했는데 팩스 내용이란 게 원내대표실에서 농성 있으니 어느 의원실에선 김밥 준비하고 다른 의원실에선 생수 준비하라. 이런 것뿐이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정치판이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절대로 정치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중에라도 정치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까.



 “시간이 많이 흘러 정치의 영역에 다시 발을 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젊은 나이에 정치를 한다고 해서 얻을 게 무엇인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많이 했다. 한 고등학생이 급식 개선을 하고 싶다며 아이디어를 냈다. 각 학교 학생들이 급식 사진을 찍어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다른 학교와 곧바로 비교되고 학부모들도 급식의 질을 확인할 수 있으니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요즘 제도권 안에만 있다 보니 내 머리가 굳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내게 급식 개선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면 처벌규정 강화하고, 영양사를 늘리고…. 이런 생각밖에 안 들었을 거다. 갑자기 잊고 살았던 승부욕이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당분간 정치 외도는 끝내고 벤처·봉사활동에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교육 서비스 벤처기업인 ‘클라세 스튜디오’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준석에겐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새누리당 사람들도 있더라. 엘리트 의식이 좀 있는 것 아닌가.



 “하버드대 나오고, 젊은 나이에 새누리당 비대위원도 해봤으니 남들에게 엘리트로 비친다는 걸 부인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평생을 엘리트로 살아왔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답하겠다. 평범한 회사원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대통령 장학금을 받고 하버드에 입학했지만 생활비는 전부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한 시간에 8달러 받고 컴퓨터 고치는 교내 아르바이트를 하루 3시간씩 했다. 그렇게 돈 벌고, 고스란히 생활비로 쓰고, 한 푼도 남지 않는 그런 삶의 연속이었다. 같이 공부했던 한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유복한 집의 자녀들이라서 방학만 되면 해외로 여행을 떠났는데 나만 소외됐다. 방학 동안 텅 빈 기숙사에 혼자 남아 있으면 박탈감이 느껴지고 서러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사람들이 내가 ‘서민 코스프레’, 즉 서민인 척한다고 욕할 때는 서운했다. 어떤 대학생이 나에게 비웃듯이 ‘서울시내 지하철 요금이 얼만지 아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10㎞까지는 1050원, 10㎞부터 40㎞까지는 5㎞마다 100원씩 붙는다’고 답해 줬다. 필요 이상으로 날카롭게 반응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편견에 대해 쌓인 게 많았나 보다. 난 평소 이동할 땐 대부분 지하철을 탄다. 대학교 졸업논문 제목도 ‘서울시 대중교통에 대한 연구’였다.”



 -비대위원 이전엔 어떻게 지냈나.



 “중학생 땐 그저 조용하게 열심히 공부했다. 전형적인 ‘범생이’였다. 평생 할 공부를 그때 다 했던 거 같다. 서울과학고 에 입학해서는 학생회 활동을 했다. 별로 기대도 안 했는데 부회장 선거에서 한 표 차이로 덜컥 당선됐다. 하루는 교내 컴퓨터들이 고장 났는데 아무도 바꿀 생각을 안 하더라. 얼마 뒤 지인으로부터 부산 아시안게임에 사용됐던 컴퓨터들이 처분된다는 걸 알게 됐다. 공부도 잊고 땀 흘리며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학교에 기증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청했다. 결국 기증받고 나서 나중에 그 컴퓨터를 사용하는 친구들을 보니 정말 뿌듯하더라. 연봉 많은 기업체에 입사하는 대신 조그만 오피스텔 방구석에서 벤처사업을 시작한 것도 그때 맛본 도전의 즐거움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야구광이기도 하다. 김성근 감독과 삼성 라이온스의 열렬한 팬이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손 잡고 대구구장에 야구 보러갔던 기억이 난다. 철도와 밀리터리(군사)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5년 가까이 저소득층 학생들을 교육했는데.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에서 2년 동안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가르쳤던 여중생 한 명이 있었다. 평소 밝은 태도로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다. 어느 날 상담해 달라고 해서 만났는데 갑자기 내 앞에서 치마를 확 걷어 올리더라. 깜짝 놀라 ‘너 왜 그러느냐’고 소리쳤더니 허벅지 위를 봐달라고 했다. 회초리를 맞은 듯한 흉터투성이였다. 알고 보니 어머니에게 어린 시절부터 아동학대를 당했더라. 순간 멍했다. 상처가 많은 친구였는데 나는 아무것도 몰랐구나 하는 생각에 슬프고 화가 났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여동생과 함께 머물게 했다. 며칠 뒤엔 쉼터 시설을 알아봐 줬다. 내 주변에도 이런 일이 있구나.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그때 처음 깨달았다.”



 -여자친구는 있나.



 “사실 비대위원에 임명된 지 얼마 안 돼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비대위원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분과 결혼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연락할 시간도 안 날 정도로 바빠지고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하니까…. 이런 삶을 그분이 이해해 주지 못했다. 나도 너무 바쁜 상황이라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슬퍼할 틈도 없이 지나갔다. 뭔가에 몰입하면 그 순간만은 거기에 ‘올인’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헤어지자고 이별통보 받는 일이 꽤 많았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박근혜 키즈’라는 호칭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박근혜 당선인을 만나고, 내 삶이 180도 달라졌으니 그런 호칭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요즘 매일 걱정한다. 내가 ‘박근혜’라는 꼬리표를 떼낼 수 있을까.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산다면 난 평생 ‘박근혜 덕 봤다’는 말을 들어야 할 거다. 그런 삶은 싫다.”



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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