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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북한 김정은 신년사가 말하는 것

마이클 그린
미국 CSIS 고문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새해 첫날 신년사를 발표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 유화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북한 경제의 재건을 위한 “전면적 투쟁”을 촉구한 점을 두고 희망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정은의 연설은 내용보다는 스타일의 변화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김정은은 한반도에서 “대결상태를 해소”하길 원한다고 강조하고 남한의 반통일 세력들이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과 압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또 기존 정상회담 합의를 준수하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1992년 남북한 사이에 맺은 ‘한반도비핵화선언’ 합의 준수를 말한 것은 분명 아니다. 북한이 우라늄 고농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선언 말이다. 북한은 15년 동안 비핵화선언을 위반하면서 비밀 원심분리기 시설을 돌려 우라늄 핵폭탄을 만들기 직전까지 와 있다.



 김정은이 말한 것은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이다. 1차 정상회담 뒤 북한은 수억 달러의 현금을 챙겼고 2차 정상회담에서도 수억 달러를 보장받았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으로 핵문제 해결과 연계되면서 무산됐지만 말이다.



 경제개혁 문제는 어떤가. 김정은은 위성 발사(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기세로 “경제 강국 건설에 결정적 전환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개방이나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암시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정은은 “경제 관리 개선”을 통해 생산을 증대하기 위한 “전면적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는 1930년대 스탈린 치하 모스크바나 마오쩌둥(毛澤東) 치하 대약진운동 시기 중국에서 익히 듣던 내용이며 북한에서도 지난 60년간 수없이 되풀이된 말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신년사는 무얼 말하고 싶은 것일까.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로부터 물려받은 경제·군사 정책의 겉모습만 바꾸었을 뿐이라는 설명이 적절할 것이다. 김정은은 은둔적이던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자신이 적극적인 사람으로 비쳐지길 바란다. 매력적인 젊은 부인을 동반하고 공개 행사에 자주 나타나는 것이나 할아버지 김일성을 닮은 헤어스타일과 얼굴 모습(일부에선 성형수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백마를 탄 모습, 혹은 1950~60년대 “위대한 수령”을 연상시키는 각종 영웅적 장면에 등장하는 일들을 통해 김일성의 이미지를 이어받으려고 하고 있다. 김정은이 19년 만에 직접 연설을 통해 신년사를 발표한 것도 바로 김일성을 본뜬 것이다.



 또 다른 설명은 김정은이 단기적 이익을 위해 전술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원했겠지만 박근혜 당선인이라도 이명박 대통령에 비해 온건한 대북 입장을 갖고 있음을 잘 안다. 박 당선인은 소규모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금강산 관광 재개나 개성공단 확대를 통해 북한은 수천만 내지 수억 달러의 현금을 챙길 수 있다. 북한은 또 수개월 안에 비료와 식량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대화에 나설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 대가로 이런 지원을 받아낼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말이다. 박 당선인이 비료와 식량 지원 의사가 있다고 밝히지 않았는가. 박근혜 당선인을 공격하던 북한이 선거 뒤 잠잠해진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반면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할 경우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명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비핵화 요구를 강화하고 경제협력이나 지원을 중단할 것임을 잘 안다. 그래서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핵과 관련한 언급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는 김정은이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을 유일한 대상이다.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김정은 신년사’에 대한 세 번째 설명은 그가 전략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지만 호전적이지 않은 연설 내용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북한의 경제 발전 드라이브는 성과를 내야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이 스탈린주의적 계획경제의 틀을 넘어 “급진적 전환”을 시도하는 사례가 나타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 개혁에 시동을 건 것이 확실해진다고 해도 핵확산 활동의 의심이 남아있는 경우 북한의 경제개방을 한·미 양국이 지원해야 할지는 고민할 문제다. 비록 김정은의 이번 신년사를 보면서 지금 당장 고민할 필요는 없는 일이지만.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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