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예루살렘에서 ‘바그너 금기’ 깬 주인공 … “음악의 힘은 설득”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가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했다. 이스라엘 필의 종신 지휘자인 그는 5, 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신년 갈라 콘서트를 펼친다. [사진 센스매니지먼트]


1981년 10월 15일. 장소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만 오디토리엄.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준비한 레퍼토리는 박수 소리와 함께 끝을 맺었다. 흠잡을 것 없는 깔끔한 무대였다.

오늘 예술의전당 신년 콘서트, 주빈 메타



 앙코르를 요청하는 관객들의 환호성이 홀을 채웠고 지휘봉을 든 주빈 메타(77)가 관객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러곤 “지금부터 바그너의 곡을 연주할 겁니다.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홀을 떠나시는 건 여러분들의 자유입니다. 가실 분은 지금 나가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지휘봉을 부여잡은 주빈 메타는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지휘했다. 연주가 시작되자 일부 관객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객석을 지키던 관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오케스트라의 합주를 방해했다. 연주 소리가 작아지면 관객들의 야유가 커졌고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에 관객들의 야유 소리가 묻히기도 했다.



 독일 출신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83)의 곡은 당시 이스라엘에선 ‘금지곡’이었다. 정부가 법으로 강제한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관습이었다. 유대인들이 죽어간 가스실에선 바그너의 음악이 울려퍼졌다. 음악극 ‘탄호이저’ 3막에 등장하는 ‘순례자의 합창’이 대표적이다. 히틀러의 죽음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지만 유대인에게 바그너의 음악은 가스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하나의 ‘메타포’가 됐다. 전 세계 콘서트홀에서 바그너의 음악이 시작됨과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유대인들을 찾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 설립(1948년) 후 공식 무대에서 작곡가 바그너의 곡이 연주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일화는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를 두고두고 따라다녔다. 그는 2005년 자신의 홈페이지(zubinmehta.net)에서 “바그너의 곡을 고른 건 고의성이 있었다. (알려진 것과 달리) 관객 대부분은 자리를 지켰다”며 “일부 관객이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지휘를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날 앙코르 곡도 바그너 곡으로 골랐는데 이날은 관객 모두가 소리를 질러 연주를 멈춰야 했다”고 말했다.



주빈 메타
 지휘자 주빈 메타는 40년 넘게 이어진 금기를 뛰어넘었고 동시에 정치와 음악을 분리시켰다. 그리고 금기에 도전할 수 있도록 관객을 설득했다. 5, 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신년 갈라 콘서트를 여는 지휘자 주빈 메타를 만났다.



 -한국 방문 소감은.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한국에 온 것이 진심으로 기쁘다. 한국은 매우 훌륭한 콘서트홀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바그너 음악을 금지하고 있나.



 “이스라엘 정부가 공식적으로 바그너 음악을 금지하고 있진 않다. 학살에 대한 기억이 있고 바그너의 음악이 나치의 선전 도구로 이용됐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존중해 연주하지 않는 거다. 바그너는 유대인을 차별하는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바그너의 역사적인 만남은 ‘주빈 메타’였기에 가능했다. 그가 지닌 음악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인도 출신이라는 배경 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가 이스라엘과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얽힌 미국이나 유럽 출신 지휘자였다면 바그너 연주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주빈 메타는 1936년 4월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났다. 대영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때다. 그의 아버지 메리 메타는 뭄바이 교향악단을 창립했고 지휘자로 활동한 음악가였다. 의학을 공부하고 있던 그에게 음악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는 의학을 포기했고, 빈 국립 음악 아카데미에서 콘트라베이스와 지휘를 배웠다.



 -왜 의학을 버리고 음악을 택했나.



 “16살 때였다. 아무리 고민해도 의학이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음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음악을 공부해도 좋지만 먼저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한 아버지도 집에선 음악 가정교사 역할을 했다. 민족주의자인 아버지는 인도의 독립을 주장하셨는데 그런 생각들이 음악에서도 드러났다.”



 주빈 메타는 오직 음악으로만 승부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지휘자로 데뷔한 건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물지만 그는 58년 영국 리버풀 국제 지휘자 콩쿠르에 우승하면서 경력을 쌓아나갔다. 60년에는 캐나다 몬트리올 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영입됐다. 지휘자 주빈 메타는 승승장구했다. 63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취임했고, 15년간 이끌었다. 이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그와 이스라엘 필의 관계는 유독 각별하다. 음악 고문을 포함해 43년 동안 호흡을 맞춰오고 있는 것이다. 34년간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으로 장기 집권한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보다 더 오랫동안 함께했다.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종신 지휘자인 그는 이스라엘 필을 ‘첫사랑’에 비유했다.



 -이스라엘 필의 장점은.



 “다양한 레퍼토리를 갖고 있는 거다. 베토벤부터 요한 슈트라우스까지 다양한 음악을 자유롭게 소화할 수 있다. 세계를 대표할 만한 솔리스트들이 포진해 있는 것도 자랑거리다. 이스라엘 필은 시작부터 다른 오케스트라와 달랐다. 정부의 지원은 전혀 없었고 음악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현재도 티켓 판매와 기부로 운영된다.”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설득력이다. 음악이란 결국 설득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지휘자는 무대에선 객석에 앉은 청중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리허설에선 단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주빈 메타의 설득력은 낙천성에 있다. 그래서 후기 낭만파 음악에 강하다. 90, 95, 98년과 2007년 등 네 차례나 빈 신년 음악회에서 지휘를 맡았다.



 -이번 공연에 대해 소개한다면.



 “베토벤과 슈트라우스 등을 들을 수 있다. 베토벤 서곡은 새해를 시작하는 출발점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멋진 음악 중 하나다.”



 -신년 음악회 레퍼토리 중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뭔가.



 “구체적으로 꼽을 수는 없다(웃음). 빈에서 공부를 해선지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잘 다가오는 편이다.”



 -100명이 넘는 단원을 이끄는 리더십 비결은.



 “오케스트라 리허설은 줄다리기다.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100여 명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작품에 대해 모두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작품에 대한 내 생각을 전달해줄 뿐이다. 리허설은 오케스트라가 어디에 강점을 둬야 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인데, 작품은 물론이고 단원들에 대한 심리적인 부분 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는 기자간담회 말미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한국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주빈 메타는 “우리는 가장 위험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에서 지휘자로 있으면서 평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음악이 양국 간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나.



 “음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겠지만 음악의 힘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웃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뉴욕 필이 지휘자 로린 마젤과 함께 평양에 다녀온 것을 CNN을 통해 지켜봤다”고 말했다.



 -어떤 느낌이었나.



 “뉴욕 필의 북한 방문에 대해 외교적인 평가를 내가 할 순 없겠다. 하지만 뉴욕 필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한국 사람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이 주목했다. 방송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특히 평양의 거리 인터뷰가 내 가슴을 울렸는데 ‘일자리를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북한 문제도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



 -올해 계획은.



 “올해는 두 명의 위대한 작곡가인 베르디와 바그너가 탄생 200주년을 맞는 해다. 그래서 베르디와 바그너의 오페라에 주력할 예정이다. 8월에는 남미 공연도 예정돼 있다.”



 “(수백 년 전에 작곡됐지만) 클래식 음악은 언제나 새롭다. 관객들은 연주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그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끊임없이 리허설을 하고 음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이유다.”



주빈 메타가 2009년 펴낸 자서전에 남긴 서문이다. 그는 훗날 어떤 지휘자로 기억될까. ‘평화’와 ‘설득’이라는 말을 빼놓고 그를 얘기할 순 없을 것 같다.



◆주빈 메타=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의학을 공부했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빈으로 떠나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했다. 1958년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국제 지휘자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뉴욕 필하모닉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했다. 81년부터 현재까지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